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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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이 책은 정진홍교수가 SERI 인문학 조찬특강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정진홍교수는 경영자들에게 인문을 통한 경영에의 통찰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인문학은 비단 기업의 경영뿐 아니라, 대인관계 및 자신에 대한 경영에 있어서도 뿌리가 되기 때문에 인문학을 통한 통찰하는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다.

 

나는 특히 정진홍교수의 사람공부를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사람공부는 인문학을 통한 사람에의 통찰을 다루고 있다)

 

본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  역사, 흥륭과 쇠망의 이중주_흥륭사

2장  창의성,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힘

3장  디지털, 그 감각의 제국을 지배하라

4장  스토리, 미래 사회를 사로잡는 힘

5장  욕망, 결코 포화되지 않는 시장

6장  유혹, 소리 없는 점령군

7장  매너,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8장  전쟁, 먼저 사람을 얻어라

9장  모험, 패배 앞에 무릎 꿇지 말라

10장  역사, 흥륭과 쇠망의 이중주_쇠망사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는 10개의 테마로 분류되어 있다.

1장에서 중국의 흥륭사를 다루었고 마지막장에서는 로마의 쇠망사를 다루고 있는데 다른 장들 보다는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역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다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정진홍교수는 인문학을 통한 통찰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이 책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역사적서술 또는 다른 저서의 서술을 인용하여 사실관계를 전달함으로써 청자와 독자들이 스스로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일부장들은 참고문헌을 발췌하여 모아놓은 내용이 거의 전부인 느낌도 있어서 다소 아쉬웠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우리는 왜 인문학에 새삼 주목하는가? 다름 아닌 '통찰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통찰은 통찰(洞察)이면서 동시에 통찰(通察)이다. 통찰(洞察)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뚤어 보는 것을 말한다. 인사이트(insight)다. 아울러 통찰(通察)은 곧 통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훑어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오버뷰(overview)다. 결국 통찰의 힘은 바로 통찰과 통람의 융합이며 인사이트와 오버뷰의 시너지다.

 

예부터 문사철이라 했다. 문장과 역사와 철학이다. 먼저 문장은 기교의 산물이 아니다. 문장은 사람의 마음이고 영혼이다. 더불어 사는 역사는 포폄이다.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어 스스로를 반성하고 나아갈 바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은 단지 관념의 퇴적이나 사념의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깊은 생각과 넓은 조망을 통해 삶의 진정한 원리를 발견해가는 살아 있는 운동이다. 이 문사철이 바로 인문학의 본력이다. 문사철은 세간에서 흔히 오해하듯이 결코 박제화된 관념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혼의 운동이다.

 

마오쩌둥은 강희, 옹정, 건륭이 남긴 지혜에 중국의 미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족인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마오쩌둥은 전통적인 화이관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중국이 원나라나 청나라 같은 이민족들의 침입과 지배, 융화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이 거듭났음을 인지했으며, 중국인을 단순히 오랑캐와 한족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흥미와 호기심을 배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크레이징 데이'를 만들어야 한다. 뭔가에 미치는 날이 있어야 한다. 열정을 분출하며 무엇엔가 몰임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는 창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즉 날마다 살아서, 날마다 스스로 놀라야 한다. 놀랄 일이 없다는 것은 오감이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은 사소한 것에 잘 놀란다. 단, 놀라는데서 그치는 대신 이 놀람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며 재창조한다. 이것이 진정 창의적인 사람이다. 즉 놀람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놀람을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종종 괴팍하고 오만하며 이기적이고 몰인정할 수 있다.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들 상당수가 괴짜들이며, 양면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장 폴 사르트르는 진지하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의 권위가 클수록 아이들은 무언가를 결정할 경험과 기회를 잃게 된다. 즉 자립심 있는 아이로 자라나려면 어렸을 때부터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많아야 한다. 실제로 아이를 성인과 동등하게 대접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지적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감성 시장에서 팔리는 욕망의 상품은 말 그대로 '이야기가 있는 상품'들이다. 그 이야기에는 감성 바이러스가 담겨 전염성을 가진다. 상품의 질이 아닌 상품에 담긴 이야기가 승부수를 던진다. 예를 들어 나이키를 보자. 아무리 나이키라도 오래 신으면 밑창이 닳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난이키는 '승리, 신화, 불패'등의 이야기를 제품에 담음으로써, 동일한 질의 신발보다 몇 배 비싼 값임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몰블랑 만년필도, 루이비통 핸드백도 같은 원리다. 사람들은 물건 자체가 아닌 그 상품에 담기 이야기를 산다. 감성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야기가 있는 상품'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접목하고, 스스로 그 감성 바이러스가 넘실대는 이야기 속으로 뛰어든다. 결국 감성 시장은 감성 바이러스가 넘쳐나는 '이야기 상품'이 지배한다.

