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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평점 :
이 소설에 없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명동역의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만난 여자아이. 할머니 손을 잡고 한성화교소학교 가방을 메고 노란색 외투에 초록색 신발을 신고 깜찍하게 웃는 아이, 내 딸로 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이를 보고서야 이 소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보였다.
현대의 ‘일’ 때문에 펼쳐진 그림이라는 점에서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와 우연히도 공유되는 측면이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일과 일하는 공간, 이뤄낸 것들의 지리학을 넓게 펼쳐 놓고 있었는데, 편혜영은 그 중 한 지역에 중독된 듯 맴돌고 있는 품세였다. 그곳은 동일성의 반복이라는 근대의 ‘일’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 개인의 내면에까지 미친 끔찍한 영향이 전장처럼 펼쳐진 곳이었다. 생화학무기에 당한 듯한 모습이 인물들의 저변에 기이하게 깔려 있었다.
불안과 공포.
끓는 냄비 속 개구리는 혁신을 거부하는 이들의 종말을 표현한 우화로 이름이 높다. 그 우화는 현실을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데, 설사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오르고 있음을 재빨리 눈치채고 펄쩍 뛰어 냄비 밖으로 나가려는 개구리가 있다손 쳐도 말이다. 사실, 그 냄비는 잠실종합운동장만 하다는 것이다. 뛰쳐나가고 싶어도 개구리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인 ‘구조’일 수도 있음을 이 우화는 놓치고 있다. 편혜영의 소설 속 등장인물과 우리가 현실의 개구리라면 모든 잘못이 개구리 자체에 있음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기만 하다. 구조는 개체에 우선한다.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모양,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