종군기자를 대동하고 온 대령이 연설하는 대목에서 잠깐 숨을 멈췄다. 대령은 ‘시체가 썩는 진창’을 ‘공터’라고 말했다. 공터는 아무것도 없는 터라는 뜻일 테니 시체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커맨더들의 언어는 이렇다. 그 말 같지 않은 말은 바틀이 군에서 제대하기 전에 작성한 설문조사의 문항에서도 반복된다. 인명 살상 후 당신의 감정을 아래의 문항 중에서 골라주시오. A)기쁨, B)불쾌감. ‘나(바틀)’는 정신 병원이 아니라 집에 가고 싶었고, 그래서 A에 체크한다.

 

바틀은 ‘자라는 기억’이라고 말한다. 끔찍했던 상흔들이 지워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오히려 자라난다고. 무엇처럼? 초목들처럼 자라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상상해 본다. 바틀의 언어에는 나무와 꽃 이름들이 듬성듬성, 그러나 마치 어떤 패턴이 있는 듯 툭툭 언급된다. 그리고 지나가는 투로 새들을 얘기한다. 마치 지나가는 투로 무심하게.

 

‘시체 썩는 진창-공터’는 비참하다. 채 애도되지 못한 대지는 죽은 목숨들에게도 산-죽은 목숨들에게도 휴식-휴지(休止)의 장소가 되지 못한다. 그 비참의 땅에 초목이 자랄까? 자랄 것이다. 기억들처럼. 마치 의지를 지닌 것처럼. 저 시체들이 물질이 되어 영양분으로 흡수되어 자라게 될 초목들처럼 기억들도 자랄 것이지만, 그 기억의 터에 그 기억의 나뭇가지에 새는 어떻게 둥지를 틀었다가 다시 날아올라 떠날 수 있을까? 제사(題詞)로 쓰인 토마스 브라운 경의 문구처럼자연의 섭리덕분에 우리의 슬픔은 반복이라는 날을 들이대어도 처음처럼 쓰라리지 않을 것.을 기대하고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아니다. 이런 형식의 질문은 적절치 못하다.

 

비참의, 슬픔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바틀의 인식은 희망의 내용을 말함이 아니다. 슬픔의 형식으로 살아가기, ‘존중의 그늘’에 죽음을 뉘는 일이다.

 

 

 

P.S.

노란 새를 읽으며 나는 왜 그런지도 모르게, 카우보이 비밥의 OST No Disc에 수록된 Green Bird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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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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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8: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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