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적 에고(ego)의 시선을 유화, 누드화, 광고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낸 글이다.

 

대상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처럼보이게 했던 유화는 곧 부자들이 자신들의 소유물들을 과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금고역할을 하게 되었고, 관객을 의식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성의 누드화는 여성을 또 하나의 소유물로 여기는 남성들의 시각을 드러낸다. 광고는 유화적 형식을 빌려왔으되 현재의 시점이 아닌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느끼게 함으로써 광고를 대하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암약적 불안을 느끼게 한다.

 

전에 이 책을 보았을 때 내가 요약한 내용은 이랬다. 이 내용을 하나로 꿰뚫는 무언가를 찾다가 에고의 시선과 주체의 시선이라는 측면으로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적 시선이고 또 하나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들의 시선이다.

 

 

먼저 에고(ego)의 시선. 자본주의적 에피스테메에 잠긴 시선이다. 원근법 상의 소실점 자리를 차지하는 시선. 개별적 차원에서는 스스로의 과대망상을 키우고, 관계적 차원에서는 여성을 낮게 대하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타인들에게 선망을 불러 일으키는 일련의 기제를 작동시키는 시선인 것이다.

 

주체의 시선은 이런 것. 찢어지게 가난했던 프란스 할스가 부자들을 그리면서도 가난뱅이로서의 보는 방식을 뛰어넘으려 했던 것. 대상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강렬하여 관객이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그려낸 렘브란트의 누드화 같은 것. 그림 속의 대상이 현실감을 전혀 갖지 않게 만들려고 했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안목 같은 것.

 

 

‘For the rich is not art’

주체의 시선을 갖추는 것. 누구도 제대로 반박하지 않는 시대적 전제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런 시선. 보는 방식(Ways of seeing)만의 문제가 아닌 그것. 내가 성취하고 싶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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