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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평점 :
평이한 문장을 따라 쉽게 읽다가 어느 순간 멈칫. 끝을 먼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참다 참다가 결국 패배감을 느끼며 끄트머리 페이지를 슬쩍 본 게 서너 편에 이른다. 현실 그대로를 담고 있다는 걸 알기에, 삶. 그 독한 일면에 멈칫, 숨을 죽인다.
뉴욕 퀸스 플러싱을 배경으로 중국 이민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어, 미국 현지인들이나 다른 민족 이민자들과의 마찰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처음의 내 예상과는 달리 갈등의 중심은 오히려 같은 중국인 사이, 가족 사이다.
중국 현지의 동생과 뉴욕 언니간의 갈등(인터넷의 해악), 동향 출신의 약점을 잡아 괴롭히는 인간(미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미워하는 뉴욕에서 자란 손주들(원수 같은 아이들), 뉴욕에 들른 시어머니와 아내와의 갈등 사이에 낀 남자의 고민(십자포화 속에서), 주미 중국 뉴욕영사관의 중국 인민들에 대한 정서적 폭력(부끄러움), 동족을 착취하는 사람들(연금 보장, 벚나무 뒤의 집, 멋진 추락), 부부 관계가 채권채무자 관계가 되어버린 커플(계약 커플) 등
짧은 소설 안에, 쉽게 읽히는 문장 사이마다 흠칫 놀랄만한 이민자 개개인에 대한 뛰어난 관찰의 결과들이 녹아 있다. 그들의 행동과 그것의 동기를 암시하거나 직접 드러내는 그 문장들을 볼 때마다, 큰 대로변 작은 골목 안 또 그 안에 숨겨지듯 존재하는 어두운 뒷골목을 보듯(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각자의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 그들의 복잡한 정서를 실감하게 된다. 50밀리 표준렌즈로 보듯 과장되거나 축소되지 않는 삶. 그대로를 직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