 

산업시대의 최고 우상은 포드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였다. 정보화 사회의 최고 우상은 빌 게이츠였다. 그렇다면 드림 소사이어티의 최고 우상은 누가 될 것인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스티븐 스필버그를 꼽는다. 꿈과 감성 그리고 이야기가 주도하는 드림 소사이어티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콘텐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굳이 스필버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드림 소사이어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총이나 칼같은 하드웨어가 중요했다. 또 얼마 전까지는 그것을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스토리를 만들고 내러티브를 생산해내는 콘텐츠웨어가 지배하게 될 것이ㅏㄷ. 즉 문화전쟁, 이야기 전쟁이 총, 칼, 폭탄의 전쟁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진짜 무기는 특유의 미소도, 탁월한 균형감각만도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복잡한 문제를 단순명료하게 풀어낼 줄 아는 능력이었다.

'아이젠하워원칙'이란 말이 있다. 이는 어지러운 혼돈 상태를 단순하게 정리 정돈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아이젠하워 원칙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따로 마련한 빈 책상 위나 빈 공간 바닥을 4등분 한다. 그리고 4등분한 공간에 각각 번호를 매기고 1번공간에는 버릴 것을, 2번 공간에는 다른사람에게 지시해 처리할 것을, 3번 공간에는 연락할 것들을, 4번 공간에는 지금 당장 직접 처리할 것을 배치한다. 그러면 정작 책상위는 일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말끔히 치워진다. 이게 아이젠하워 원칙의 실행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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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도 디자인 이야기 - 10가지 디자인 발상법과 4가지 회사경영법
사토 오오키.가와카미 노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미디어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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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도, 디자인 이야기

(사토의 디자인 경영)

 

"판매와 직결되지 않는 다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책의 문구는 최근에 디자인이 마케팅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알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을 시작으로 디자인은 그 자체로 마케팅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업들이 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있고 앞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즉, 디자인은 마케팅의 단계를 넘어서서 기업의 아이덴티티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수 많은 기업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넨도의 디자인'의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넨도의 발상

2. 넨도의 경영법

 

넨도는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넨도의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쳤을 것이다. 

이 책의 1장 '넨도의 발상'에는 그러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 

넨도의 디자인이 왜 차별화되는지, 넨도의 디자인의 원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사진이 등장하여 이해를 돕는다. 사진 뿐 아니라 아이디어 스케치등을 다양하게 삽입되어 있다. 넨도의 디자인은 심지어 이 책에도 녹아 있다.

 

그런데 나에게 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장의 '넨도의 경영법'이었다.  

나도 모르게 넨도는 디자인회사라는 선입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넨도라는 디자인회사와 창업자인 사토의 경영에 대해서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넨도의 경영철학은 세계적인 유수의 기업들 못지 않게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많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은연중에 예능과 상경을 구분해서 생각해 왔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발상이 많았다. 

흔히들 예능을 하는 뇌와 수학등을 하는 뇌를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넨도의 사토 오오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이렇게 폭넓게 사고하는 디자이너가 있었기에 '넨도'라는 회사가 전세계인 기업들이 줄을 서서 디자인을 맡기고 싶은 회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면적인 전개는 기업의 특성을 끌어내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사토의 생각을 인용해보자.

