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고마워 - 옆에 있어 행복한 부부이야기
고혜정 지음 / 공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부부 사이라는 어떤 관계일까?

 

가까운 관계일수록 고맙다, 사랑한다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옆에 있으니 당연한줄 아는 관계.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관계이지만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며, 그렇지만 그런 관계가 계속이 아니라 또 어느새 스르륵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관계. 이런 과정이 어느덧 일상이 되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의 일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이런 삶을 글로 적어놓으니 아주 특별한 무언가는 아니지만 그것이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여보, 고마워는 그런 책이었다. 마치 내 일상이야기를 옮겨 놓은 듯 한 느낌이랄까? 아주 똑같은 일,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느끼는 게 참 비슷하다 싶어서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친한 언니와 결혼생활에 대해 수다한판 떤 기분이 든다. 차 한잔 앞에다 두고, 언니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언니는 그렇게 느꼈어요? 그렇게 말한 기분 말이다.

 

삶과 삶의 맞댐이 늘 부드러 울 수야 없지 않은가. 충분히 싸울(?) 이유가 있고, 충분히 의견차이가 날 조건들 속에서도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게 되는 건.. 배려와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삶의 지혜를 펼쳐나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삶도 내 욕심대로 안 되는데 하물며 남편이나 자식에 대해서는 욕심내고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좀 비워내는게, 좀 내려놓는게 최선이 아닐까?

 

일 잘하던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한다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게 한해에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기 시작하면 어떤 기분일지 충분히 알겠다. 다른 집은 아빠가 회사 가는데 우리 아빠는 왜 안 그래요?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답해야할지.. 자세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문득문득 비춰지는 삶의 일상에서 충분히 작가의 힘듬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유쾌하게, 정적으로 이어나가는 모습이 정말 배워야할 점이다 생각이 든다. 나라면 어떨까? 나도 이렇게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까? 만날 싸움터가 아닐까? 돈벌어오라고 아옹다옹하게 되지는 않을까? 오래 공부하는 남편을 지지해줄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는게 참 어려울 텐데 여러모로 배울게 많다.

 

이전 작가의 글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일상을 이렇게 편하게 그려낸 사람의 다른 글은 어떨지 문득 궁금해진다. 글을 참 편하게 쓰는 좋은 재주를 가진 작가가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도 별처럼
캐서린 패터슨 지음, 고수미 옮김 / 열림원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엄마'라는 존재가 되면서 아이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가 없을 때에도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내가 엄마가 되니 아이에 대한 생각, 개념자체가 달라졌다. 더 안쓰럽고 예쁘다는 느낌이랄까? 이건 내 아이에게만 그런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더 애틋해졌다고할까? 이건 현실에서도 그렇고 이렇게 책을 볼 때도 그대로 반영되어 이렇게 부모답지 않은 부모를 만나 삶이 힘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

제목이나 보도자료를 봤을때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나 적어도 누군가의 꿈이나 꿈을 꾸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엔젤이라는 아이의 빡빡한 삶의 스케치로부터 시작된다. 기대하지 못한 전개에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소설이라는 좀 덜 부담스러운 것이니 차근히 책장을 넘겨갔다. 너무하지 않은가...엔젤에게 주어지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은가 혼자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말이다.

엄마가 있지만 엄마의 역할을 하지 않은 엄마를 둔 엔젤. 
아빠는 감옥에 있고,
동생은 지지리도 말 안 든는 철부지.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좋지 않고, 심지어 이제 엄마에게는 다른 사람이 생겼다.
 
11살 아이에게 주어지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철부지 동생도 돌봐야하고, 엄마도 챙겨야하고, 아빠도 챙겨야하고, 나중엔 증조 할머니도 챙겨야하니까..
그렇지만 너무 의연하게 잘 견뎌내는 엔젤.
강도라는 아빠의 타이틀을 견뎌내야하는 엔젤. 나에게 너무 자상한 아빠가 그럴리 없어 생각하면서도 부딪히는 현실(학교생활)은 힘들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이사와 엄마에게 버림받음.
동생만 데려간다고 했더라도 이해했을텐데 엄만 말도 없이 동생만 데려갔다.
얼마나 상처일까?
하지만 유일한 삶의 돌파구 별이 있다. 증조할머니 댁에서 만난 별지기.
별지기의 존재에 대해 알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 만남과, 별이 주는 위안으로도 엔젤은 훨씬 더 삶에 대해 견디기 쉬워졌으니까..
나도 한때 별에 대해 동경했던적이 있었다. 별자리도 열심히 찾아보고..
나의 경우엔 아빠의 영향이 컸었는데 별자리 바라보면서 이름과 모양을 찾아보는 재미가 꽤 있었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좋았다.
엔젤이 별이 주는 위안으로 좀 힘겨운 삶이지만...서서히 안정선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결국 동생과도 엄마와도 다시 만나고, 증조할머니와의 관계도 더 좋아지고 있다. 가슴아픈 별지기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있긴 했지만...삶 속에서 생명탄생과 죽음은 언제나 공존하는 것이므로..
 
