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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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문학의 신예 작가라고 하는 구젤 야히나의 <나의 아이들>은 총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권을 다 읽고 나니 2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쁠 만큼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모든 종류의 불화를 힘들어했다는 감수성 예민한 한 남성에게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을 느끼면서 읽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가 있는 걸까?

내 집안에 덜그럭 소리를 내며 잘 들어맞지 않는 창틀 빈틈도 메우지 않으면서, 더 큰 세계에는 흥미로워하고 귀를 기울이는 ‘바흐’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번개와 천둥이 치는 날 밖으로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는 일 외에는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니 분명 뭔가를 갈구하는 것 같다.

러시아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볼가강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이제는 작고 보이지 않는 벽촌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가 사는 곳은 18~19세기에 독일 농민들이 많이 와서 살았다는 볼가강 왼쪽 지역의 독일 식민지 마을 ‘그나덴탈’이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독일 각지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이 섞여 있다 보니, 그들의 말씨가 독일 표준어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책 내용에 앞서 섬세한 묘사에 ‘볼가강 주변의 사계절은 이런 모습이겠구나.’라고 상상하는 시간부터 가질 수 있었다.
아침을 알리는 다양한 소리가 느껴지고 가축에게 어제 길어 온 물 대신, 꼭 볼가강에 가서 실컷 목을 축이게 했다는 문장은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농민들의 노력과 땀이 묻어난다.

강물의 절반 이상이 녹은 눈이라고 하는 볼가강은 눈이 많이 내려도 주민들의 집에는 썰매와 수레가 있어 든든하다.
눈이 올 때 러시아의 겨울용 전통신발 왈렌키를 신고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주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개울물의 차가움과 돼지, 염소똥 냄새도 느껴본다.

이렇듯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변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섬세한 묘사 덕분에 나는 바흐 선생님께서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투박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서 코끝은 조금 시려도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할 때 느껴지는 그 묘한 편안함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은 이 느낌이 매우 좋다.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바흐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로 배를 채우게 하고 싶어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런 감성을 전달받기에는 아직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라 인기 많은 선생님과는 조금 거리가 멀 것 같다.
학교 사택에 사는 서른두 살의 낡은 군복을 입은 이 바흐는 벌써 노화로 인해 주름살이 늘기 시작했다는데, 쇠붙이 냄새 진동하는 교실 안에서의 수업시간을 슬쩍 들여다보니 어째 주름살이 날로 늘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그에게는 쿵쾅거릴 만큼의 기쁨인 저녁 독서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P. 32) 그의 삶은 사소한 기쁨과 작은 근심으로 가득하지만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행복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한 가지 일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삶일 수 있었다.


어느 날, 바흐는 다른 곳에 모여 사는 식민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열일 곱 살이 되는 자신의 딸에게 독일어를 가르쳐달라는 내용으로 바흐에게 편지를 보낸, 볼가강 오른쪽 지역에 사는 ‘우도 그림’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을 만난 것인데, 사실 거의 반강제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그런데 이 바흐가 꽤 쫄보에다가 나름(?) 귀엽다.
사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살짝 열불이 터지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자신에게 공손하게 수업을 부탁해도 시원찮을 판에 무례하게 대하는 험상궂은 우도 그림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찌무룩한 얼굴로 눈 내리깔고 속으로만 부글부글이다. 그야말로 사람이 매우 없어 보일 만큼 초라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너무 웃겼다.
혼자 계속 킥킥거리면서 읽었다.
아, 뭔가 굉장히 짠한 우리 바흐 선생님.

이렇게 바흐가 사는 볼가강 왼쪽지역 그나덴탈 마을 외에도 식민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는데, 오른쪽 지역으로는 경사가 매우 심해서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왕래가 없었던 것 같다. 넓은 평야와 달리 이곳은 숲 속에 통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가득하고 블랙베리가 보이며, 바위와 이끼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엄격한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나름 준비를 해서 독일어 교재와 괴테의 시집 등을 챙겨 드디어 개인 수업을 위해 강 건너편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험악한 남성의 딸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바흐부터 클라라까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낭만적이다.)