"디자인의 면적인 전개는 타사가 쉽게 카피 제품을 내놓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현재 수준의 기술이라면 상품 하나를 카피하는 건 그리 어려은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면적인 전개를 해나갔다면 단지 카피 제품 하나가 출시되었다는 것만으로는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아요. 콜렉션이라는 생각으로 복수제품에 개연성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죠. 횡적으로 연결된 상품군이라는 발상을 통해 비즈니스의 근간에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넨도의 디자인 방식 가운데 '한발 물러선다'는 사고법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압도하기 보다 고객의 능ㄹ력이나 상품의 힘을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 한발 물러선다. 합기도와 같은 방식이다. 사토는 말한다.

"중요한 건, 한방에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필살의 일격을 가한다거나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디자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목청 높여 주장하고 큰 소리를 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무엇이고 또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 전달할 것인가이다. 구매자 스스로가 관심을 갖는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한발 물러서 보거나 목소리를 작게 해보는 디자인 수법.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이 주는 교훈과도 닯았다.

"특히 이 방식은 수많은 상품으로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효과를 드러내죠"

 

위화감이란 넨도 디자인의 중추가 되는 사고법으로, 넨도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사토가 말하는 '매일매인 일상 속에서 느끼는 위화감'이란 무엇일까? 한반만으로 알아차릴 수 없었던 요소가 반복을 통해 알아채기 쉬운 것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애를 쓰면 쓸수로 아이디어는 도망쳐버려요. 목적의식을 가지면, 즉 안테나를 세우면 자기 주변에 울타리를 치게 되죠. 주변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일부러 포거스를 맞추지 않으려 합니다. 초점을 설정하지 않은 눈으로 전체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보다 더 넓은 세계가 보입니다. 주변의 상황을 인삭하며 다음 순간을 추측하는 스포츠 선수의 주변시력과 비슷하죠."

 

"디자인이란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는 명언이 있어요. 이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요청에 수독적으로 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찰과 이해를 통해 '상대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예측해 제공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다지이너로서 꼭 지녀야 할 본질을 '꽃다발을 선물한다'고 표현한 것이죠. 그 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모으고 묶는' 우리의 디자인 방식은 약간 다른 의미에서 꽃다발이나 부케에 근접한 것이라 생각햐요. 한 송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꽃, 그러나 그 꽃들을 모아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넨도의 디자인 방식 중, 서로 관련없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 연길시키는 방식이 있다. 사토는 그것을 '타닌동'아리 부른다.

닭고기과 달랼로 조리하는 오야코동과 달리 타닌동은 닭고기 이와의 고기과 달갈로 조리하는 음식이다. 넨도가 말하는 디자인에서의 타닌동이란'아무런 인연도 점접도 없는 두가지를 연결시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머리속 전혀 다른 폴더에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가 갑자기 링크되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때가 있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수록 임팩트가 강력해집니다. 고저 차이에 의한 '격차'가 생겨나기 때문이죠.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서로가 이런 저런 식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거죠. 그때의 놀라움과 타닌동 디자인에서 받는 놀라움은 비슷합니다. 아니면 'A라고 쓰고 B라고 해석한다. 그이유는 C다' 와 같은 TV코미디 프로그램의 수수께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A,B는 전혀 접점이 없는 두가지를 일컫고 C는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도는 거죠."

 

기존과 정반대의 것을 적극 수용하는 기업의 모승에서도 엿볼 수 있든, 현대는 사고의 약진이 필요한 시대다. 디자인이란 인간의 존재를 염두에 둔 사회적인 행위다. 계획을 수립하고 궁리를 거듭해 사물과 공간, 또는 그것으로 영위되는 우리의 생활 자체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지금의 디자인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이제껏 우리가 상관없다고 여긴 사고방식이나 영역간의 연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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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시간 -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는 법 인생학교 6
톰 체트필드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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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시간

(디지털시대에 살아남는법)

 

인생학교 시리즈 중 '시간'과 관련된 책이다. 