엔젤이 커서 성인이 되어 훌륭한 천체물리학자가 되면 참 좋겠단 생각을 했다.
비록 어린시절이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인생 전체가 모두 힘들라는 법은 없으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살 수 있는 엔젤이 되길..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라 서평을 어찌 써야하는지를 모르겠다.
다만...한가지 말할 수 있는 건...소설인데 혼자 너무 푹 빠져서 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쪽 눈을 감은 인간 - 상대의 양면성을 꿰뚫어 보는 힘
리사 맥클라우드 지음, 조연수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 쉬운 선택이 아니다.

난 지극히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써 양면성에 대해 생각한다는것이 정말 어려웠다. 물론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 사고 자체가, 아니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고가 한쪽으로 편협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했으니까..

 

내게는 직장생활 속에서 참 어려운 사람이 있다. 뭐라고 꼭 꼬집어 말할수없지만 뭔가 나랑 다르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나는, 어쩌면 서로가 자꾸 상처를 받게 되는지도 모르는 그런 관계에 놓인 사람이 있다. 내방식으로 내가 다가가면 거기서 밀쳐내고, 그쪽 방식으로 내게 다가오면 내가 멈춰버리는 그런 관계...이에 대해 늘 많이 신경을 쓰고 고민을 하였는데 요사이는 포기(?) 단계에 이르러서 두리뭉실 대충 무시(?)하고 지낸다. 하지만 아마도 그 쪽은 내가 이런지 모를 것이다. 그동안 내 안에서 아주 고군분투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도 그쪽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평행선을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방법적인 면이 덜 대꾸하고, 내 나름에는 무시인 안듣는 쪽을 선택한 것인데 의외로 이 방법이 잘 먹히고 있어서 위험한 줄타기 같던 관계가 나란한 평행선으로 유지되기 시작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많이 선택해서 읽게되었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겠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특히 인간관계는 더 그런거 같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대해 논하는 책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잘 들어주어라, 입장바꿔 생각해라인데 나는 정말 진짜 아주아주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근데도 안되는건 애시당초 우리가 맞지 않기 때문인걸까? --; 음...이 책은 좀 다른 몇가지 방법을 제시해준다.

 

진실의 삼각형을 사용할 것!

진실의 삼각형은 우리가 '모아니면 도'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에 길들어져 있음을 직시하고, 상대에게 나쁜점이 있다면 그 나쁜점이 99개이더라도 좋은점 1개를 보고 더 높은 수준의 해결책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가 대부분 겪게되는 의견충돌의 공통점은 나는 옳은데 상대는 틀렸다는 생각에 기인하기 때문인데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하는 말은 좋다, 나쁘다 둘 중 어느한가지를 꼭 선택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내가 옳다는 사고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무조건 상대가 틀렸다는게 됨) 더 화가나고 상처를 받고 했다는게 된다.

 

상대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것!

최근 나의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올시다인데 업무량이 증가되고 가정에서의 내가 해야할일은 그대로 유지되니까 에너지를 충분히 재생산해내지 못하고 고갈된 상태에 당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대로 치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아주 좋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 환자들이 정말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내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내가 충분한 에너지가 없으니 반응하는 정도에서 더 날카롭고 있다고는 느낀다. 가령 환자의 수준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때문에 원래 틀릴 수 있어, 또는 원래 잘 안될 수 있어가 전제가 되는데 이 전제 후에 반응정도가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을때는 여유롭게 10정도에 수치에 반응한다면, 지금은 5정도에도 발끈하려고 하는걸 내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환자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변화하는 정도가 더 더딘게 아닐까 걱정도된다. 역으로 내 스트레스 부분도 있긴하지만 그들이 빨리(또는 내가 기대한 속도로)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 조급하게 반응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대의 반응이 내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뭔가 좀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선택할 필요가 없다!

