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풍경을 반듯한 선으로 그린 그림들을 보고 왜 불안감을 느꼈는지. 원인은 몇 가지가 있다. 최근에 나눈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경제적 하층으로 떨어질 것에 대한 공포감을 누구나가 느끼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창밖 뉴욕』 저자들의 성공에 질투와 시기심을 느껴서 그랬는지. 얼마 전 눈길에 미끄러져 왼쪽 눈가에 찰과상을 입고는 안경을 쓰고 있는 나 자신, 언제라도 예기치 못한 사건에 실명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새삼스럽게 거대하게 느껴져서 일지. 『크랙 캐피털리즘』을 읽으며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는 행위를 초긍정적으로 보다가 혹 이 자본주의라는 도시가, 건축물이 그 수많은 균열들로 붕괴된다면 나는 또한 그것을 긍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

 

이런 생각들이 얽히고 설켰다. 그렇지만 차차 생각이 가라앉았고 차분해졌다. 풍경보다 창틀이 역시 중요하다. 인식되지 않는 일상의 일상적인 것들, 사람들 중에 내가 어떤 것에 반듯한 창을 향하게 하여 중요하게 볼지. 그것을 결정하는 일이 내 손에 달렸음을. 그리고 그 행위가 무엇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임을. 보다 차분하게 관조할 수 있었다. 모종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재는 찰나적이어서 성찰의 빗물이 골고루 스며들지 않는다. 그래도 할 수 없다. 하는 만큼 해야지. 내 창이 향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나다. 비록 그 창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크라이슬러 빌딩이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아니라 급수탑이거나 이웃집 창문이거나 낡은 비상계단이거나 벽돌 벽뿐이더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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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1 2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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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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