부제인 '디지털시대에 살아남는법'이 이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인 TV, 컴퓨터,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활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또한 역설적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감으로써 우리가 생각할 시간을 부족하게 만들고 기기에 종속되고 있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공감하는 내용이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디지털기기의 여러가지 폐해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기기의 발달은 빠른 정보의 전달을 통해 대중들이 응집된 목소리를 가질 수 있게 한다. 오전에 발생한 뉴스가 저녁시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되고, 식탁의 화제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군중심리에 의해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획일화될 소지가 있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획일화된 목소리를 듣다보면, 개인의 생각이나 창의력이 향상되기 어려워 질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디지털 세상 속 우리의 시간, 어떻게 쓸 것인가?

2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변화들

3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4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쓰고 제대로 살 수 있다

5 권위의 종말

6 인간으로서의 격을 상실해가다 

7 오락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았나?

8 정치가 삶의 일부로 녹아든 시대

 

우리집에는 TV가 없다. 

분가하면서 구매조차 하지 않아서 TV가 없이 산지 3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TV를 없이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혹시 손님이라도 오시면, 심심해하지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걱정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전혀 불편함이 없이 살고 있다. 

 

TV가 없다고 해서 그 시간에 특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은 휴식을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하고 논다. 책을 보거나 대화하는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최근에는 정성스럽게 요리를 해보기도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디지털기기가 발달할 수록 개인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물론 디지털기기를 이용해서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을 얼마나 비위놓고 생각하고 사색할 시간을 남겨놓느냐가 될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디지털 미디어로부터 벗어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기본 상태가 아닐 뿐만아니라, 확고한 의지 없이는 경험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 열차 안의 '정숙열차'표시, 미술관, 성당 등 공공장소에 붙은 휴대폰을 꺼달라는 표지판들을 생각해보자. 이 표지판들은 지금 우리 시대를 대변해 준다. 지금은 특별한 요구, 확고한 의지에 의해서만 디지털 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상시적인 실시간 연결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기성찰의 측면의 중요한 물음은 그 방향이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쪽으로, 하지만 연결에 아무리 목마른 상태라 하다라도, 잘 살아남으려면 이 상시적 소통의 능력으로부터 의식을 어느정도 분리시킬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현재가 아닌 다른 시제, 즉 다른 본질의 시간도 필요하다.(중략)

레니어가 30분동안 전기기기와 단절된 집중을 요청한 것에서 시사되듯, 우리 삶 속에 언와이어드된 시간을 만드는 것은 산속 오두막에서 살거나 평생 이메일과 담쌓고 지내기로 선언하는 식의 거창한 문제가 아니다.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겐 '오프 그리드'지역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어쨋든 언와이어드 시간이란 그런 거창한 방식보다는 일상생활의 일부로 삼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테면 오전 중에는 이메일을 보내지 않기, 회의나 식사중에는 전화기 꺼놓기, 며칠이나 몇 시간 동안 전기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 마련하기, 누군가와 20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기보다 직접 만나기. 이런 결심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육성시키기 가장 힘든 정신 상태는, 분산된 주의력에 대응하려 속사포처럼 발생하는 반사적인 반응과도 상관없고, 온 주의력의 절대집중과도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창의적 통찰력과 개인의 평온함에 관련된 것, 즉 자유로운 상념이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녹아들면서 그 자유로운 상념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로운 상념은 생활 중의 '비어있는'시간에(가령 기차 안에서나 욕조 안에 있을때, 걷던 중에, 혹은 책을 읽다가 창밖을 흘끗 내다볼 때) 떠오르곤 하지만, 디지털상으로 기획을 짜는 데 빠져 있거나 집중이 요구되는 오프라인 회의 중에는 재현시키기가 불가능하다. 대체로 이런 생각들은 삶이 빡빡하게 짜여있지 않은 순간 살금살금 다가온다. 한마디로 돌발적이고 개인적이며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영국의 계몽철할가 존로크의 <인간오성론>에 담긴 표현을 빌자면, '이해를 위한 숙고나 집중 없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를 때' 일종의 자유가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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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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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

 

나는 행복의 정복이란 이 책의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행복이라는 포지티브한 추상명사와 정복이라는 다소 네거티브한 정복이라는 명사의 조합이 좀 어색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렇게 어색한 제목을 가진 책들은 번역가가 제목을 의역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원제는 'The Conquest of Happiness'이다. 