둘다 하거나 둘다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꼭 현존하는 최선의 어떤 방법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리고 타협하거나 협상하려고 한다. 그 선택이 항상 옳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타협이나 협상은 그저 맞추는 것이지 실제로 발전에 영향을 주는게 아니다. 육아에서도 엄격한 부모가 될 것인가 자유로운 부모가 될 것인가로 고민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자유롭게 해 주어도 좋은 것인데 무조건 자유로운 부모가 되기 위해 아이를 통제하지 못한다거나 반대로 무조건 아이를 통제해서 아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선택이 필요한게 아니라 기준, 목표가 필요할 뿐이다. 지금 나는 육아휴직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회사는 내게 육아휴직은 해서는 안될것(?)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주고 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3개월의 출산휴가는 첫아이 경험상 좀 짧다싶다. 익숙해질만하면 출근해야되는 상황이랄까? 내가 쉬겠다는 말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볼때 6개월 가량은 엄마의 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1년 가량은 더 좋고...지금도 내 출산휴가 대체자를 구하기 힘들다고 인사팀에서 우는 소리 전화를 두번이나 받은 상황이다. 애 낳으러 가지 말란건가? --;; 내가 기안을 올린게 언제인데..출산휴가도 간당간당한(물론 그렇다고 출산휴가를 못들어가리란건 절대 아니다. 맘편하게 못간다 정도~) 상황에서 육아휴직이 왠 말인가...그렇지만 좀 더 고려해볼생각이다. 지금 선택할게 아니고, 그러니까 육아휴직을 한다 안한다의 상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내 아이를 위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두고 어느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상대가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또, 나를 괴롭히는 상대가 나의 발전을 위해 존재는 제퍼슨과 애덤스 같은 사람일 수 있음을 명시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안에 있는 진실, 표면적인 결과는 지금 나와 맞지 않더라도 그들이 꼭 부정적인 의도로, 나를 해하려했다는게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한다. 한가지만 생각하는 한쪽만 바라보려고 하는, 좋은것 아니면 싫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때 인간관계의 유연성이 향상될 수 있을 것임을 명심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하기 전 아이가 하는 말 - 아이가 보내는 아홉 가지 감정 신호
폴 C. 홀링어, 칼리아 도너 지음, 이경아 옮김 / 우리가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육아서를 챙겨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과중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육아서가 모두 만족을 주거나 깨달음을 주는 완벽히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가르침 또는 내 초보 육아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이가 이제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만 보고는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이책.

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너무 선택을 잘 했다 생각이 드는 책.

 

나 자신도 그렇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간과하는 한가지.(나만 그런가? ^^:)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받아야할 감정이 있다는 점이다. 성인과 성인간에는 '대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비교적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아이이기 때문에 더 당황하고,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게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말이 안 통하니까..  하지만 그 전에, 그 기본 바탕에 그러니까 이런 결과를 얻기전에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점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이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 또는 내 말을 잘 들어야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 결국 이것은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내 기분, 내 기준으로 활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9가지의 감정신호를 모두 몰라도 상관없다. 물론 모두 안다면 더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가 감정이 있고, 그런 감정을 표현했을때 그 감정을 존중하면서 제대로 반응해주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든간에 말이다. 보통 부모들은 자기의 일에 집중하다보니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감정을 고려하는게 쉽지 않다.

가령 부엌의 찬장을 열어서 냄비며, 그릇들을 꺼내고 있는 아이를 봤을때 당신이 드는 느낌은 어떠한가? 내게 처음 그런 사태가 발생했을때(지금 다시 곱씹어보면..) 우선은 저지를 했다. 왜냐하면 냄비나 그릇들이 행여 아이를 다치게 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이걸 언제 다 치워..으~~~하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에 짜증이랄까? 여하튼 불쾌한 감정이 밀려왔었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이런 사태에 대해 그건 아이의 호기심, 즐거움, 탐색을 위한 시간이라고 말해준다. 아이의 감정에서 보자면 말이다. '어? 이런것도 있네. 신기하다. 이건 뭐하는걸까? ' 아이에게는 대부분 모든 사물들이 처음 만나는 신기한 탐구 대상이다. 그래서 이렇게 엄마의 찬장탐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엄마가 이런 새로운 신세계 탐험을 못하게하니 아이는 속상하다. 왜 하면안되는지 일말의 설명도 없이, 무조건 안된다고하는 엄마가 싫어진다. 으앙~~~ 큰 울음소리로 자신의 분함을 표현하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반응하여, 되려 이렇게 냄비를 어질럿다고 꾸지람을 한다. 엄마가 내게 꾸지람한것은 이렇게 탐색해서는 안된다는 건가? 이런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건가? 아이는 헷갈린다.