이 마을의 주인으로 불리는 아버지 우도 그림 외에는 아무도 밖으로 나온 적 없이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숲 속에서, 클라라가 나이 많은 유모에게 들은 옛날이야기들도 예카테리나 대제 시대 때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에 멈춰 있었다. 이런 단조로운 일상에서 큰 변화 없이 지낸 클라라에게 측은함을 느낀 바흐는 가르침에 대한 욕구가 샘물 솟듯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이같은 어조의 클라라에게 사투리 대신 고급 독일어를 가르치는 게 바흐가 맡은 일이다. 딸을 독일 남성에게 시집보내려는 마음에 교육을 부탁한 것을 보면, 독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인가보다.

(P. 90) 그녀의 천진난만한 입술에서는 괴테와 실러의 발라드가 이상하게 변했는데, 천사 같은 억양 덕분에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놀랍게도 부도덕한 뉘앙스를 띠었으며, 가장 무사 무시한 장면도 그 사랑스러운 억양을 거치면 어두운 분위기가 몇 배는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흐와 클라라는 서로의 대한 애틋함이 커지고 번개로 장식하는 강력한 뇌우 말고는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했던 바흐의 심장은 클라라를 향한 사랑으로 펄펄 끓기 시작했다.
순수하면서도 애틋한 이들의 수업시간과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은 온 세상이 무지갯빛 비눗방울 떠다니듯 했다.
바흐에게는 뭔가를 갈구하는 느낌을 초반부터 받았었는데 아마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온 식구가 독일로 떠나게 된 클라라는 독일행 기차에서 가족들까지 버리고 몰래 빠져나와 바흐의 집을 찾아온다.
축복을 받으며 그나덴탈에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길 머릿속에 그리며 꿈에 젖었을 클라라.

주민들에게는 그저 타락한 선생과 나이 어린 소녀였나 보다.
독일어로 ‘복을 가져다주는 골짜기’라는 뜻의 그나덴탈은 아쉽게도 바흐와 클라라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주민들의 질책과 따가운 시선에 외출도 어려울 만큼 논란의 대상이기만 했던 그 둘은 어쩔 수 없이 사택을 떠나 볼가강의 오른쪽 강변 마을, 세상과 단절된 우도 그림의 마을로 떠나게 된다.

험난한 길을 뚫고 바흐에게 온 클라라가 보여준 엄청난 용기가 바흐가 지닌 두려움을 모두 없앨 수는 없었던 것일까.
바흐는 죄책감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숲에서의 생활은 멈춘 시계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웠으며,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살아나가게끔 해줬다.
더는 감수성 예민하고 노동에 서툰 바흐가 아니었고, 선생님께서 들려주던 이야기에 꺄르르 웃기만 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클라라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한계에 다가서며 서서히 변화를 쌓아오다가 삶에 맞서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힘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의 중심에는 분명 클라라의 현명한 요령과 더불어 침착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세상속에 스며들고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었을 클라라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는 바흐는 단 하루라도 그녀를 다시 그나덴탈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 무작정 그나덴탈로 향한다.

그런데,
바흐와 클라라가 자신들의 삶을 숲 속의 세계에 맞춰 지내고 사는 동안 이 곳, 그나덴탈은 떠나오기 전의 북적거림과 풍요로움을 잃고 폐허가 된 집들로 가득해 있었다. 깨끗한 색을 띠던 얼음 조각은 이제 검붉은 색과 선홍색을 띠었다.

바흐는 참혹함을 따라가 본다.

(P. 148) 불가강의 왼편에 있는 스텝 지역이 열정적인 튤립과 양귀비꽃 색깔로 막 변하고 투명한 하늘이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들과 별들까지 활짝 문을 열어놓았을 때, 바로 이 스텝 지역을 낯선 이들의 발자국이 어지럽히고 하늘은 쇳덩어리 새들이 어지럽혔던 것이다.


