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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 존엄하게 살기 위한 인문학 강독회
유창선 지음 / 사우 / 2017년 12월
평점 :
책을 다 읽고나서 표지를 덮고 다시 보니 인문학 강독회라고 되어있다. 강독회라는 말이 하나의 책을 주제로 그 감상을 나누는 걸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유시민씨의 청춘의 독서나 박웅현씨의 책은 도끼다 같은 책이 생각났다. 약간, 아주 약간 더 무거운. 어제 오늘 이틀간 읽었는데 이동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두어번 만에, 단숨에 읽었을 정도로 상당히 재밌었다. 굳이 책은 도끼다와 비교하자면 그 책에 언급된 도서들이 읽으면 물론 좋긴 하겠지만 꽤 어렵겠다는 느낌이 강해 아마도 볼일이 없을것 같다는 느낌이라면 이 책에 언급된 책들은 어렵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이 더 많았다고나 할까.
인문학 도서 12권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를 기술한 후 저자의 인생이야기가 덧붙여진 해설을 이어서 말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몇개만 꼽아보자면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 프란츠 카프카 '섬', 루쉰의 '고사리를 캔 이야기',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등. 사실 저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우연치 않게 방송에 출연한 이후 이걸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기존 일을 그만둔 순간 보수정권으로 바뀌면서 지난 9년여간 방송일이 뚝 끊겨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또다시 정권이 바뀐 지금은 조금은 더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려나.
인상적인 문장을, 곱씹고 싶은 문장을 옮겨본다.
- 우리는 생물학 적으로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결단에 따라서는 여러 번의 사람을 살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또 한번의 삶을 살 수 있다.
- 데이비드 흄은 '인성론'에서 "내 손가락에 상처를 내기보다 온 세계가 파멸하는 거을 선호한다고 해서 이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 이거랑 비슷한 취지의 말을 중국 춘추전국시대 누가 했던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도가였나... 아마 시기도 훨씬 앞서있겠거니 싶은데.
-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장미의 이름 중 윌리엄 수도사)
- 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해석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소설을 쓰지 말 일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발생시키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 작가노트)
-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 고대 그리스어인 '파레시아'는 '솔직히 말하기', 혹은 '진실을 말하는 용기'라는 뜻이다. 파레시아를 행하는 자인 '파레시아시스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자다. 그는 모든 것을 말하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며,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타인에게 활짝 열어 보인다. (중략) 또한 파레시아시스트는 위험을 감수하는 자다.
: 이 책에서 단 한단어를 꼽으라면 이 '파레시아'를 선택할만큼 가장 인상적인 단어였다.
ps. 168쪽 중간에 '그는 아킬레우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면서~'이 문장의 주어는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프리아모스여야 할텐데 잘못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