또, 식당이나 마트같은 곳에서 일정시간이 지나게 되면 아이는 지겨움을 느낀다. 그러면 아이는 그 지겨움의 표시로 소리를 지른다거나 짜증을 부린다거나 울음을 터트린다. 이 때 대부분의 부모는 왜 아이가 이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데 너무 챙피하다, 왜 우리 아이는 버릇이 없을까?(예의를 지키지 않을까?) 우리 아이는 집에서는 안그런데 밖에서는 왜 이럴까? 하고 생각할 뿐 아이의 지겹다는 감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짜증으로 표현하고 있는 아이에게 관심의 전환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엄마가 사려고하는 물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같이 골라본다던지(만져보거나 시선을 유도하고 설명해주는) 옆쪽으로 자리를 잠깐 이동하는 지 등의 아이의 지겨움에 대한 해결을 해 주어야한다.  식사 중이라면 다른 식감의 재료를 먹어보게 한다거나 냅킨등으로 무엇을 만들어 준다거나 등의 다른 활동을 넣어서 아이의 관심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평소의 그 천사같은 아이로 돌아올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쇼핑이나 식사를 방해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지겨웠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니까..

 

이런 아이의 감정(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충분히 처리해주지 않게되면, (아이가 표현한 감정적 욕구를 부모가 적절하게 해소 시켜주지 않으면) 아이의 자아는 왜곡되고 삐뚤어져서 자존감의 손상을 입게된다. 아이의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해주어야 한다. 이렇게되면 아이는 훨씬 더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며, 아이가 희망적이고 낙천적인 성품을 키울 수 있는데 도움을 준다.

 

아이 입장에서 보는 방법 중 하나는 일정시간(15분가량)을 전적으로 아이 주도에 맡겨 놀이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옳고 그르다는 등의 판단은 필요없다. 아이가 주체가되어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진행하는 동안 부모는 아이에게 맞춰주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속도에 따라서 움직여라. 아무래도 아이들의 속도는 어른들에 비해 느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답답해하지 말고, 속으로 심호흡하거나 열까지 세어보는 등의 방법으로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옷을 입힌다거나 걸어보는 것이다. 또 퀀티티타임(quantity time)을 실천해서 아이와의 생활 속에서(빨래하고 밥먹고 청소하는 등의 일상생활) 흥미와 즐거움을 최대로 키워주고,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 신호도 잘 표현하게 하며, 이런 신호를 유발하는 원인을 적절하게 해주도록 해야 한다. 아이와의 시간이 양질의 시간이어야한다는 생각은 다소 위험하며, 특히 긴 시간을 질적으로 높게 유지하려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퀄리티타임(qulity time)의 강조는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밖에 아이 감정 중 내가 유심히 본 것은 분노 표현부분이다. 분노는 아이의 스트레스의 외침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 분노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으며, 아이를 대할때 자신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기도 한다. 분노를 터트리는  아이를 대할 때 부모 자신의 분노를 잘 다스리고, 분노를 인정하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하고, 감정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통제력을 잃고 야단법석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불은 기름이 아니라 물로 끄는 것이다. 엄마의 감정과 상황을 설명해주고 참기 힘들다면 자리를 이동하는 것도 괜찮다. 아이의 자기조절력은 부모의 감정처리 방법과 유사하게 되므로 분노의 상황처리에 대해 부모 스스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나는 화가 날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분노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내가 어렸을때 가족들이 내 분노에 대응해주는 방식은 어땠는지, 성인이 된 지금 나는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는 지 등...) 그리고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고 원인을 찾아주어야 한다. 물론 어떤 때에는 원인을 찾기도 힘들고 마구 폭발하고 있는 아이를 감당하기도 힘들다. 그럴때 아이가 차분해질 수 있도록 안아주거나 감정적 편안함을 느끼는 것을 안겨주어 진정한 후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도 된다.