독일지역의 빈농들은 거리적으로 인접했던 러시아 지역의 비옥한 평원지대로 이주를 택했다. 이민을 장려하기 위해 예카테리나 2세는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병역면제의 혜택과 더불어 언어, 문화 등의 보존을 약속했었다.

시간이 흘러 첫 번째 러시아 혁명 이후 발생한 분열과 갈등의 내전 속에서 볼가강 강물을 타고 식민지 마을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기근을 겪고 굶주림에 목숨을 잃었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탄생이라는 큰 줄기가 만든 새로운 이념과 지도자 밑에 손님처럼 살아야 했다.

독일로 돌아간 사람들도 그나덴탈에서 살아나간 세월이 있기에 분명 독일어 사용의 어려움과 문화 차이로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올려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소개 글에 ‘약속된 땅’을 향한 갈구와 좌절이라는 문장이 더 처연한 마음을 들게 하는 것 같다.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또한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과 사랑이었는데, 그 책임감과 사랑이 강인함과 열정으로 느껴지기보단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내쉬는 숨결이 느껴질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읽는 재미가 넘쳐나 행복했고,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던 잔혹함이 가슴을 조이게 하여 고통스러웠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목이 메여오고 따끔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나약해진 몸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머릿속을 얼음 떠다니는 볼가강 차디찬 강물에 집어넣고 흔들어봐도 소용이 없을 만큼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상황들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을 느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바흐가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는데, 이제 그나덴탈은 소련이라는 명칭이 붙고 사람들은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었다.

(P. 218)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얼굴이 매우 축축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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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7-01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들여 쓰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반가웠고요.
이 책은 제가 작년 2024년에 만난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했지만 그렇지 않아서 좀 쓸쓸했던 차에 ㅎㅎㅎ 진짜 반가웠겠지요? ㅎㅎㅎㅎ

곰돌이 2025-07-01 17:57   좋아요 1 | URL
왜 쓸쓸하셨을지 그 맘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이 책 읽으면서 리뷰가 많이 없다는 게 계속 의아스러울 만큼 정말 너무 잘 읽었어요. 저도 많은 분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흔적을 남겨봤는데 잘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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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서로 끌어안았다.
한 사람은 괴로움으로 안았고, 또 다른 사람은 불안감으로 안겼다.
이들의 모습은 각자 지독한 불행의 무게로 균형을 잃고 위태롭다.
모든 게 붕괴될 것만 같다.


<용의자X의 헌신>과 <악의>에 이어 세 번째 만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이번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데 나처럼 저자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않은, 그래서 가가 형사 시리즈를 꾸준히 읽은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는재미를 위해 줄거리는 간략하게만!!


‘야스요’는 자신의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유리코’라는 여성을 친구로부터 소개받는다.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마저 두고 집을 나왔다고 말하는 이 여성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 야스요는 더 묻지 않는다. (자신의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과거를 들추려 하지 않는 면이 참 맘에 든다.)

유리코가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아 야스요는 아주 만족스럽다.
어느덧, 유리코가 야스요의 가게에서 일한 지도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몸이 좋지 않았던 유리코는 가게를 그만두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그녀의 건강이 염려되었던 야스요가 유리코의 집을 찾아갔다가 이미 사망한 상태의 그녀를 발견한다.
심부전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에 더 일찍 검진을 받도록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야스요.

유리코가 가게 손님이었던 ‘와타베’라는 남성과 연인 관계라는 걸 알았기에 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유리코의 아들인 형사 ‘가가 교이치로’의 원룸 주소만 알려준 채, 자신은 잊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일가친척도 없이 외로웠을 유리코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 참 잘됐다 싶었는데 이렇게 외면을 당하다니.
망연함을 머금은 채 야스요는 유리코의 장례를 치른다.
쉽지 않은 일을 해 준 그녀가 참 고맙다.

