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는 그 어느 해 보다 많은 책을 샀다. 그리고 그 어느 해 보다 덜 읽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밤마다 책들의 웅성거림 한숨 궁시렁 원망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해 맘이 편칠 못하다.
그래서 그 책들의 원망을 조금이라도 상쇄시키기 위해, 올해 구입한 책 중에서 아직 읽지 않았으나 아마도 읽었으면 올해의 베스트 소설에 들 법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내 맘대로 책 리스트를 정리해 본다.

룸(Room)
이 소설은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 워낙 파격적인 상황 설정이다 보니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일찍 번역되어 나와서 바로 구입했지만 못 읽고 해를 넘기게 될 것 같다. 20여 페이지를 읽었는데, 아마도 훨씬 감수성이 좋은 시기에 읽어 내려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눈물을 자아내는.. 어쩌면 성탄 시즌에 어울릴만한 독서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정신상태가 이걸 지금 바라지는 않는다.

너무나 많은 시작
존 맥그리거의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을 읽고 딱 내 스타일이라고 했고, 다른 책이 나오면 바로 사겠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이지 바로 다음 소설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인터벌이 너무 짧아서 독서는 다음 기회로.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의 주인공 부모 얘기라고 하니 관심이 더욱 간다.

울프 홀
작년도 맨부커상 수상작. 내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문학상이다. 노벨문학상은 작가가 중심인 상이라 내 입맛에는 딱 맞는다고 볼 수 없다. 여러 나라의 여러 문학상들이 존재하지만 꾸준한 신뢰성 하면 맨부커상 외엔 떠오르지 않는다. 역사소설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살짝 보았는데, 다들 역사지식들이 상당하더라. 난 헨리8세니 앤 블린이니.. 그 사람들이 그렇게 연결되는지도 몰랐다.

몰로이
베케트를 읽어보지 못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조차 본 적도 없고.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적 스타일리스트 작가 3인방. 조지프 콘래드, 사무엘 베케트, 알베르 카뮈.. 그래서 꼭 읽어봐야겠다. 가능하면 조만간..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다니엘서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전집이 마음에 안 든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샀는데 표지가 본래 책과 착~ 밀착되지 않아 겉돌고, 표지 디자인도 별로.. 본문 페이지의 종이 색감도 좀 그렇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더 별로지만 그건 그래도 싸기나 하니깐.. 그래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구입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닥터로의 이 책을 출판해 준건 고마운 일.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 필립 로스, 조이스 캐럴 오츠, 존 업다이크,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등과 더불어 관심 갖고 있던 작가였다.

하얀성
파묵의 책은 <<순수 박물관>>도 구입했다. 그런데 지금 <<하얀성>>이 더 땡긴다. 더 짧다.

둔황
이노우에 야스시, 내겐 생경한 이름이지만… ‘둔황’이라는 지명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래서 왠지 책도 훌륭할 것 같은 예감.

맛
로알드 달의 이 작품에 대한 뜨거운 찬사들을 수도 없이 들었다. 단편은 별로 끌리지 않아서 사놓고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어제 교보문고에 가서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단편집 10권)를 보고선 그만.. 다시 단편소설에 대한 열의가 살아날 것 같다. 바벨의 도서관 10권은 바로 지를 예정. 만듦새도 훌륭하고 디자인도 독창적이고 무엇보다 보르헤스의 서문이 탐이 난다.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의 번역책은 그 번역의 수준은 모르겠지만 나온 품새로는 솔출판사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마이클 커닝헴의 <<세월>>을 읽은 후 <<댈러웨이 부인>>을 언젠가 읽으리라 오랫동안 별러왔다. 조만간 읽고 말리라.

아메리칸 러스트
올해 한동안 회자되었던 소설. 두께가 만만치 않고 서사가 사람을 좀 힘들게 할 것 같아 손에 잡지 못했다. 왠지.. 읽다 만 소설 <<에드거 소텔 이야기>>처럼, 읽으면 중도에 멈출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꺼려졌었다. 망설임을 덮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1Q84
올해 3권이 나왔다. 4권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한꺼번에 읽으려고 1,2권도 아직 읽지 않았다. 아.. 이건 뭐 핑계고.. 실은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조지 오웰의 1984를 먼저 읽어야 할 의무감이 생겨서 1984를 사서 읽었는데, 중간에 멈춰버리는 바람에 하루키의 이 작품을 여지껏 읽지 않게 되었다. 오웰의 1984 자체가 싫었던 것도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모던한 작품이어서 읽으면서 계속 감탄했으니깐.. 근데 그냥 저냥 어쩌다 보니.. 1984를 먼저 읽겠다. 라는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년엔 읽게 될까? 읽게 되겠지…

콰이어트 걸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캐릭터와 서사, 분위기와 주제의식 등등에서 올해 읽은 소설 중에서도 최고 훌륭한 작품 중 하나였다. 콰이어트 걸은 내가 스밀라를 읽었을 즈음에 나왔다. 벌써 거의 일년이 지나간다. 겨울이다. 페터 회의 작품은 서늘할 때 읽어야 제 맛일 것 같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읽으리라.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신뢰가 간다.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스토리 라인을 듣고는 바로 구입해 버렸을 만큼 끌리는 데가 많은 작품이다. 술. 어찌 내가 읽은 소설에서 이것이 잘 등장하지 않는지 신기하다. 어떻게 술을 빼놓고 삶을 말할 수 있는지…

모비 딕
올해 구입한 최대 걸물. 읽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도대체 들고 다니기 힘든 두께와 무게. 그리고 나는 집에서는 도대체 책이 안 읽히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