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홀가분함은 너무 가벼운 대신 밀려오는 분노와 서글픔은 가눌길 없이 묵직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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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껍데기 속에 갇힌 느낌, 바삭하게 구워지는 과자처럼 겉은 점점 검고 단단해지는데 속은 끓는 시럽처럼 뜨거운 핏물이 휘도는 느낌. 겉과 속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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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날갯짓의 급격한 감속, 날개를 접고 사뿐히 가지에 착지하는 모습, 가지의 흔들림과 정지...... 그런 정물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아갔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하리. - P28

그게 무엇인지 알수 없지만 그에게 왔던 것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영영 지울 수도 없으리라고 그는 침울하게 생각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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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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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흘러가는 전개로 인해 트릭이나 놀라운 반전의 대해서는 기대에 못 미쳐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자신의 쾌락과 이익에 가려져 ‘타인의 고통’은 따지지 않는 ‘악의’를 갖은 자들의 대한 심리 표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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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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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자기전에 영화 한 편씩 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바쁜 업무를 마치고 퇴근 한 후에 즐기는 꿀맛같은 시간이다.
주로 범죄 스릴러 액션 전쟁 미스터리를 즐겨보는 것 같고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는 잘 안 보게 된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는 전쟁을 제외하고는 영화 볼 때의 취향과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다. 책으로는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감정들에 내 삶을 덧대어 보며 공감도 해 보고, 그 안에서 위안이나 깨달음을 얻고 싶은 심리가 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추리소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와이더닛 방식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을 읽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들여다보는 범인의 심리와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의 예리한 직감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으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기억에 오래 남았던 부분은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른 낙엽과도 같은 주인공 ‘이시가미’의 마지막 절규였다. 꽤 임팩트 있었다.

철저히 숨기며 보호하고 싶었던 첫눈에 반한 여자를 향한 이시가미의 ‘단심’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포효하며 처절하게 무너지는 그 한 장면 만으로도 알게 해줬고 무모해 보였던 그의 선택들이 납득이 되었기에 여운이 오래 갔다.


이번에 읽은 <악의>도 범인이 누구인지가 초점이 아니라 범죄동기를 쫓고, 밝혀지는 진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심리를 알아보는 내용등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사건의 전개를 기대하며 읽는 재미도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보다 더 기대한 것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소설이기에, 범죄의 동기나 범인이 밝혀지기 전후로 나눠지는 그 인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변화, 감정들이 더 궁금했다.


전직 교사이자 작가로 전업한 노노구치와 그의 어릴 적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다카. 이 둘은 ‘고스트 라이터’라는 복잡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데, 노노구치가 히다카를 살해한다.
이 둘 사이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담당한 형사 ‘가가’가 냉철하면서도 섬세한 추리로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간다.

대필작가로서 친구에게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넘겨야 하는 노노구치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히다카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던 것.

첫 만남에서의 그 짧은 찰나에 사랑에 빠져버린 노노구치가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한 무모한 선택은 납득할 만한 사유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읽다가도 맥이 좀 빠지게 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확실히 궁금증을 자아 내도록 글을 써내려가기 때문에 술술 읽혀지긴 했다.

어느 날, 히다카의 부인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히다카는 시간이 흘러 다른 여성과 재혼을 한다. 친구 부인과의 불륜이라는 약점이 사라졌음에도, 노노구치의 대필작가로서의 역할은 계속 이어나간다.

도대체 왜? 이들에게는 무슨 악연이 있는 것일까?

원룸맨션 한 칸의 작은 집에 살며 아내도 없는 노노구치와 달리 히다카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어린시절 모두의 꿈이었던 곳에 집이 있고, 아내도 있고, 심지어 노노구치 자신의 일자리도 히다카의 인맥으로 얻었기에 그동안 쌓인 열등감과 질투심으로 살인이라는 선택을 한 것일까?


이 책은 단순히 범죄와 그 동기만을 다루지 않고 성장배경의 문제점과 왕따, 선입견, 무관심, 방관 등의 사회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인물묘사를 통해 우리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이 선입견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심리 중 하나인데, 자칫 자신의 생각을 거치지도 않은 채로 편견을 갖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무런 죄도 없는 인물에게 선입견을 갖고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얼굴과 표정과 행실(물론 가상의 인물이지만)을 내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다소 예상대로 흘러가는 전개로 인해 트릭이나 놀라운 반전의 대해서는 기대에 못 미쳐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자신의 쾌락과 이익에 가려져 ‘타인의 고통’은 따지지 않는 ‘악의’를 갖은 자들의 대한 심리 표현이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책인 <편지>와 <기도의 막이 내릴 때>를 주문 했는데, 이 두 책들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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