유골과 유품 인수를 목적으로 야스요는 가가에게 편지를 썼는데 다행히도 뒷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전화를 걸어와 이 둘은 함께 유리코가 살던 집으로 향한다.
가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옷가지들을 주워담는다. 냉철하지만 따뜻한 면이 있는 가가 형사의 고통스러웠을 삶과 기구하게 살다가 홀로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의 삶 또한 가슴이 먹먹해진다.

야스요로부터 어머니의 연인 와타베의 이야기를 듣게 된 가가.
그는 형사답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머니의 방 안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그 후,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한 아파트에서 타살로 추정되는 ‘미치코’라는 여성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고시카와 무쓰오’ 라는 남성의 아파트 벽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미치코. 용의자로 의심되는 고시카와는 행방이 묘연했다.
청소를 해주는 업체에 근무했던 미치코의 직장동료의 기억으로는 그녀가 “주말에는 사치 좀 부려볼까?” 라고 했다는데 과연 무슨 일인 걸까.

수사를 맡은 경시청 수사1과 소속 형사 ‘마쓰미야’는 이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또 다른 사건을 떠올린다.

남의 아파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미치코의 사건과 다른 관할 서 사건인 오두막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노숙자의 사건에서 인상 깊은 중요한 요소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는 듯이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바로 ‘하루살이’와도 같은 사람들의 죽음이었다는 것.

노인들을 골라 살해한 요양 보호사의 이야기인 일본 영화 <로스트 케어>처럼 타인의 도움이 절실한 빈곤층에 대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다룬 듯한 느낌을 받고 있던 즈음, 미치코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으로 추정되는 동창생 ‘히로미’가 등장한다.

미치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각본가,연출가로서 여러 대표작을 남길 만큼 연극계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고 있던 히로미.
하지만, 히로미에게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과거가 존재했었다.

수사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형사 마쓰미야는 한 남성을 만나러 향한다. 슬슬 느낌이 온다.
이쯤되면 가가 형사가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마쓰미야의 사촌 형이자 경시청 수사 1과 선배이기도 한 가가 형사가 다시 등장했다.

이 만남에서 마쓰미야는 가가에게 히로미의 이야기를 듣는다.

검도 경력이 있던 가가는 현재 근무지인 니혼바시 서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서에서 운영한 검도 교실에서 강사를 맡고 있었다. 이때 아역배우의 검도 훈련을 위해 찾아온 연출가 히로미와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P. 116) “마음에 깊은 어둠을 품은 여자일 거야.”


행동이 묘연한 아파트 주인과 히로미, 그리고 죽은 미치코까지.
과연 이들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그리고 왜 가가는 경시청에서 근무하다가 니혼바시 서로 가게 된 걸까?

험난한 사건을 맡아온 가가 경부보가 이제는 동네 사람들의 사소한 사건들까지 맡으며 거리 구석구석까지 마음을 쓰는 모습에 마쓰미야는 뭔가 그에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과 함께 착잡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살인사건 피의자가 어느 정도 굳혀가던 이때, 미치코가 발견된 그 아파트에 걸려있던 달력에 적혀있는 메모와 필적과 내용이 같은 메모가 등장한다. 그건 가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그리고 가가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가담하게 된다.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과 상황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크게 동떨어진다 볼 수도 없어서 불편함이 이내 착잡함으로 변화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여러 장점이 있기에 찾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를 가장 자극했던 부분은 쓸쓸함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그 짙은 쓸쓸함이 계속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타고난 존재라고는 해도, 등장인물의 몸에 깊게 밴 고독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 상황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 안에 가벼이 다룰 수 없는 사회문제들을 꾸준히 이야기함으로 그 무게감이 확실히 끌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하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의 주인공 이시가미는 생을 마감하려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 다정한 모녀의 인사 하나로 기적처럼 다시 삶을 살기로 했었다. 고독감을 느끼며 사람들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모른 척할 수 없었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들여다본 소설이었다. 말 그대로 다정함이 기적을 낳은 것인데, 난 절대 이게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던 시기가 분명히 내게도 존재했었고, 그럼에도 사람으로 인해 또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문제들로 편견에 쌓인 시선을 받거나 그 모습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등장시키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 왔으며,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다 알지는 못해도 딱 한 가지 선명하게 느낀 것은, 결국 우리 삶 너머, 행복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외면하지 않는 우리들의 시선이 머무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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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일
서보 머그더 지음, 진경애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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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 기너, 그리고 사람들의 운명을 도와주는 존재 아비가일의 신비로움까지 애잔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소설은 다음 장, 그다음 장 계속해서 넘겨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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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일
서보 머그더 지음, 진경애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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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를 다시 만났다.

