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작가의 첫 장편소설.
12살 진희는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로 나누어서 살아가고 있다. 12살의 시각으로 보기엔 너무나 무리한 설정 같아 보이지만 진희를 통해서 바라보는 사람사는 모습들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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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가슴속에서난 유년은 결코 끝나지 않는 법이지만 어쨌든 내 삶은 유년에 이미 결정되었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로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지만 진짜 나는 몸속에 남아서 몸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본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 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 된다. 물론 그중에서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진짜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