즉 행복의 정복이 정확하게 맞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책의 제목인 '행복의 정복'을 어색하게 생각했을까?

행복은 정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아니면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행복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명망있는 철학자이다. 

행복의 정복은 1930년에 쓰여진 책인데,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통찰이 돋보인다. 명저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구성은 심플하다.

 

1.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2. 행복으로 가는 길

 

목차만으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러셀은 이 책의 전반부에서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한지를 밝히고 후반부에 가서 행복으로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반부의 행복하지 못한 이유들에 대한 다양한 통찰은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던 반면, 

후반부의 행복을 정복하는 방법들에는 적극적으로 공감되지 않는 부분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문제점을 알면 그에 따른 해결책은 각자의 성향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생각할 만한 화두를 많이 던져준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외에도 많은 저작물을 남겼는데 '서양철학사'를 비롯한 러셀의 다른 책들에도 관심이 간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씩 읽어보고 싶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이 글에서는 문명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상적인 불행에 대해 다룰 것이다. 즉 분명한 외적요인이 없으니 달아날 길이 없는 것 같고, 달아날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참아내기 힘든 불행을 치유할 방법을 제시하는 데 이글의 목적이 있다. 이런 불행은 대부분 세계에 대한 그룻된 견해, 잘못된 윤리와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요인들은 인간이나 짐승이 누리는 행복이 근본적으로 의존하기 마련인 자연스런 열정과 굑구를 짓뭉갠다. 이런 불행은 개인의 힘으로 좌우할 수 있다. 나는 보통의 운으로도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몇가지 변화의 방법을 제안할 작정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심리학적으로는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었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꿈을 실현할 때마다 점점 꿈의 범위를 넓혀갔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꿈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었다. 이름난 정복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 그는 신이 되기로 결심했다.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술에 젖어 지내고, 난폭하게 화를 내고, 여자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간 본성을 이루는 다른 여러 요소들을 희생해 한가지 요소만을 개발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는 없다. 또한 자신의 엄청난 자만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 세상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서 근본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불행한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마의 늪에 빠져 어떤 만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기분전화만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쾌락'의 광신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줄여서라도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려고 한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나 다름없다. 술에 취해서 누리는 행복은 불행을 잠시 중단시키는 데서 오는 순간적이고 소극적인 행복이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란 말은 실제로는 성공을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쳇바퀴에 갇혀 있는 신세가 아니다. 그들이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쳇바퀴가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쟁은 지나치게 냉혹하고 집요하며, 필요이상으로 근육을 혹사시키고 의지 또한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런 경쟁이 삶의 근본 철학이 될 수 있는 시기는 기껏해야 한두 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경쟁은 신경의 피로를 초래하고, 여러가지 도피현상을 일으키며, 쾌락 추구를 사업만큼이나 긴장되고 어려운 일로 만들어버려(휴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해 재고가 바닥나는 지역에 도달할 것이다.

 

질투는 평범한 이간 본성이 가진 여러가지 특징 중에서 가장 불행한 것이다. 질투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안기고 싶어하고, 또 처벌을 받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질투하는 자신 역시 불행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대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그는 가능하다면 다른사람들에게서 그들이 가진 장점,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그들의 장점을 빼앗는다.

 

질투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러가지 불행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눈앞에서 형제나 누이가 더 귀여움받는 것을 목격한  어린아이는 질투하는 버릇이 몸에 배게 된다. 이런 아이가 사회로 나오게 되면 자기가 희생양이 되는 불공평한 대우에 눈을 치켜뜨게 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당장 알아차리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상상함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 자신이 경멸당한다고 상상하지 않도록 친구들이 항상 조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귀찮은 존재가 된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생각할 뿐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이러한 생각을 사실로 만들어 버린다.