저번에 읽은 <도어>는 한 인간이 살아가며 겪은 엄청난 사건과 그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극적으로만 표현하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는 것 같아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와서 좋았다. 나쁜 평판은 듣고 싶지 않아 타인에게 친절은 베풀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그들로부터 방해받고 싶지는 않은 솔직한 심리 묘사는 세밀했고 따끔했다.

삶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일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버겁다. 어쩌면 그래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인물의 감정이 마를 대로 마르고 닳을 대로 닳아버린 것 같아 더 마음을 쓰라리게 하는가보다. 또 반대로 누군가는 더 아플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사소한 일에 힘들어하는, 이를테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유난이다’ 타박을 들으며 힘겨워하는 사람을 보면 그 또한 여간 애타는 게 아니다. 때론 오히려 더 애잔하게 바라보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들려주고 받아들이는 감정과 살아가는 방식 또한 제각각인 사람들을 향해 절대 쉽지 않은 이 삶을 살아내는 모습 또한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많은 책이 쏟아진다. 기쁨과 즐거움을 숨기지 말고, 아픈 것도 눈치 보며 아프지 말라고 하는 듯이, 읽는 동안이라도 내 안에 들어차 있는 온 감정을 맘껏 느껴볼 수 있도록 말이다.

바쁠 땐 책 읽는 것도 정말 말 그대로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세밀하게 쪼개져 있는 사람의 심리가 저자의 필력과 만나 그 책의 등장인물들이 주는 여운이 오래갈 때, 이럴 때 정말 기분이 좋다. 그래서 <도어>의 여운이 아직 다 가시지도 않은 채, 이 책의 책장을 넘기고 있다.


부다페스트에 사는 열네 살 소녀 ‘기너’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까마득하게 먼 국경에 있는 머툴러 김나지움 기숙사로 들어가게 된다. 한 집에 살고 있었던 자신의 가정교사였던 프랑스 여성 ‘마르셀’이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추축국인 헝가리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그녀의 아버지는 침묵을 지키기만 할 뿐이다.

헝가리의 장군인 아버지의 딸로서, 그녀는 슬픔과 절망을 최대한 자제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것을 제외하고는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으로 보이는 이 꼬마 아가씨가 자신 못지않게 슬픔을 숨기면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걸 보니 내 가슴의 온도가 조금씩 높아져 간다.

고모와 마르셀, 그리고 파티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대위 쿤츠 페리,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지만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걸로 보이는 아버지와 무덤에서 조용히 잠들어 계신 어머니까지 이 모두와 헤어져야 한다. 집에서 멀어져만 가는 차 안에서 느꼈던 불안감을 감당하기엔 아직은 너무 어린아이다.

(P. 16) “넌 다른 세계로 가는거야.” 장군이 말했다.

