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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여행하는 법 - 토킹 헤즈 리드싱어 데이비드 번의 코스모폴리탄 자전거 여행
데이비드 번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가 여행기를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출간되어 나오는 책들의 수준이 낮아서라거나 해외여행에 대한 꿈이 작아져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겠다. 국내에 출간되는 대부분의 여행기들은 그저 인터넷에서 검색어만 두드리면 접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만을 알려줄 뿐이거나, 전공자의 지식으로 현지의 역사적, 철학적, 미학적 의의를 알려주는 교과서식 지식 전달에 그쳐 매우 협소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도 우연히 알게 된 보통 사람들이 전부고. 그 모든 것들이 여행을 목적으로 한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번의 이 책은 여행을 목적으로 한 여행기가 아니다. 예술가로서 전세계 도시들을 업무(?)차 방문하고, 자전거 매니아인 자신의 눈으로 본 각 도시들의 자전거에 대한 친연성을 중심으로 도시의 무의식, 도시인의 욕망을 읽어내는, 관광지로서가 아닌 현재 우리가 사는 현대 도시의 우울한 면모와 그럼에도 희망적이 될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내고 있다. 단일 컨셉으로 기획된 포트폴리오 같은 느낌.
세계적인 음악가이기 때문에 각 도시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들 또한 명망이 높은 사람들이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나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 나라에서는 대단히 유명한 뮤지션)나 샌프란시스코의 남쪽 쿠퍼티노에서 만난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 같은 이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그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인지 짧게 짧게 정리한 글들이었지만 관광객 모드인 책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다. 게다가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해서인지 읽을수록 빠져드는 문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멜다를 주제로 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직접 필리핀을 방문한 얘기와 영국의 터너상을 수상한 그레이슨 페리에 대한 글, 주류와 비주류라는 제목으로 걸작의 기준에 대해 논한 글, 마지막으로 뉴욕의 자전거전용도로 확충과 관련된 글들은 전문서적이었다면 딱딱했을, 관광객 모드 여행기였다면 자기 감상적 소회에 머물고 말았을 것들이었는데, 리드미컬한 드럼 소리처럼 정보와 감상의 강약이 제대로 조화를 이뤄 임팩트 있게 표현되었다.
뉴욕, 베를린, 이스탄불, 부에노스아이레스, 마닐라, 시드니, 런던, 샌프란시스코 등(그러고 보니 마닐라만 빼고는 전부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는 곳들이구나..) 현대 도시들에 대해 다른 어디서도 듣기 힘든, 인상적인 예술가의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