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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을 감은 인간 - 상대의 양면성을 꿰뚫어 보는 힘
리사 맥클라우드 지음, 조연수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 쉬운 선택이 아니다.
난 지극히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써 양면성에 대해 생각한다는것이 정말 어려웠다. 물론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 사고 자체가, 아니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고가 한쪽으로 편협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했으니까..
내게는 직장생활 속에서 참 어려운 사람이 있다. 뭐라고 꼭 꼬집어 말할수없지만 뭔가 나랑 다르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나는, 어쩌면 서로가 자꾸 상처를 받게 되는지도 모르는 그런 관계에 놓인 사람이 있다. 내방식으로 내가 다가가면 거기서 밀쳐내고, 그쪽 방식으로 내게 다가오면 내가 멈춰버리는 그런 관계...이에 대해 늘 많이 신경을 쓰고 고민을 하였는데 요사이는 포기(?) 단계에 이르러서 두리뭉실 대충 무시(?)하고 지낸다. 하지만 아마도 그 쪽은 내가 이런지 모를 것이다. 그동안 내 안에서 아주 고군분투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도 그쪽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평행선을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방법적인 면이 덜 대꾸하고, 내 나름에는 무시인 안듣는 쪽을 선택한 것인데 의외로 이 방법이 잘 먹히고 있어서 위험한 줄타기 같던 관계가 나란한 평행선으로 유지되기 시작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많이 선택해서 읽게되었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겠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특히 인간관계는 더 그런거 같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대해 논하는 책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잘 들어주어라, 입장바꿔 생각해라인데 나는 정말 진짜 아주아주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근데도 안되는건 애시당초 우리가 맞지 않기 때문인걸까? --; 음...이 책은 좀 다른 몇가지 방법을 제시해준다.
진실의 삼각형을 사용할 것!
진실의 삼각형은 우리가 '모아니면 도'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에 길들어져 있음을 직시하고, 상대에게 나쁜점이 있다면 그 나쁜점이 99개이더라도 좋은점 1개를 보고 더 높은 수준의 해결책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가 대부분 겪게되는 의견충돌의 공통점은 나는 옳은데 상대는 틀렸다는 생각에 기인하기 때문인데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하는 말은 좋다, 나쁘다 둘 중 어느한가지를 꼭 선택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내가 옳다는 사고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무조건 상대가 틀렸다는게 됨) 더 화가나고 상처를 받고 했다는게 된다.
상대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것!
최근 나의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올시다인데 업무량이 증가되고 가정에서의 내가 해야할일은 그대로 유지되니까 에너지를 충분히 재생산해내지 못하고 고갈된 상태에 당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대로 치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아주 좋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 환자들이 정말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내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내가 충분한 에너지가 없으니 반응하는 정도에서 더 날카롭고 있다고는 느낀다. 가령 환자의 수준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때문에 원래 틀릴 수 있어, 또는 원래 잘 안될 수 있어가 전제가 되는데 이 전제 후에 반응정도가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을때는 여유롭게 10정도에 수치에 반응한다면, 지금은 5정도에도 발끈하려고 하는걸 내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환자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변화하는 정도가 더 더딘게 아닐까 걱정도된다. 역으로 내 스트레스 부분도 있긴하지만 그들이 빨리(또는 내가 기대한 속도로)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 조급하게 반응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대의 반응이 내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뭔가 좀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선택할 필요가 없다!
둘다 하거나 둘다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꼭 현존하는 최선의 어떤 방법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리고 타협하거나 협상하려고 한다. 그 선택이 항상 옳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타협이나 협상은 그저 맞추는 것이지 실제로 발전에 영향을 주는게 아니다. 육아에서도 엄격한 부모가 될 것인가 자유로운 부모가 될 것인가로 고민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자유롭게 해 주어도 좋은 것인데 무조건 자유로운 부모가 되기 위해 아이를 통제하지 못한다거나 반대로 무조건 아이를 통제해서 아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선택이 필요한게 아니라 기준, 목표가 필요할 뿐이다. 지금 나는 육아휴직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회사는 내게 육아휴직은 해서는 안될것(?)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주고 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3개월의 출산휴가는 첫아이 경험상 좀 짧다싶다. 익숙해질만하면 출근해야되는 상황이랄까? 내가 쉬겠다는 말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볼때 6개월 가량은 엄마의 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1년 가량은 더 좋고...지금도 내 출산휴가 대체자를 구하기 힘들다고 인사팀에서 우는 소리 전화를 두번이나 받은 상황이다. 애 낳으러 가지 말란건가? --;; 내가 기안을 올린게 언제인데..출산휴가도 간당간당한(물론 그렇다고 출산휴가를 못들어가리란건 절대 아니다. 맘편하게 못간다 정도~) 상황에서 육아휴직이 왠 말인가...그렇지만 좀 더 고려해볼생각이다. 지금 선택할게 아니고, 그러니까 육아휴직을 한다 안한다의 상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내 아이를 위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두고 어느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상대가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또, 나를 괴롭히는 상대가 나의 발전을 위해 존재는 제퍼슨과 애덤스 같은 사람일 수 있음을 명시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안에 있는 진실, 표면적인 결과는 지금 나와 맞지 않더라도 그들이 꼭 부정적인 의도로, 나를 해하려했다는게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한다. 한가지만 생각하는 한쪽만 바라보려고 하는, 좋은것 아니면 싫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때 인간관계의 유연성이 향상될 수 있을 것임을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