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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 개정판, 지식 에듀테이너이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재미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노는만큼 성공한다
(김정운의 휴테크)
노는만큼 성공한다는 꿈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만약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가진 부모가 이 책을 본다면 아마 자녀가 보기전에 얼른 숨기고 싶은 제목의 책이 아닌가 말이다.
단순히 흥미를 유발하고자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고 하기엔 저자의 이력이 심상치 않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따고온 김정운교수이다.
김정운 교수는 얼마전 TV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짧은 프로그램으로 그의 내면을 모두 알수는 없겠지만 솔직하고 재미있는 지식인이라고 느꼈는데, 역시나 이 책도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의 플로우를 간략하게 한줄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놀아라 - 감정능력(정서지능)향상 - 행복,성공
즉, 이 책은 성공의 전제조건으로 감성지능을 꼽고 있는 것이다.
감정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이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최근에 들어서서 창의력과 사회지능, 감성지능이 부각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 책은 잘 쉬고 잘 충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2부 삶을 축제로 만들자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지만, 내용은 일맥상통한다.
(다소 자의적인 해석일지 모르지만) 마음놓고 여가를 즐기라는 것이다.
보수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적극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에 다니고 있음에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책의 말미에 가면 다소 스퍼트가 떨어지는 감도 있지만(김정운교수도 좀 쉬어야 되기 때문에), 집중력있게 읽는 다면 한번에 죽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잘 쉰다는 것,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보낸다는 것,
나 스스로도 삶을 한번 돌아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자녀들이 생겼을 때 아이들과 많이 놀아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서구 사회의 변화를 통해 볼 때 생산적 여가 문화와 창의적 경제활동은 동전의 양면이다. 노동시간의 감소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창의적 서비스업으로의 변화와 필연적으로 맞물려 있다. 상품의 생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서비스업이란 대부분 여가시간에 이뤄지는 활동과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압축적 근대화로 인한 문제점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면서도 압축적 여가시간의 증대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의 반대말이 여가나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가는 일의 반대말이 아니다. 일의 반대말은 나태다. 사람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일은 남이 시켜서 하는 행위로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일이란 내가 자발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남의 돈을 따먹는 행위였을 뿐이다. 일의 주인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더럽고 아니꼽지만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나 놀이가 아니라 나태가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주인은 놀듯이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의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다. 일은 재미없고 여가와 놀이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쉰 살 먹은 사람의 창의력은 다섯 살 어린이의 창의력의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가 창의적인 이유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아무 의미없는 돌 조각으로도 하루종일 놀 수 있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정보의 재조합을 통한 '낯설게 하기'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빗자루를 말처럼 타고, 총싸움 칼싸움을 하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빗자루라는 정보의 맥락이 청소 도구의 맥락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맥락으로 바뀌면서 빗자루의 '탗설게 하기'가 일어난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재미'다.(중략)
부모들은 이렇게 놀면서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빗자루를 빼앗고 창의성 학원에 가는 버스에 태운다. 그런 아이들은 자라서 그 부모들은 똑같이 우울한 얼굴로 운전을 하며 앞어서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켜는 이들은 절대 용납 못하는,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정보의 크로스오버를 통한 '탗설게 하기'를 아인슈타인은 '조합놀이'라고 불렀다. 그가 만든 'E=mc2'이라는 공식은 이미 있어왔던 에너지, 질량, 빛이라는 개념들의 새로운 조합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구텐베르그의 활자는 와인을 짜내는 원리와 동전을 찍어내는 원리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조합들은 이전에는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합놀이'를 통한 창의적 아이디어의 생성은 생각의 시각화라는 수단을 통해 이뤄졌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의 습작 노트에는 한결같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이어그램으로 그러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물로이고 다윈이나 다빈치의 습작 노트에서도 이처럼 생각을 시각화한 흔적이 아주 쉽게 발견된다. 이러한 생각의 시각화가 가능한 것은 바로 심상이라고 하는 사고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유난히 사랑받는 사람들은 정서공유를 잘한다. 남의 기쁨, 슬픔, 우울함, 흥분과 같은 정서를 아주 잘 공유해준다.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 눈짓, 몸짓, 목소리를 통해 그 사람이 내 정서를 공유하는지 아닌지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낀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 엄마와 놀면서 이 정서공유의 방식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독일의 내 지도교수는 사람이 하는 일에 'can not'은 없다고 주장한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can not'가 아니고 'will not'이라는 것이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다른 일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려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우리가 쉴 수 없다, 바빠서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일에 비해 노는 일, 쉬는 일이 뒤로 밀린다는 뜻이다. 즉 놀고 싶지 않고 쉬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걔속 쉬지 못해 놀지 못하고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쉬는 것, 노는것, 일하는 것, 바빠서 정신없는 것. 이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다. 여기서 재미있게 노는 것, 쉬는 것이 뒤로 밀리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삶의 목적을 항상 뒤로 미룬다.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 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만 하다는 뜻이 된다.
휴식은 내 삶의 막대기르 꽂는 일이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다.
여가를 보낸다는 것은 여유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내게 너무나 중요했던 것을 배경으로 보내고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들, 배경에만 흐릿하게 있어왔던 것들(예를 들면, 아내, 아이들, 내 젊은 날의 꿈같은 것들)을 전경으로 끌어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경과 배경을 유연하게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은 쉬어가는 여유가 없으면 절대 생기지 않는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언제 정말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일상의 사소한 행복에 대해 사려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저녁식사 후 아내 손잡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정말 행복이다. 일요일 오후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꼬박꼬박 조는 것이 정말 재미다. 착각하지 말자. 인내는 쓰지만 그 결과가 달콤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 삶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참고 인내해서 나중에 많은 돈을 벌면 행복하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행복과 재미는 그렇게 기다려서 얻어지는 어마어마한 어떤 것이 아니다. 행복과 재미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