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반에 눈을 뜨고 다시 누웠는데, 11시 반이다. 2010년의 어떤 무게감과 피곤함이 연말의 마지막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가, 그건 2010년의 피곤함이기도 하지만 실은 2011년의 어떤 희망에 대한 무게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제는 이동이 있었다. 회사 내 거의 대부분의 부서가 이동을 하기 때문에 시끌시끌했는데, 3일에 출근하면 완전히 다른 인적, 물적 구조하에서 근무하게 될 터이다. 상무도 바뀌었고 팀장도 바뀌었다. 나는. 팀도 바뀌었다. 빠른 물살로 흘러간 연말이었다.
1월도 새로운 업무로 거세게 흘러갈 것이다.
이미 작년이 된 2010년. 내가 읽은 것들 중에 베스트만을 추려본다. 해마다 하는 의식이다. 한 해의 페이지를 접고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기분으로. 올해는 간만에 비소설도 몇 권 포함해 본다.
먼저 비소설 4권.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 비소설 분야를 베스트 책에 포함시킨 이유가 바로 이 책 때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좋았다. 피아노, 파리.. 열정, 꿈.. 사랑스러운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 읽는 동안 치유되고 읽는 동안 행복해졌다.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력이 대단하다.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크리스마스에 몇몇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 보내라고. 맨날 똑같이 보내는 게 싫증이 나서 쉼보르스카의 이 시집에서 몇몇 문장을 발췌해 함께 보냈다. 어디에서 인용한 거냐고.. 뭐…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더만.. ㅋ
올해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반향이 대단했다. 나도 읽었고, 좋은 책들이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전적으로 내 취향이므로 두 권은 제외~
이제, 아주 신중하게 뽑은 2010년 베스트 소설 11권.

플로베르의 앵무새, 줄리언 반스
- 애호하는 대상을 줄곧 얘기하다 그 대상을 애호하는 사람, 즉 자신의 이야기를 툭 던지듯 꺼낸다. 나의 감정도 툭 터진다.

눈에 대한 백과사전, 사라 에밀리 미아노
- 알파벳순으로 된 짧은 항목들, 그 항목들이 서서히 드러내는 사랑 이야기.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 무엇보다 터키의 세밀화에 대한 파묵의 관심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애착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단.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 삶의 본질은 온기다. 이 짧은 문장은 올해의 문장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 멜랑콜리 여행 멜랑콜리의 동화(同化)

백의 그림자, 황정은
- 메타포는 제쳐둬도 좋은 대화의 묘미

로우보이, 존 레이
- 타인을 안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은 실은 대단한 것이 못될지도 모른다. 이해의 가장자리엔 늘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존 맥그리거
- 관찰, 묘사. 두드러진 스타일.

찌꺼기, 톰 매카시
- 전에도 말했지만… 기절할 것 같은 세계관

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 혼탁하게 섞인 세계와 개인

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 마그다. 그녀.
총 15권이 올해의 나만의 베스트.
그 중 딱 한 권을 뽑기는 여전히 어렵다. 스밀라와 찌꺼기, 나라의 심장부에서가 최후로 남은 세 권이었다가... 그래.. 올해는 두 여자 주인공들에게 공동 수상을 해 주자. 라고 마음 먹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스밀라,
<나라의 심장부에서>의 마그다.
그녀들. 삶의 온기를 붙잡기 위한 각자의 처절하고 눈물겨운 투쟁. 그 투쟁의 과정을 보며 나는 그 어디에서보다, 무력해진 자신을 회복하게 되었다.
201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뜨겁고 멋진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