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 우연적 삶에 관한 문학과 철학의 대화
이유선 지음 / 라티오 / 2008년 10월
평점 :
철학책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내 삶에 어떤 수미일관하는 논리나 체계를 스스로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잡한 인간관계, 던져진 여러 문제들에 대해 내 태도를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선과 꺾은선, 곡선을 언제 어디서 어떤 논리로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철학자들의 논리, 낱말들은 만져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렸을 적 자유자재로 갖고 놀았던 큐빅처럼 ‘조작’하고 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가면서 놀이를 하듯 그렇게 ‘맘대로’ 즐길 수 있었으면 했는데 지금까지는 잘 안되고 있다.
이유선의 이 책의 부제는 ‘문학과 철학의 대화’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보다 어깨에 힘을 빼고 피부에 와 닿는 표현들을 많이 사용해서인지 아주 친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표현의 이런 친숙성보다 책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지키고 있는 어떤 태도다. 그는 스스로 그런 태도를 ‘아이러니스트’의 자세라고 부르고 있었다.
최근에 읽은 권혁웅의 <<몬스터 멜랑콜리아>>는 롤랑 바르트의 영향 하에 쓰여진 작품이었고 다치바나 아키라의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진화심리학적 발견들에 기대었다면, 이유선의 이 책은 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의 철학을 기반으로 해서 철학과 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이러니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지막 어휘가 다른 사람에게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는 확신이다.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용어로 자신의 삶을 요약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는 아이러니스트 자신의 사적인 완성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인생이 자신을 넘어선 어떤 것에 의해서 좌우되거나 자신보다 큰 힘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삶의 우연성을 긍정하는 것, 곧 삶의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스트의 관심사이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완성에 대한 관심을 지켜주는 장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잔인성에 대해 반대하는 자유주의의 연대는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완성을 위한 노력보다 앞서야 한다. 플라톤을 계승하는 철학자들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외쳐대지만, 사실은 자유가 없다면 진리도 없다. 그래서 로티의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각자가 저마다의 마지막 어휘를 가지고 고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밀실’을 확보하기 위해 실천적인 연대의 ‘광장’에 나서는 것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는다.
이 인용문은 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과 최인훈의 <<광장>>을 엮어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를 정의 내리고 있다. 요약하면 아이러니스트는 연대에 대한 욕구와 사적 진리에 대한 소망을 병렬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뭔가 차이 나는 개념이 카뮈의 ‘부조리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아이러니와 부조리의 뉘앙스의 차이는 ‘희망’ 또는 ‘기대’라는 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아이러니라는 어휘는 인간이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상이 필요하다는 심리학적 결과에 긍정하고 있는 반면에 부조리는 미래의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 ‘불모’의 사고라고 (카뮈는) 말한다. 카뮈가 ‘반항’이라는 어휘에 방점을 찍은 반면 로티는 ‘연대’라는 데 방점을 찍은 것도 이러한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아직은 내 손안에서 장악되지 않는 단어들이지만, 두 철학적 어휘들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원했던 나만의 ‘마지막 어휘’와 친연성이 높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개념에 대한 생각 자체가 내게 득이 되었다. <<시지프 신화>>에서는 약간만 다루고 있는 ‘자기기만’과 ‘자기기만에서 빠져 나오는 법’을 알려주는 아빈저연구소의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밖에 있는 사람>>을 다시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과 절판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을 어서 찾아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와 사적인 진리라는 말에 내가 너무 혹했나... 이 내용 말고도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철학-문학의 짝들은 아주 흥미로운 데가 많았다. 특히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함께 얘기하는 장과 <<눈먼 자들의 도시>>와 들뢰즈의 철학을 논하는 장은 즐겁기 그지 없었다.
진중권처럼 화려하진 않다. 그러나 나는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유선의 사유와 문장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