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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에서 플롯 전진형 술어, 주어 충전형 술어라는 개념을 읽고서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했다. Interpreter(통역사)는 수지(주인공)와 그레이스(주인공의 언니)의 이야기를 전진시키는데도, 두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네들의 성격을 충전해주는데도 중요하다. 거기에 나는 하나의 단어를 더 추가하고 싶다. 퀸스 출신. 김용수를 처음 만났던 첫 장면에서 3인칭인 화자의 목소리는 등장인물인 수지의 그것과 포개진다. 3인칭이라기 보다는 1인칭적인 묘사. 흔히 자유간접화법이라고 하는 인칭 변화를 통해 김용수를 묘사하는 그 대목에서 나는 수지의 안목에 상당히 놀랐다. Profiler(범죄 심리분서가)의 그것과 같은 정도의 날카로운 관찰력. 수지는 Interpreter로서만이 아니라 Profiler의 능력도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 이것은 소설의 가장 큰 수수께끼인 ‘수지 부모님의 죽음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하는 의문에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더한다. 가족과의 행복한 기억이 없던 유년시절과 부모와 절연하게 만들었던 중년 백인과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갑작스런 부모의 죽음.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속이 텅 빈 수지. 그녀가 Profiler 수준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고 있다는 그 사실은…
5년 전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그녀가 ‘짐작하는 바’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못한) 것은 무엇인지, 기억의 수면 위로 아직 떠올리지 못한(않은) 것은 무엇인지..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감춰진 이 수수께끼야 말로 나를 흔들었다. 사실의 파편들을 꿰어 하나 하나의 진실을 접할 때마다 느꼈을 그녀의 아픔. 속울음 울고 있을.. 그 모습이 그려졌다.
Interpreter(통역사)로는 더 질긴 이야기, 어쩌면 더 아픈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못하겠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