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노력과 집안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다는 과거의 행복 혹은 그 비슷한 것을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다 안다는 듯한 미묘한 일그러짐, 숨겨진 농담을 혼자 알아들었을 때와 같은 입꼬리의 떨림이 있었다. - P204

1950년대 지도 살짝 보기에 이렇게 탐닉하는 이유는 당시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 모습이었는지를 기억해내기 위해서다. 어떤 공황이 지척에 와 있었는지, 몇 년 뒤에 유럽 정부들 대부분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전혀 느끼지 않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일련의 조약들과 계약들을 남긴 채 보따리 싸서 고국으로 도망가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없었다. 그래서 아민과 라시드 같은 젊은이들의 자아상과 미래는 식민지인들이 지금까지 기대해온 바와의 분리를 시작조차 못한 상태였다. - P213

(그녀는 어디가 아팠는지 아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주먹으로 가슴을 꼭 눌렀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만 같았다. 너는 그런 걸 느껴본 적 있어? 없으면 진짜 상심이 뭔지 아직 모르는거야. 꿈을 꾸면 몸바사의 이미지와 냄새가 느껴졌고 잠에서 깼을 때 잔지바르 집임을 깨닫고 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P228

그들이 자기가 지배하는 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는 상상했다, 그들에게 우리는 단순한 불안과 성마름의 왁자지껄처럼 보이고 우리의 외침과 헉 소리는 언제든 피지배자의 단순한 칭얼거림처럼 들릴 거라고. - P240

더 먼 옛날의 무심은 활기가 넘치고 통제가 안 되는 시간이었다. 바람과 함께 온 활기찬 모험가들의 피가 때때로 거리에 흐를 정도로.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이 유괴당할까봐 외출을 금지했다. 그것이 그들이 보게 될 마지막 무심이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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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 안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것,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무질서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고 영원히 얽매는가에 관한 것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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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형제들과 같은경로를 갔더라면, 나도 그들처럼 되었을까? 그러니까 나도 국민전선에 투표했을까? 나 역시 우리나라에 난입해서 "자기 나라에 있는 양" 구는 "외국인들"에 맞서서 항의했을까? 사회, 국가, ‘엘리트‘ ‘권력자‘ ‘타자‘가 그들에 반대해 벌이는 영원한 공격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맞서서, 나도 그들과 같은 반응을 하고, 같은 방어 담론을 공유했을까? 나는 어떤 ‘우리‘에 속해 있었을까? 어떤 ‘그들‘과 대립했을까? 한마디로 내 정치학은 어떠했을까? 세계의 질서에 저항하는, 혹은 부응하는 방식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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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도안과 스케치로 가득한 모눈종이 몇 장(연습장이었을까?)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그는 그 종이들을 자주 서류철에서 꺼내 들여다보거나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결국에는 서랍 깊숙한 곳으로 치워 죽은 희망을 매장시켜버렸다. - P58

나는 분열되어 편치 않았다. 내가 끼어들어가 살아가는 부르주아 세계에서 내 신념은 불안정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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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이 책의 저자인 디디에 에리봉의 대해 내가 가진 정보는 없었지만 알라딘 홈페이지 책소개를 읽고 몇 주 전에 바로 구매를 하였다. 그에게 ’랭스‘란 현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체념하며 사는 사람들로 가득 찬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성소수자이자 노동자 계급의 집안으로써 느꼈던 수치심 등을 떠올리게 하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고향.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근원이 되는 곳은 결국 랭스다. 평생 가족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돌아가서 사회적 운명이라 여기며 살았어야 했던 삶 속 고통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며 깨닫고 반성하는 자기성찰도 담은 책인 것 같다.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날 끌리게 만든다. 가족과의 행복한 삶이 나의 가장 큰 삶의 목표이자 살아가는 이유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난 늘 ’독립‘을 갈망하고 있다. 예전부터 내 친구들은 “왜 독립을 안해?”라고 당연히 해야되는 것을 안 하는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고 답답해하며 물어볼 때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너무 난감했다. 나는 독립을 안 하는 것일까? 못 하는 것일까...후자에 가까운 상황으로 ’가족‘이란 나를 사랑과 애정으로 품어주는 존재인 동시에 날 막힌 새장 안에 가둬두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은 있다. 평생 와닿지 못 할 이별로 인해 부모님 가슴에 구멍이 뚫려 그 상실감을 나누고 애정으로 채워드려야 하는 의무를 (누구도 내게 그 의무를 짊어준 건 아니다)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 아마 부모님에게는 나의 손길이 애정으로만 다가오겠지만 그 안에는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손가락 한 개, 두 개 정도는 접을 만큼의 포기에서 얻은 공허함까지 포함되어 있다. 누구도 알면 안 되는 소중한 보물을 꽁꽁 묶어 놓듯이 난 그렇게 철저하게 내 보물을 감출 줄 알았고 숨기는데 성공했다. (물론 자식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부모님이시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니 나도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이해하기 싫은 그 무언가들을 단순히 내가 부정적으로 단정지어 버리기에는 내가 그 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가 없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따라가다보면 처한 상황이 다르고 경험하지 못 한 것들도 이해를 하게 되고 그 안에서 공감을 자아내게 하는 책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랭스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자기만의 ‘진짜’경험(살아온 집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듯이)을 가진 이들이 더 ‘진짜’의 제대로 된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1부를 다 읽어가는데 다음 장도 너무 궁금하다. 글을 너무 잘 쓰고 몰입도가 상당하다. 저자와 부모님 사이의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가로막혔던 그 막이 자신이 과거에 인식하지 못 한 것들을 깨닫는 자기성찰을 통해 서서히 열리게 하는 그 감정선이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와서 그의 여정이 너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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