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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임스 우드 지음, 설준규.설연지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평점 :
1.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던 것은 아마 겉멋에 들었던 나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고, 조르바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경전 보듯 했고, 바나나의 키친은 우연히 만난 위로였고… 겉멋이었고 경전이었고 위로였던 소설을 좀 다르게 보기 시작했던 것은 어떤 하나의 소설작품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생활’의 반작용이었다. 사회의 효과/효율 지상주의는 사람을 한쪽 방향으로만 몰아가 결국 나를 뿔나게 만들었다. 나는 무용(無用)한 것. 그렇지만 의미심장한 무용한 것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때 내가 새삼스레 찾아낸 게 소설.
하지만 읽은 소설의 권수가 누적될수록 소설이 무용(無用)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미묘한 것들을 알아채는 감각.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이것이 조금씩 발달됨을 확인하게 되었다. 서울대입구역 방향으로 무심한 야간 산책을 나갔던 어느 날에 내가 생각했던 것이 저자가 쓴 글과 딱 떨어졌다.
‘문학이 우리를 좀 더 삶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만들면, 우리는 삶 자체에서 실습하게 되고,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를 문학의 세부사항을 좀 더 잘 읽는 독자로 만들면, 그것이 이번에는 우리를 삶을 좀 더 잘 읽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는 것이다.’
2.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에필로그에는 들뢰즈가 말한 독서법이 인용되어 있는데,
‘책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은 책을 어휘나 의미를 찾는 것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작용을 하는가, 어떻게 작용을 하는가?”하는 것만이 문제가 된다.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 만일 작용이 없으면, 감응이 없으면, 그럼 다른 책을 집어 들면 된다. 바로 이것이 강렬한 독서이다. 무엇인가 발생하든가 아니면 아니든가. 그뿐이다. 아무런 설명할 것도, 이해할 것도, 해석할 것도 없다.’
리얼리즘(사물의 존재방식에 대한 진실성)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 형식에 대한 진지한, 즐거운 설명. 이라고 말하면 너무 압축한 것일 테지만, 현재로는 이정도 말 밖엔 안 나온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이 책에 인용한 많은 현대소설의 생생한 문장들이 나를 들뜨게 했다는 것이다. 읽고 싶다. 더 잘 읽고 싶다... 제대로 작용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