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백인 중산층 여성들은 특권이 자유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은 생존자가 거의 없는 낯선 나라였다. 여성의 몸은 빈민가나 제3세계만큼이나 식민화 되어 있다. 그들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여성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강하고 행복한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48


미친 여자들은 정말로 미친 걸까?

정신병을 앓는 여자들은 정말로 정신병에 걸린 걸까?


서양의학이 어떤 질병을 이해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을 때 종종 그 질병을 단순히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하면서 그런 병의 존재를 부인해왔다는 사실이다.  - p.37


필리스 체슬러 자신도 스스로의 대표 저작이라고 꼽는 여성과 광기를 읽으면서 따라가면 왜 구성이 이렇게 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1부 제목은 광기, 2부 제목은 여성인데 1부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를 든 후 신화와 대표적으로 미쳤다고 평가된 여성 영웅에 대해 언급하고, 이후 정신병원과 질환, 치료사들에 대해서 범용적으로 다룬다. 2부에선 정신병원에 입원당했거나 치료받았던 여성들을 분류하고, 그들에 대해 다루며, 개인들과 진행했던 인터뷰 역시 담겨 있다. 


어떻게 사회와 치료사들이 손쉽게 미쳤다고 진단해버리거나 몰아붙여버렸는지, 혹은 실제로 미쳤다면 왜 미치게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내게 어둡던 길이 밝혀진 느낌이었다. 


전통적으로 우울증은 '이상적인' 자아의 상실, 애증의 대상의 상실이나 자기 인생의 '의미'의 상실에 대한 반응(상실에 대한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서, 외부로 향했어야 하거나 외부로 향할 수 있었던 적개심이 자신의 내부로 방향을 돌리게 되어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격성'보다는 우울증이 실망이나 상실에 대한 여성적 반응이다. 그런데 연구조사와 임상적 증거를 놓고 봤을 때 이러한 견해는 전체든 일부든 간에 논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우선 대부분의 여성이 어머니를 '상실했다' - 또는 한번도 진정으로 '가진' 적이 없었다 - 는 점에 주목하자. 여성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남편이나 연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단단한 '이상적' 자아를 발전시키는 여성은 거의 없다. 삶의 '의미'에 관심을 쏟는 일에 격려는 말할 것도 없고 허용조차 받지 못하는 여성이 대다수다.(물론 많은 남성들도 그렇겠지만 확실히 여성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그렇다) 여성은 삶의 의미를 지탱하고 있는 실존적인 기반을 상실한다기보다 '여성'이라는 직업을 잃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그들이 결코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을 '상실할' 수 없다. 


여성은 그들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언제나 애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 대다수 여성들은 이러한 애도를 성적,육체적,지적인 활동을 통해 철학화하거나 무시해버리거나 화를 내 풀어버리지 못한다. p.163


그는 '가족병리학'이 혼란스러운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개인 행동의 이해 불가함을 집단의 이해 불가함으로까지 확장한다. 이제 이것은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다수의 개인들에게 적용된 생물학적인 유추이다. [...] 이것은 '범임상주의'의 한 형태인데 [...] 그런 임상주의에서 모든 사회는 심리적으로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범임상주의의 위험은 가공할 낙관성에 있다. 토머스 사즈는 이것을 "정신분석학적인 제국주의"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실제로 사회가 '치료를 필요로 할 수는 있겠지만, 통찰이 있건 없건 간에 개인의 자유라는 환상에 기초한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적 방법은 그와 같은 '치료'를 할 수 없다. 특히 주요한 사회제도가 전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면 더더욱 치료될 수 없다. 


위 구절은 이북으로 읽어서 페이지 수가 없다. (이북은 종이책과 비교했을 때 몇 페이지인지도 같이 병기를 해주면 좋겠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여성) 개인의 행동은 그 개인만의 행동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발견되는 것이며 결국 사회는 심리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임상주의를 가리켜서 '그 가공할 낙관성' 이라고 잘라 말하는 부분이 너무나 멋진 것이다. 

사회제도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는데 어떻게 치료하녜... 

저 절묘한 비꼼... 


하지만 이 책은 그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읽은 두 권의 책... 정확히는 대략 80%만 읽은 페미니즘의 투쟁과 어찌저찌 완독해낸 하나이지 않은 성에서 이해가 안되던 부분들을 명쾌하게 관통하는 지점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나는 이전 두 권에서 몸에 대한 투쟁과 이론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당황스러웠고, 어딘가에서 몸을 다루는 게 필수적인 것 같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쭉 따라가다보니까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이다. 


