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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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 담긴 내용.
‘책과 창녀는 무척 젊게 만들어 준다.’

소설의 주인공인 노인네는 아흔 살 생일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처녀를 선물하기를 결정했다. 한 번도 결혼한 적 없고 여자에게 화대를 주지 않고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는 노인네. 수백 수천의 창녀와 관계를 맺었다는 노인네. 수십 년 동안 일간지 등에 칼럼을 게재하고 책 읽기를 즐긴 인물.

이 노인네의 젊음(정력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유지 비결이 그럼 벤야민이 말했듯 책과 창녀? 그게 이 소설의 전부인가? 물론.. 아닌 것 같다.

~것 같다. 고 말하는 이유는 까짓 꺼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

나는 이 소설을 ‘시간을 다시 흘려 보내기’에 대한 이야기로 보았다. 사랑 없이 섹스만 하고 집에서 책만 읽고 신문에 자질구레한 칼럼만 써 대는 바보가 구십 세를 살았다 한들 그 구십 년의 세월은 둑에 막혀 고인 웅덩이에 불과할 뿐이고 시냇물처럼 강물처럼 졸졸 콸콸 흐르는 시간은 아니라는 것. 즉 나이는 구십이지만 실은 사춘기 소년 정도에 불과한 것. 구십의 노인네에게 다가온 처녀(라기 보다는 소녀)와의 첫사랑은 따라서 제대로 시간을 다시 흘려 보내는 일. 즉 정상적(?) 늙음(또는 성장)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의문점 하나. 그럼 그 구십 평생은 쓸모 없는 것이었는가?

어쩌면 이 노인네의 첫사랑 타령은 순 거짓부렁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마치 전에 사랑했던 여자가 새로운 사랑 때문에 제쳐질 때, 남자들 흔히 하는 말이.. 너는 내 사랑이 아녔어. 새로운 사람이 진짜 내 사랑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쉽게 역사를 왜곡하는 습관이 이 노인네에게서도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것. 즉.. 수백 수천의 창녀들 중 맘에 둔 여자는 하나도 없었어. 구십 평생 사랑은 이 처녀(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이 이 소설에서 노인네와 소녀는 단 한마디의 말도 육체적 관계도 나누지 않는다)뿐. 이라는 말은.. 이거야 원. 이걸 믿어야 해? 말아야 해?


그러니까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 받았던 것이다.


라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점에서 나의 이런 의심은 더욱 굳어져 가고..  마르케스. 이 양반.. 나이가 들어도 장난끼가 멈출 줄을 몰라…



위에.. 이렇게 썼는데 오늘 읽은 반 고흐의 편지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늙은 여자란 없다.’ (사랑하는 한 사랑 받는 한 늙은 여자는 없다는 말)

남자도 다를 바 없을 테니… 이대로라면 시간을 다시 흘려 보내기라는 내 말은 크게 곡해한 것이 된다. 이 말대로라면 이 노인네가 아흔에 사랑을 시작했으니 이제 늙지 않을 터이다. ^^

뭐 어때. 어떻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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