변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기숙사로 가기 전 아버지가 사준 곱고 가는 목걸이를 마지못한 듯이 받았던 기너. 그리고 용돈으로 고른 재떨이를 사며 아버지에게 드렸던 순간, 부녀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 바라만 봤던 그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말 없이 오고 가는 슬픔을 절제한 부녀의 눈빛은 이미 저울로도 잴 수 없을 만큼 슬픔의 무게로 무겁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심정으로 지내는 기너의 기숙사 생활은 그저 ‘갇힌 사람’으로만 보이면서도, 그나마 이곳이라도 올 수 있었던 기너의 삶 저편으로 그녀와 비슷했던 나이에 남의 집 하녀로 들어갔던 저자의 또 다른 소설 <도어>에 나온 에메렌츠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이미 모두 잃었기에 잃을 게 하나도 없었던 에메렌츠와 엄격한 기숙사 규칙에 따라 가진 소지품을 모두 내놓아야 했기에 핸드백에 들어있던 가족들의 사진과 빗, 집 열쇠, 잔돈 등의 지나간 삶을 기억나게 할 보물들이 많은, 그래서 빼앗길 게 많았던 기너. 두 소녀의 불행이 모두 가련하다.
더 좋아지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내 삶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간다는 것은 다를 바 없이 불행에 가까운 일일 테니까.


어느 날, 학교의 경계를 두르고 있는 높은 돌담 벽 안쪽으로 한 소녀의 석상을 보게 된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아비가일’이라고 소개해 준 이 석상은 ‘아주 나쁜일’이 생기면 항상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말한다. 학교의 규칙들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학급 친구들의 이런 유치한 이야기까지 들어주며 지내야 한다니 걱정만 쌓여간다.

그 동안 풍족하고 인정받는 삶 속에서만 지내왔기에 다소 편협한 면도 보이는 그녀의 학교생활이 도통 밝아 보이진 않다.
세상의 중심을 나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이 꼬마 아가씨도 피해 가지를 못 하니 말이다.
기너를 향해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얄궂은 놀이가 시작된다.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으니까 참아본다.
토요일 오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시간만 오면 맘껏 투정을 늘어놓을 수 있고, 해결책을 주실 테니까 지금 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조금만 참아보자. 조금만.


소식이 왔다.
아버지 전화가 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얼마나 기쁜가. 떨리는 가슴으로 전화를 받으러 가는 이 기쁨.
자신의 우울함을 전할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랏일로도 힘드시니 즐거운 소식만을 전달했으면 한다는 사감의 말씀에 그저 잘 지낸다고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

기너는 계획을 세운다.
지옥에서의 탈출.

기차를 타고 여기서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괜찮다.
어디든 군부대가 있으니 자기소개를 하고 장군인 아버지가 데려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이 지옥 같은 학교에서 자신이 얼마나 우울하게 지냈는지를 알면 절대 가만히 계실 아버지가 아니니까.

감옥처럼 폐쇄된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기너와 감옥처럼 폐쇄된 이곳을 ‘일부러’ 찾아내 그녀를 보낸 아버지.

그녀는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부다페스트 집으로 갈 수 있을까?


기너는 이제 마음이 점점 힘들어지다 보니 그저 아이들의 유치한 이야기라 흘려들었던 어떤 존재를 떠올린다.
가장 힘들 때 도움을 준다는 석상, 아비가일.
아무도 없이 혼자인 것 같지만, 누군가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부터는 어제보다 나은 삶이라 여겨지며 또 살게된다. 그래서 떠올렸나 보다.

그런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 엉킨 실타래 같았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기대도 안 했던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풀리고 뜨거운 눈물로 서로 끌어안는 순간을 맞게 된다.
공습 방어 훈련을 위해 들어간 지하실에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과 전선에 있는 자신의 아빠와 오빠를 떠올리며 제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그 마음속에서 아이들은 그동안에 철부지 같았던 자신들의 행동들을 떠올린 것이다.

더 늦게, 조금만 더 천천히 세상을 알아도 될 순수하고 아직은 실수가 많은 나이인 이 어린 소녀들조차도 폭격과 전쟁, 그리고 죽음 앞에는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만든 거다.
상황 자체가 참 슬프다.


무거운 이야기들만 담고 있진 않다.
이 ‘요새’안에서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하기에는 상상력이 마구마구 샘솟을 시기의 이 말괄량이 아이들은 얌전한 듯하면서도 얼마나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거릴 일이 많은지 모른다.