 

현대는 특별히 질투가 만연해 있는 시대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가난한 나라는 부유한 나라를, 여자는 남자를, 정숙한 여자는 정숙하지 않으면서도 처벌받지 않는 여자를 질투한다. 질투가 다른 계급과 민족, 다른 성간의 정의를 이룩하는 주요한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질투의 결과로 빚어진 정의는 자칫하면 최악의 것, 즉 불행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증가시키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 정의가 되기 쉽다.

 

그러나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자녀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감정과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욕구 사이에서 갈들이 일어난다. 부모가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느정도까지는 자연적 필요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지만, 자녀는 되도록이면 빨리, 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부모의 권력욕은 이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갈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폭군 행세를 계속하다가 자녀들에게 반발을 사는 부모도 있고, 이러한 갈들을 의식하고 자신이 이렇게 모순된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부모도 있다. 이러한 갈등을 겪은 순간 부모는 자녀를 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온간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는 순간, 부모의 마음속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세상은 피할 수 있는 불행, 피할 수 없는 불행, 병, 정신적 갈등, 투쟁, 가난 그리고 악의로 가측 차 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개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불행의 원인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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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피터 드러커 라이브러리 4
피터 드러커 지음, 안세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새로운 경제사회의 경영

(기업가들에게 주는 드러커의 교훈)

 

이 책은 월스트리트에 실렸던 피터드러커의 칼럼을 엮은 책이다.

현대 경영학의 기초를 닦은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피터드러커의 혜안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거의 20년 전에 쓰여졌지만, 현재에 읽어도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과 경영의 본질에 대한 피터드러커의 지혜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이 20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고 마지막 3부의 일본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을 확인하기 전까지 큰 저항감 없이 읽었다.

(이 책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드러커의 사상을 재조명해서 출간한 드러커 라이브러리의 4번째 책이며, 앞선 책들인 변화 리더의 조건, 변모하는 경영자의세계, 이노베이터의 조건도 최근에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경영 패러다임의 대전환

2부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경영자의 선택

3부 경영자가 주시해야 할 일본의 저력

 

헤르만 지몬은 드러커에 대해 "전통적인 학문적 경계를 넘어선 사상가의 증언"이라고 극찬한 바 있는데, 이 책의 1부를 보면 헤르만 지몬이 왜 드러커를 그렇게 극찬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경영학의 구루로 알려져 있는 드러커는 이 책의 가장 앞에 나오는 칼럼인 '새로운 경제학에 대하여'에서 경제학에 대한 지식과 통찰 또한 유감없이 보여준다. 

 

단, 3부의 일본의 저력부분은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 있는 일본의 현 시대상황 때문에, 가독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일본인의 특성을 예술적인 부분까지 연결해서 통찰하는 드러커의 시각은 (비록 동의하긴 어려웠지만) 신선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생산성에 기반을 둔 경제학'이었다. 

그 시대 이 칼럼을 읽은 기업가들은 생산성에 기반을 둔 경제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피터 드러커와 사상을 공유했을까? 지금의 기업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경영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읽는다면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결국 이 책은 기업가들에게 주는 드러커의 조언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경영학은 그 역사가 다른 학문들에 비해 짧음에도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피터 드러커와 같은 혁신적인 학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영학은 그 특성상 다른 학문과 연관되는 분야가 많기 때문에 드러커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통찰이 돋보이며, 이러한 드러커의 통찰이 경영학의 발전에 상당히 이바지 했음을 이 책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번역은 좀 아쉬움이 있다고 생각된다. 원문을 살리기 위한 번역일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문장의 호흡이 길어서 몇번이나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했던 문장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50년전 케인스가 그에게 의혹을 품은 사람들에게조차도 그처럼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보아야 했고, 그런 현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경제학은 케인스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케인스를 초월해야 한다.

