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이순영, 책읽는수요일
고독의 위로라니, 이 책을 산 게 “사랑의 미래” 다음날이어서인지 두 권의 책 제목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의 미래”.. 동네 어른들이 아무개의 ‘미래’를 들먹일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지 않았나. 하나는 ‘어우, 그 녀석. 하는 걸로 봐선 나중에 크게 될 것 같아’ 하는 기대 섞인 반응. 나머지 하나는, ‘쯧쯧, 저 놈의 자슥은 나중에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하는 염려하는, 걱정하는 반응. 그리고 아마도 현실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경우는 후자의 경우가 아닐지… ‘사랑’이란 놈의 미래를 걱정하게 하는 뭔가가 ‘사랑’에게 있다는 말. 그 말은 ‘사랑’의 현재가 불안하다는 소리.
“고독의 위로(비록 번역서의 제목이지만)”.. 절망에 빠져 멍하니 있을 때, 잡아 끌듯 나를 일으켜 세워 가까운 포장마차에라도 앉혀놓고 소주 한 잔 내밀며 ‘마시자’ 라며, 복잡한 얘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알아줄 것 같은 ‘고독’이라는 이름의 따뜻하고 듬직한 친구.
불안한 사랑과 듬직한 고독. 이라는 느낌과 기대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예상대로 ‘사랑’의 현재는 불안했고 미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억만 남았다. 하지만 이 기억이 뭐에 소용될 수 있을까. 또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사랑에는 방해가 되기 쉽고 나이 들어 추억으로나 소모되는.. 사랑의 경험은 새로운 사랑이 왔을 때 ‘더 잘해야지’라는.. 하아… 되지도 않을 다짐만 하게 만들진 않았을까…
“고독의 위로”는 포장마차와 소주와 입김 나는 추운 겨울 밤의 그 ‘고독’이 아니었다. 고독이란 것이 어떤 ‘소용’이 있는지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설명이었다. 자기계발서의 언어와 매우 비슷한. 확실히 나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같은 내용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독의 위로”는 분석적이었다. 꽤나. 그러니 내 친구 ‘고독’의 직업은 정신과 의사여서, 뭐랄까 강남 사거리 어느 자리에 새로 개업한 의사선생을 만나는 기분이 꽤나 들었다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대가 워낙 삼천포였어… 하지만, 그의 조언이 나쁘진 않았다. 소용이 없진 않았다. 아니 아니…. 꽤나 도움이 되는 말들이었다.
내 생의 중력, 홍정선 강계숙 엮음, 문학과지성사
“내 생의 중력”이라는 시집의 제목과 엮은이 강계숙의 해설에서 말 한 ‘자의식’과 ‘자화상’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나는 ‘내 생의’ 중력이라고 느낄만한 것들이 매우 소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중력이란 것이 무거운 것에서 더 많이 느껴지는 힘이긴 하지만, 모든 것들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던가. 내 생의 중력이 있다면 모든 것들에게, 무거운 것과 깃털처럼 가벼운 것에게도 작용하고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멈칫했다. 죽음과 사랑, 기쁨과 슬픔, 좌절과 성공 같은 무거운 것들도 있겠지만, 막힌 싱크대 수채 구멍을 어떻게 뚫어야 하나, 오늘 맬 넥타이는 뭐로 하지 하는 사소한 것들에게도… 내 생의 중력은 작동되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아, 그렇다면 문제는 100톤의 무게인데 10킬로로 생각한다든가 10그램짜리인데 100톤으로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겠구나. 여기 문지 시인선 301호부터 399호까지의 시집에서 뽑은 시들도 독자들에게 아마 그럴 것. 어떤 것이 100톤인지, 10그램인지에 대한 느낌과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실은 나로서는 그렇게 무게가 많이 느껴지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 내가 보기에 나는 확실히 늦게 반응하는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이 선곡한 여러 작가들의 짬뽕 컴필레이션에는 별로 반응하지 못하고, 한 작가의 것을 하나 하나 읽는 그 누적의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어서는 그 순간에만 제대로 뭔가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새삼 느꼈다.
개념어 사전, 남경태, 들녘
유기적인 맥락을 따져가며 읽기 힘들 때, 사전은 좋은 선택이다. 전에 읽었을 때 뭔가 미진한 것이 남은 것 같아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이제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사계절
“개념어 사전”으로는 부족하여, 다른 이의 개념 얘기를 듣고 싶어 샀더니, 또 강신주. 정말 책 많이 내는구나… 함께 구입한 진중권의 “아이콘”과는 방향이 아주 다르지만 어쨌든 내가 원한 건 ‘개념’ 설명.
소설의 ‘이야기’가 육류 요리라면, 철학이나 과학의 ‘개념’은 채소다. 육류 요리만 먹기는 너무 힘들다. 아삭아삭한 로메인 상추나 샐러리, 오이 같은 것이 땡기 듯 ‘개념’을 섭취하고 싶은 계절.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보다는 개념의 용례만 주의 깊게 보았다. 나쁘진 않았으나, 이 사람 이렇게 계속 나가다간 쉽게 질리겠다 싶었다. 다 읽었는데도 아직 섭취 부족. “아이콘”까지 내리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