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루크레시오는 그렇고 그런 좀도둑이다. 이 날 역시, 친구 수프가 점찍어둔 집에 물건을 털러 들어갔을 뿐이였다. 하지만 그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를 요상한 어린아이일 뿐이였다. 그 아이는 경찰에 신고 안할테니 루크레시오에게 자신의 아빠 역할을 해줄것을 부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루크레시오는 이상한 집안에 갇히게 된다. 그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와 함께.

그 집안에서 루크레시오는 이상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도 그렇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옷장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안에 느껴지는 으시시한 한기는 루크레시오를 더욱더 겁에 질리게 할 뿐이였다. 루크레시오는 집안에 도사리고 있는 비밀을 향해 한발짝씩 다가가게 된다.

세상의 한가지 단면만 보던 루크레시오는 집안의 도사린 비밀에 다가가면서 새로운 단면을 보게 되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일의 시작은 칼비노와 함께 가게 된 정신병원 도서관에서 일어나게 된다.

루크레시오가 방문한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책의 등장인물속에 푹 빠져있었다. 그들이 빠지는 인물은 피터팬의 피터팬일수도 있고, 팅커벨일수도 있고, 후크선장일수도 있고...혹은 책 속의 작은 소품인 시계라도 될 수 있다. 바로 그곳이 정신병원 안의 세계였다. 미친 사람들만 있는 곳이라고 혀를 내두르던 루크레시오는 결국 그곳의 특이한 처방에 빠져들고 만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곳 환자들과 똑같이 행동해요. 특정 등장인물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모험을 재현하지요. 이게 당신이 말한 대로 잠시나마 우리의 일상에서 스스로를 멀어지게 하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좋은 책이라면, 그러니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우리가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좀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줄 거예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니다. 책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면, 책 속에서 빠져나와 진짜 세상앞에 섰을때 내 자신이 조금 더 강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다.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책 속의 인물과 동일시 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건강하게 하는 것-이것은 루크레시오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였던 것이다.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책을 처방해주는 책 약국, 텅 빈 스크린을 바라보며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꿈테라피등은 이 곳 정신병원이 병원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병원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느것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이 책은 특이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책의 결말이 프롤로그인지 에필로그인지조차 헷갈리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책이 내게 처방해주는 처방전이 무엇인지를.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당연하지."
난쟁이는 이렇게 대답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루크레시오가 좀더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뭐?"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잖아요."
"물론 대답했지. '당연하지'라고 대답했잖아."
"하지만 누구신지는 말씀 안해주셨잖아요."
"그건 물어보지 않았잖아."
"아니라고요? 막 물어봤잖아요!"
"자넨 내가 누구인지를 물은게 아니잖아. 물어봐도 되냐고 물은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하나는 어떤 것에 대해 물어보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대해 물어도 좋은지 물어보는 거지."

책을 읽으면서도 선와 악, 혹은 시작과 결말에 치중해서 어느 한 단면에만 빠져든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극과 극의 중간에도 이야기와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야 책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혹시라도, 의심을 품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꺼번에 읽어내리지 말고, 아침에 10쪽, 점심에 5쪽, 저녁에 15쪽씩 읽도록 씌여진 처방전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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