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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시계장치
마티아스 말지외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심장에 달려있는 시계소리를 듣게 된다. 심장에 달려있는 시계는 평소에는 잠잠하다. 그래서 시계가 달려 있는지조차 알 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시계는 커다란 소리를 내게 된다. 똑,딱,똑,딱...그제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심장에 커다랗고, 알 수 없는 시계장치가 달려있는것을.
'잭'의 출생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비밀스럽게 낳아놓고는 젖 한 번 물려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대신 매들린이 잭을 맡았다. 갓 태어난 잭은 정상적인 심장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매들린은 그녀의 기술을 발휘해서 심장에 시계장치를 달았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장 대신 시계장치가 잭의 심장 기능을 떠맡았다. 똑,딱,똑,딱 규칙적인 시계소리에 맞춰 잭의 피가 온 몸을 순환하기 시작한다.
매들린은 아무도 입양하려 하지 않는 잭을 가여워하며 잭을 온 몸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잭에게 어렸을때부터 주의를 준다. "절대로,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사랑에 빠지면 심장시계의 바늘이 네 몸을 뚫고 나오고, 뼈는 산산이 부서지고 심장의 시계장치는 다시 고장나버릴 테니까."
하지만 잭은, 늘 그렇듯이 사랑에 빠져버린다. 난생처음 나들이 간 마을에서 천사처럼 노래하는 작은 소녀를 보고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사랑에 빠진것이다. 매들린의 주의는, 결국 잭에게 아무 소용 없었다.
잭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에 빠지면 왜 심장의 시계장치가 고장나는지. 오히려 기분좋게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잘만 굴러가는데 매들린은 왜 사랑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시계장치가 고장나면 잭은 죽는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위험한 존재를 껴안고서라도 그 소녀를 꼭 만나고 싶다. 잭은 오직 소녀만이 가득하다.
그런 잭에게 멜리어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픔을 두려워할수록 아플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법이란다. 줄타기 광대들을 보렴. 그들이 외줄 위를 걸어갈 때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생각할까? 아니야. 그들은 위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수함으로써 즐거움을 맛보는 거야.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평생을 보내면, 사는 것이 끔찍하게 지루할 거다. 알겠니?"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잭은 소녀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나고, 마침내 그녀를 만나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잭은 알지 못했다. 심장의 시계장치가 고장나는건, 사랑이 시작됐을때가 아니라 사랑이 끝났을 때라는걸.
소녀와의 사랑이 끝이 보일 때, 잭은 스스로 심장의 시계장치를 뽑아버린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던 잭은, 결국 그녀를 잃는다.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 뒤에는 끝모를 고독과 부서진 시계장치만 남을 뿐이란걸 잭은 깨닫는다.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 때문에 느끼는 즐거움이나 기쁨은 언젠가는 모두 고통으로 뒤갚음 받게 되어 있어. 많이 사랑할수록 앞으로 닥칠 고통은 두 배, 세 배가 되는 거야. 넌 허전함을 느낄 거고, 그 다음엔 질투의 괴로움,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통, 버림받는 느낌, 부당하나는 느낌을 알게 될 거다. 뼛속까지 시린 한기를 느낄거고,네 살갗 밑에 얼음장 같은 피가 흐르는 것 같을 거야. 네 심장의 시계장치는 폭발할 거야."
사랑에 빠져 즐거운 리듬으로 흘러가는 시계소리만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결국 심장의 시계장치는 어느날이고 폭발하게 되어있다. 그걸 알면서도 잭은, 그리고 우리들은 결국 사랑에 빠졌고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리고 심장의 시계장치의 폭발소리를 들으며 이별했다.
사랑의 즐거움과 함께 사랑의 고통도 함께 알려준 잭의 심장 시계장치는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을 것이다. 첫사랑의 즐거움과 함께, 가슴이 부서질듯한 통증을 기억하는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