소규모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여성들의 성적 오르가슴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됐다. [...] 여성이 자기 몸을 인정하고 즐기는 것은 자기발전에 필수적이다. 미국의 기계적인 '성매매'나 남성 중심적인 그룹섹스나 프리섹스와 같은 환상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여성들이 완전한 섹슈얼리티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어머니들이 생산수단과 재생산수단을 통제해왔을 때라는 것이다.  [...]  여성의 성적인 오르가슴도 빈민가의 아침 식단도 그 자체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첫걸음임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고서야 몸에 대한 탐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의 일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육체를 죄악시하고, 육체에서 나오는 욕망을 죄악시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어떻게 긍정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음, 사실 신화 파트도... 뒤에서 계속해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소환하여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았다면 신화 파트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 2의 성을 읽을 때도 그랬다. 긴긴 신화들을 읽어가면서 뭔가 알 듯 말 듯한 걸 보니 나는 정말로 이해한 게 아니었고... 그러나 일단 읽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일단 읽어가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 


사업하는 여성으로서 나는 남자 동료나 고객과 스포츠클럽이나 동업자 모임이나 사창가나 남자들만 모이는 파티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와 유사하게 관여할 수 있는 여자 동료도 거의 없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그와 같은 제도를 즐길 만큼 사회화되어 있지 않다. - p. 495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공적인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거의 없으며, 가치 있는 역할 모델도 거의 없다. '권력'과 '공적 행동'은 사실상 남성의 것이기에, 여성에게는 낯설다. - p.505


이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신화를 찾는 것은 가치 있는 역할 모델을 찾아내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동료를 찾고 경험을 찾기 위한 사회화의 일환이라는 걸 비로소 이렇게 구체적인 언급을 듣고서야 이해한 것.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깊이 몰입했다가 마지막 열 세 가지 질문을 읽었다. 출간된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 여전히 살아 숨쉬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루비 이든은 열일곱살 때 임신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이모는 그녀를 "헤픈 년"이라고 부르면서 그녀가 몰고 온 ‘소동‘과 ‘치욕‘을 비난하고 임신중절을 권유함으로써 괴로운 시련을 안겨주었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 모성은 이런 방식으로 실체화되었다. 여기서 진지하게 묻고 있다. 육체가 그처럼 야만적으로 부정당할 때 여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P233

일각에서는 남성 동성애를 서구 문화의 파수꾼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는 우리 문화가 반여성적이고 독선적이며 호전적임을 의미한다. - P362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흑인이자 여성은 폭력과 자기파괴와 편집증 사이를 끝없이 비틀거리며 걷는 위치에 있다. 나는 흑인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증세를 연구했다. 흑인 여성은 흑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좋아하지 않고 백인 여성을 선호하며 돈이라고는 벌어오지 않고 아내나 흠씬 두들겨팬다는 점을 전 생애에 걸쳐 분명히 깨달았다. 흑인 남성은 딴 여자들과 놀아나지만 흑인 여성은 백인 남성으로부터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또한 분명히 알고 있었다. 흑인여성들의 눈에 백인 여성들은 굴러먹은 여자들이고 유치하며 부유하며 인종차별 적이다. [...] 흑인 여성은 강하지만 그들 역시 굴러먹었고 가난하고 인종차별적이고 백인 남성이나 ‘좋은‘ 흑인 남성을 얻는 데 목을 맨다.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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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31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저는 저 비꼼을 그냥 넘겨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은데 등롱 님은 바로 딱 지적해주시니 같이 읽는 맛은 바로 이런데 있는가 봅니다. 저 혼자 읽기에도 좋은 책이지만 이렇게 다른 분들의 후기 읽다 보면 제가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게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책의 가치가 더 뛰는 것 같아요. 읽느라 고생하셨고 후기 쓰느라 애쓰셨어요. 책도 등롱 님의 후기도 읽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등롱 2021-12-31 22:19   좋아요 0 | URL
다른 분들의 인용을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다시 읽는 묘미가 있습니다! 저도 다른분들 후기 찾아 읽으며 이리가레보다 후기가 많아서 즐거워요 ㅎㅎㅎ 여성과 광기 정말 너무 좋은 책이었어요…!! 잠시 쉬고, 이제 또 다음 책을 기대하면서 출발하겠습니다, 다음 책 남성됨과 정치도 너무 설레어요~~

공쟝쟝 2022-01-04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습니다! 굳이 다 찾아내서 읽는 중입니다 ^^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은 여성주의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입니다. 먼저는 육체와 이성의 이분법이 여남의 이분법 그대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겠지만, 저 스스로는 제 몸에 대한 통제권을 높여가는게 (그것이 운동이나 안전의 문제, 혹은 섹슈얼리티까지) 여성이자 인간으로서의 저를 좀 더 강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종종 또 같고 다른 책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

등롱 2022-01-04 11:49   좋아요 1 | URL
앗 공쟝쟝님 리뷰 저도 잘 읽었습니다~. 수줍어서 댓글을 안 달았는데,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몸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가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몇권째 읽으니까 비로소 몸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느낌이에요. 보봐르가 말했던 여성의 몸은 여성에게도 타자화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함께 읽기 너무 즐겁습니다, 또 책 후기 나눠보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