미래에는 경제학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체주의 국가는 경제가 큰 관심을 갖기는 하겠지만 특정 경제학파가 기반을 두는 기본 가정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국가에서 경제활동과 관심사는 비 경제적합리성에 의해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가치는 별개의 부냐를 구성한다. 경제활동은 '자신의 경계 안에서 자발적이고 내적으로 일관성을 가지며 목적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결국 경제학은 어쩔 수 없이 회계학의 한 분야가 되고 만다.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보면 밀턴 프리드먼은 주로 '반케인즈주의자'로 불리지만 오히려 케인즈주의자에 가깝다. 프리드먼은 케인스의 세계관을 주저하지 않고 수용한다. 프리드먼의 경제학은 순수한 거시경제학으로, 화폐 공급을 통해 경제를 통제하는 전부를 동력을 지닌 하나의 경제 단위로 본다. 그리고 프리드먼의 경제학은 환전히 수요에 집중한다. 이에 따르면 화폐와 신용만이 경제적 실제를 의미한다. 프리드먼이 화폐 공급을 근원적인 것으로 보고 이자율을 파생적인 것으로 본 것은 케인스 경제학에 작은 주서을 단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케인스 경제학을 미세 조정한 것이다. 또한 프리드먼을 두드러지게 만든 것은 그의 통화 이론이 아니라, 경제활동은 자발적인 것이고 경제적 가치는 경제 정책이나 활동의 중심점이며 자유 시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다. 아마 케인스도 이 모든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고전파, 신고전파 경제학자를 비롯해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후 보상과 농업 및 제조업 부분에서 생산성이 저하되면서 유럽의 빈곤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실물 경제'에서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했다고 본다. 그러나 프리드먼을 포함하여 케인스는 통화공급의 감소 혹은 투기의 결과로 1929년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상징 경제에서 대공황이 발생했다고 본다.

 

이윤이라는 개념은 정태적이고 변화가 없는 폐쇠 경제를 가정한다. 동태적이고 변화가 있는 경제, 즉 위험과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개방 경제에서는 이윤이 존재하지 않는다. 슘페터가 설며해던 진정한 혁신자에게 일시적으로 돌아가는 이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와는 다ㄹㄴ 어떤 경제활동에 대해서도 오직 비용만이 존재한다. 회계 모델에 나오는 과거의 비용, 현재의 비용, 그리고 자본 비용으로 표현되는 미래의 비용만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윤극대화의 원칙을 사업계획이나 자본투자 혹은 가격 결정에 그대로 적용하는 기업은 없다. 기업의 실제 행동을 지배하는 이론은 자본 비용, 시장 최적화, 그리고 학습곡선이라고 하는 장기적 비용절감에 관한 이론이다. 그리고 이런 이론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생산량의 극대화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미래의 경제학은 근본적으로 다른 미시경제학을 요구할 것이다. 바로 생산성 최적화에 목표를 둔 이론이다. 이는 상호 의존하는 작용들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려면 당연히 극대화가 아닌 최적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자본 형성은 자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서 최소 개념을 요구한다. 또한 이윤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만족스러운 이윤을 확보하는데 목표를 둔 이론을 요구한다. 미래의 미시경제학은 지금과는 다르게 동태적이고, 위험 및 불확실성과 함께 기술, 경제 상황, 시장의 변화를 가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하게 변하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현재 확인 가능한 행동을 통합하는 균형 경제학이 될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시장에서 수용될 것인지를 판당하고 그것이 기술에 미치는 충격을 형가며 그런 지식을 기술, 즉 공정이나 ㅈ품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일을 위해 기업 경영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과학과 기술을 알아야 한다. 특히 중요한 기술과 성과를 알아야 한다. 때때로 이런 성과는 이전 기술이 갖고 있던 지식 기반과는 완전히 다른 과학이다 학문분야에서 발생한다.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개발 상태에 있는 국가는 없다. '저개발'이라는 말은 자원으로부터 온전한 실적을 얻어낼 능력이 부족한 것을의미한다. 실제로 우리는 선진국이나 저개발국이 아닌 생산성이 그 사이에 있는 개발도산국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한다. 개발 도상국 중에서 자본이 부족한 나라는 아주 적다. 정의상 개발도상국은 현재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본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국가다. 개발도상국에 부족한 것은 그들이 가진 인적 자원, 물적 자원, 자본 자원을 완전히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진구으로부터 받는 '방아쇠효과'다. 이런 효과는 그들이 가진 자원을 활용하여 '승수효과'가 발생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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