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미래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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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를 하고 말하는 게 낫겠다. 1은 저자가 ‘날카로운 가시 같은 문장들’이라고 느꼈던 시어들. 각 글들의 맨 처음에 인용/제시되어 있고 (물리적으로) 왼쪽 페이지에 전시되어 있다. 2는 저자 자신의 문장들. 그와 그녀라는 인물을 통해 에세이 같은 픽션 같은 그렇지만 또한 詩를 갈구한 문장들.

41개의 1, 그 중 몇몇은 전부터 좋아했던 그 중 몇몇은 읽었던 것이었지만 기억나지 않았던 그렇지만 대부분은 알지 못했던, 1은 좋았다. 詩에서 떨궈 나온 몇 줄의 詩 파편은 파편이지만 詩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그러한 파편이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멈췄고 파고 들었고 아득했고 먹먹했다. 허수경과 이성복과 쉼보르스카와 김행숙과 등등등.

2에서 자주 보이는 낱말들. 이를테면,
오직, 무력감, 환멸, 영원, 파국, 환상, 절망, 부재, 유일, 확신, 봉인, 완벽, 절연, 주술, 현존, 순수, 악마적, 참혹, 원초적, 미학적, 낭만적, 명멸, 완성, 황폐한, 소멸…
저자의 말대로 ‘낭만적 과장법’이라 부를 만한 단어들. 이는 우리가 사랑을 얘기할 때 어쩔 수 없이 토해내는 말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을 빌미로 쓴 2의 언어들은 유리잔의 깨진 파편처럼 날카로워 찌르는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온기와 냉기. 그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시를 보았을 때 느끼는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냉기나 좋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 느끼는 털목도리 같은 온기. 그것이 없었다.

10월의 한가한 토요일에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열로 조금은 비닐하우스 같은 답답함을 느꼈던 홍대의 스타벅스. 그곳 창가와 가까운 자리에서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유리잔의 파편들은 내 맨발에 피를 흘리게 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내 발바닥은 이미 쇳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밟고 지나가니 유리파편들은 전부 가루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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