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후설에서 메를로퐁티까지 철학의 정원 7
피에르 테브나즈 지음, 김동규 옮김 / 그린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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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를 봤을 때 조금은 놀랐었다.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그치고 겉으로 보이는, 관찰할 수 있는 것만을 관찰해서 일기를 쓰겠다고 하고, 써낸 투르니에의 시도가 내 편견의 한 귀퉁이를 찢어발겼다. 나란 인간은 그때까지도 으레 일기란 것은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맨날 슬픔이니 외로움이니 실패니 하는 것들만 써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글쓰기가 스스로도 재미없고 심드렁했다. 지금도 글쓰기가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쓰기가 영 안 풀린다 싶을 때는 나르시시스트로서의 나를 벗어 던지고 겉으로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 만져지는 것들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즐겁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공자의 이 말씀이 이제 내게는 투르니에가 ‘외면일기’를 써 보라고 권했던 그 맥락으로 여겨진다.

후설은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고 말한다. 의식은 딱딱하고 고정된 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외부 대상과 관계하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식과 대상이 관계 맺는 방식을 지향성이라고 하는데, 이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의식-대상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데 묶여 경험이라는 사태를 이룬다. 이렇게 되면 대상은 데카르트의 생각처럼 나 바깥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 안에 현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된다. 그러니 이 주어진 것은 분리시켜 고찰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학적 환원(또는 괄호치기)은 흔히 관찰이라고 하는 행위를 대단히 흥미롭게 만든다. 게임의 법칙이 좀 복잡해졌다고 할까.. 대상만을 그저 관찰하는 것과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며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이 책은 현상학의 이런 기초 사항들이 하이데거의 DaSein에 사르트르의 자유에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갔는지를 간명하게 보여 준다.

의식 안에 현상이 드러나는 것을 본다. 는 것이 왜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김훈의 <<흑산>>을 보면 그 화자의 포지셔닝이 아주 묘하다. 초월적인 위치인데, 당대 설움 받는 인간들에게 가깝다. 가까우면서도 실은 한참 멀기도 하다. 김훈이 <<흑산>>을 내놓고 한 인터뷰에서 다윈의 책을 수시로 읽은 것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흑산>> 화자의 시선과 의식적 판단의 언어에는 관찰의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 다윈의 어떤 것들이 녹아져 있는 듯 하고, 수학자이기도 한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방법론이 드리워져 있는 것도 같았다. 안셀 아담스의 F64의 시선 같기도 하고 F2.8로 얕게 찍은 사진 같기도 해서.. 뒤죽박죽 주관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은 자기가 판단할 수 없거나 판단하기 싫은 것들 모두에 대해 판단중지를 하고 존재의 어떤 측면을 열어 보인 것들에 대해서만 썼다는 의미에서, 현상학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었다. 그 엄밀함 한 가운데 드러나는 것들이 매우 리얼해서, 그 리얼의 리얼감을 좀 죽이기 위해 이 책에서 소개하는 현상학의 둔한 개념들이 내겐 좀 필요했던 듯도 하다. 어쩌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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