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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지한 흑백사진들이 회의실 의자에 앉은 사람마냥 자리잡고 있다. 책을 세로로 보니 사진이 인쇄된 페이지들의 겹침이 마치 바코드 같다. 책도 하나의 상품임을.. 누군가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표지 디자인을 하고, 폰트도 선택하고, 교정도 하고, 인쇄를 해서, 온 오프를 통해 사서, 물류를 통해 받아보는 긴 과정을 통해 ‘상품’으로 도착하였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책에는 저자와 번역자, 편집자를 비롯한 출판사 직원들의 이름만이 실려 있지만 이 상품 하나가 내 손안에 들어오기까지는 무수한 익명의 존재들의 손을 탔을 것이다.
우리가 산 서비스나 재화를 보고 이런 과정들과 그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 따위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같이 생각해 보자며 슬며시 손을 이끈다.
일의 의미를 얘기한다면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밥 먹고 살려고’ 라는 ‘생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알랭은 잡은 참치를 몽둥이로 내려치는 어부들을 관찰하면서 ‘생존’을 위한 일. 그것이 품은 깊은 페이소스와 아이러니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자꾸 잊게 되는 것, 무시하고 넘어 가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일의 미학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
송전탑과 송전선의 아름다움이 관광지의 풍차보다 못할 것이 전혀 없음을, 거대한 화물선은 그것 자체가 숭고한 감정을 불러 일으킴을, 심지어 심리학까지도 동원하여 만드는 비스킷 상자의 완전성을.. 그는 편견 없이 바라보라고 내게 권한다. 일을 하는 공간과 만들어낸 상품을 하찮게 여기는 미적 태도는 우리가 하는 일에 온전히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일의 윤리학.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직업상담 컨설턴트인 시먼스가 사무실 변기 위에 써 붙인 매슬로의 이 말은, 원하는 일을 찾은 소수에겐 겸손함을 불러 일으키고 그렇지 못한 다수에게는 위로를 준다.
모하비 사막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날지 못하는 비행기 잔해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했던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룩한 어마어마한 것들을 인식하게끔 유도한다. 그 모든 이들에게 경외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풍경.
그러니 잊어버리지 말고 챙겨야 할 것은,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 영화관>>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일 때문에 인간을 무시하지 말자. 타인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말자.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