이 리뷰에 담지 않은 많은 이야기 속 일렁거리는 모든 감정선을 포함해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 기너, 그리고 사람들의 운명을 도와주는 존재 아비가일의 신비로움까지 애잔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소설은 다음 장, 그다음 장 계속해서 넘겨 보게 하였고,

<도어>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가며 살 수 있었던 삶을 과거의 기억으로만 떠올려야만 하는 수많은 살아남은 자들과 함께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며, 잊지 않으려는 저자의 마음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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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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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보다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읽어내려갔다.

노트에 와 닿는 단어들을 적어본다.
믿음과 아늑함이라는 단어를 적고 있었다.
그때의 나를 알 수 있었다.
무엇이 필요했는가를. 무엇이 그리 힘들게 하였는가를.

책을 읽으면 나의 욕심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그저 흔들리는 내 머릿속을 ‘잠깐’이라도 보살펴 준다면 난 그걸로 됐을 뿐이었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나를 잠시 해방시켜 주기만 해도 성공적인 하루가 되었을 테니까.

책이 한 권 늘어나고 또 한 권이 늘어난다.
이제는 나에게 뭔가 주길 바란다.
나의 마음속 기도에 응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 뜻에 기어코 응해준다.

(P. 9) 독서라는 경이로운 애도


궂은비가 단비로 바뀌기까지 무진 애를 썼던 사람들과 아직도 내가 사는 세계 저편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좇는 바람에 피곤해진 사람들이, 감정의 폭발 없이도 그 감정의 층위를 불편하지 않게 섞어주는 막연하지 않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잠시 마음을 식혀보는 건 어떨까.

기쁨은 고통이 따르고 삶에는 죽음이 따른다는 말을 들을 때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감수해야 할 게 많은 그런 기쁨과 삶은 얻고 싶지 않았고,
거꾸로 고통 뒤에 기쁨이 오고, 죽음 뒤에는 삶이 온다는 마음을 가져보려 노력도 해봤지만, 그 또한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따금씩 떠올려지는 힘들었던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 마음의 괴로움이 너무 커 얼른 밀어 넣어 버리곤 했는데, ‘힘들었던 때’를 ‘재생의 시간’으로 달리 생각하며 떠올려보니, 불편함이 조금은 덜어지는 걸 느낀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돌보고 지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외면을 하고 감추려고만 했으니, 치유의 시간도 갖지 못하고 씻겨 내려가지 않아, 되려 그 괴로움이 몸의 문신처럼 새겨지기만 했다.
나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에선 안 그런데 왜 나는 그들이 스스로 다독이고 얼른 다시 일어서기만을 기다렸던지.

(P. 37) 어떻게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인식하는가? 우리 안에 난데없는 정적이 깃들고, 심장에 비수가 꽂힌 듯 출혈이 이어질 때이다.

독서를 하면 나에게 남는 것은 사랑이다.
정말 사랑이다. 그게 전부다.
남는 게 사랑이라서 정말 너무 감사하다.
희미하게 들리는 게 아니라서.

나 역시도 결핍으로 시작한 독서라서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읽으며, 제각기 독서를 하는 이유는 다를지라도 그 마음을 나누며 공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가 보고,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에 괜한 마음의 든든함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너무 슬프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P. 113) 당신은 죽음보다 해로운 지혜를 내게서 지워버렸다. 당신은 내게 진정한 건강인 열병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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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6-2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도 개정판이 나왔군요. 독서도 사랑이고 보뱅도 사랑입니다~! 보뱅 책을 읽으면 치유가 됩니다~!!

곰돌이 2025-06-21 20:43   좋아요 1 | URL
사실 읽기 전에는 뭔가 간지러운 말들(?)이 이어지려나 싶어서 살짝 주저했었는데 아니여서 더 좋더라고요..보뱅님 통찰력에 중간 중간 순살이 될 뻔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