 

늘 드는 생각은 육아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옳바른 방향이란 것은 확실히 있다. 그에 따라갈때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의 발전이 가능하고, 그것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최고의 방법은 나에게 맞는 것, 내 생각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닐까? 이번한주가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특히 내 스스로 감정조절을 잘 하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기똥꼬 까까똥꼬 시몽 5
스테파니 블레이크 글.그림, 김영신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에게 동생이란 존재는 낯설고도 불안한가보다.

이제껏 한몸에 받고 있던 사랑을 원하던 그렇지 않던간에 나누어 주어야하는 조금은 껄끄러운 존재랄까?

나밖에 모르던 엄마가 때론 나보다 동생을 더 좋아하는거 같은 이상한 기분.

사실 그 존재가 눈으로 확인되지 않을때부터 아이들은 안다. 그래서 갑자기 폭력적이된다던지, 징징거림이 는다던지, 아프다던지 등의 행동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도 그랬다. 동생이란 존재에 대해 아직까지는 '귀여워~'로 표현하고 있지만(다 엄마아빠의 유도로 인한...) 동생이란 존재가 생겼단걸 어렴풋이라도 알아서일까? 징징거림이 너무 늘어서 한동안 애를 먹었다. 이런 아이에게 조금 덜 충격적으로(?) 좀 더 편안하게 동생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들을 고심해봤는데 딱히 마땅찮은게 없다. 그거 자주 접하게해줄뿐....그래서 초음파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같이 배를 만지게도하면서 친근한존재로 인식시켜주고 있었다.

 

이런 찰라에 만난 '아기똥꼬~'

아이가 너무 재미있게 봐서 깜짝 놀랐다.

 

 

새로온 아기는 시몽이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아기 때문에 시몽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편안하게 놀지도 못한다. 시끄럽다고 엄마가 꾸중하시니까...


 

아이에게 읽어주다 내가 빵 터진부분은 여기였는데...

주인공 시몽이가 아기(=동생)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다.

 

아기가 우리집에 온 지 벌써 3일이나 됐어.

어쩜 평생 우리집에 있을지도 몰라.

끔찍해

말도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난 싫어.

그럼 나는 똥을 아무데나 싸고 다닐거야.

 

나는 보면서 너무 웃겼는데 생각해보니 아이 입장에서 충분히 할만한 생각들이었다.

우리 꼬맹이도 이런 생각을 하면 어쩌지??

음...

 

 

이런 시몽이와 아기가 가까워지는 사건.

혼자 잠을 청하던 시몽이 늑대(꿈 으로 추정됨)들이 나타나서 무서워하다 엄마아빠방에 간다.

엄마아빠는 시몽이와 같이 잘 수 없다고 하시고, 그때 들려오는 어떤소리...

아기똥꼬 목소리를 듣고 시몽이는 동생(=아기똥꼬)를 지켜주려고 같이 잠을 자게된다는 얘기다.

 

아이는 아기똥꽁의 옹알이 소리를 참 좋아했는데..

내가보기엔 그냥 이상한 말인데 들으면서 꺄르륵 웃는다. 아직 옹알이의 의미를 이해하는건가? ^^::

 

동화를 보면서..

나는 아이와 이런 말들을 나누었는데..

아기똥꼬는 누구지요? / 네 동생은 어디있어? / 아기똥꼬 이뿌다 그치? / 시몽이가 아이똥꼬를 안아주네. 00이도 동생 이뿌다하고 안아 줄거예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동생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몇번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까지해서 더 만족스러웠던 책.

 

또, 엄마아빠도 아이가 동생에 대해 마냥 긍정적이지 않을거란걸 직접적으로 깨닫게도 해준다.

아기가 우리집에 온 지 벌써 3일이나 됐어.

어쩜 평생 우리집에 있을지도 몰라.

끔찍해

말도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난 싫어.

그럼 나는 똥을 아무데나 싸고 다닐거야.

이 구절을 통해 말이다. ㅎㅎ

아이 생애 최초의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 될지모르는 동생탄생사건이 재미있는 동화를 통해서 좀 더 편안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이 글은 한울림어린이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