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해,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직장인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이런 답변들이 나오지 않을까. 누구누구가 떠났고 누구누구가 새로 왔고.. 팀을 이동했고 승진했고..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이동의 시즌은 찾아왔다. 팀장이 다시 바뀌었고 팀 동료 다섯 명이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어제 모두 이삿짐을 옮겨 자리 셋팅했고 새해 첫날부터 우리는 또 다른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그것은 약간의 두려움이고 설레임이다. 내 뜻대로 만들어진 삶의 마디는 아니지만 때로는 이렇게 남에 의해 만들어진 마디가 나쁘지만은 않다. 새해가 왔다는 것을 이보다 확실히 느끼게 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드는 마디도 하나쯤 있어야겠지.

2011년 읽었던 책들 중 나만의 베스트 소설을 추려본다.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줄리언 반스

- 위트, 지적 통찰. 그리고 말로 할 수 없는 먹먹함.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 저마다의 과오를 향해 치닫는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내 어리석은 모습임을.

 

카모메 식당, 무레 요코

- 느닷없는 행동과 태평스러운 생각, 동화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녀들의 삶의 태도에는 내가 훔치고 싶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 비비고 문질러댄다. 읽었을 때나 지금에나 이 말 밖엔.

 

멋진 추락, 하 진

- 평범해 보이는 사람의 손속이 이렇게 단호할 수가. 평이한 문장이 그려내는 이미지가 이렇게 선명할 수가.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 소설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월든옆에 나란히 꽂아두고 수시로 수시로 읽고 싶은 마음뿐

 

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 유독 기억에 남는 남자주인공들이 많았던 한 해, 필경사 바틀비와 한밤의 아이 살림 시나이, 그리고 나무 위의 남작 코지모. 내가 여자라면 이 사내와 사랑에 빠졌겠지.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 캐시가 흐느끼던 그 순간, 내 안 어딘가 둑이 터져 버렸다.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 오직 환상에 관계된 것처럼 보이는 게 소설이라는 장르지만, 제발트의 소설은 진리를 말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오에 겐자부로

- 생각, 생각, 생각. 끊임없이 전두엽을 자극한다. 생각하게 한다.

 

 

한밤의 아이들, 살만 루슈디

- 백문이 불여일독

 

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 부풀어 오른 공허감이 어느새 잠잠해졌을 때 나는 진심으로 사는 게 새삼스러웠다.

 

 

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

- 삿포로에서의 빙글빙글 드라이브, 해방감을 느낀 그 순간.

 

흑산, 김훈

- 당면한 곳만이 삶의 자리. 이 문장이 추구하는 바의 끝을 보게 된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존 쿳시

- 서로간에 절대 사라질 수 없는 불편함. 그 없앨 수 없는 삶의 노이즈. 그 노이즈야말로 진짜배기.

 

 

이들 15권 중 2011년 올해의 책은

 

<<주기율표>>

 

이유는? .. 달리 있을까. 그저 마음이 그렇게 가리킬 뿐.

다만

질책이나 위로하는 말들의 소음 없이, 어찌할 수 없는 큰 소용돌이 한 가운데 고요히 놓여져 있는 스스로를발견하게 한 계기가 되어 주었다는 점. 그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져서.

 

 

2012년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카뮈의 <<시지프 신화>> 맨 처음을 장식하는 핀다로스의 이 시구처럼, 새로운 해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사는그런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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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3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스테르담]은 읽고나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까 더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되요. 이언 매큐언은 항상 그래요.

[한밤의 아이들]...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읽은/가지고 있는 책들이 많아 기뻐요!!!

dreamout 2012-01-01 20:00   좋아요 0 | URL
이언 매큐언은 좀 신랄한 데가 있는 것 같아요. 더 쎈 책들만 남아 있어서 은근 기대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