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비파 레몬

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잔잔히 물결치는 바다위에 홀연히 떠 있는 해를 닮은 듯하다. 말 그대로 인위적이지 않으며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자연히 색이 바라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고스란히 제 모습을 찾아가는 그런 해질 무렵의 해를 떠오르게 한다. 그녀가 그리는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일상과 가장 맞닿아 있으면서도 모두가 한번쯤은 느껴보았음 직한 심리들을 섬세한 터치로 잔잔하게 그려 큰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래서일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치 먼 미래의 누군가가 아닌 현실 속의 나로 대입되기도 하고 이들을 통해 다시금 사람과 사랑을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명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독자들 스스로 묻고 그 해답을 찾도록 한다.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번 이야기에는 실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는 일부터 살아가는 방식까지 모두 다른 9명의 복잡한 관계도. 이 때문에 초반에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는데 조금씩 드러나는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이야기의 흐름을 깨닫고 비로소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각자가 감내해야 할 자리가 있다.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어머니로 존재하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들 역시 여자라는 역할에 앞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친구이며 사회에서 자신의 일을 당당히 해내고 있는 또 다른‘나’다. 아주 평범한 듯 보이는 이들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고민과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불안한 심리적인 요소들이 잔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실 속의 나 역시 가끔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함에 이유 없이 기댈 곳을 찾고 싶고 어느 순간에는 혼자 목 놓아 울고 싶을 때도 있다. 이렇듯 누군가가 대실 해줄 수 없는 저마다의 한숨은 있기 마련이고 이 어두운 그림자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그 결혼 생활을 통해 무언의 안정과 행복을 추구해가면서도 가끔은 쓸쓸하고 외로울 수 있으며 타인의 눈에 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도 실은 더 없이 허탈한 밑 빠진 독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아내가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채울 수 없는 것을 또 다른 누군가로 하여금 채우려하는 남자, 사회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도덕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선 그를 어떻게든 비난하고 한 치의 용서도 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면서도 왜 그러할 수 없는 것인지! 애써 괜찮은 듯 포장하려는 그들의 사랑이 어느 한편에서는 안타깝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채우고 싶어도 결코 전부를 채울 수 없는 이들의 사랑, 그로 인한 저마다의 복잡한 심리들이 너무나도 차분하게 담담히 그려져 있어 (그들 중 누가 됐든-) 동일시 된 감정으로 길게 호흡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현실 속에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해나갈 수도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한 떨기 민들레 같은 사랑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도 있고, 지극히 자신을 바라봐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모든 사랑에 대한 방식을 다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여줄 수는 없지만 분명한건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슴 한 편은 더 외롭고 쓸쓸했다는 것.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그녀들만의 고독과 아픔이 잔재해 있었다는 게 같은 여자로써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사랑 없는 삶은 메마른 나뭇가지와 같으리라. 사람과 사람이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세상, 외로운 게 인간이라면 그 외로움을 서로의 온기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오늘날 우리는 늘 희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같은 곳을 보고 같은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이 이 가을, 모두의 가슴에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랑을 기다리며:)

이누가미 일족

이누가미 일족 ㅣ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 애드가 앨런 포우, 앨러리 퀸’여기에 나열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추리소설을 웬만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부분에서 아하! 하고 손뼉을 칠 것이다. 추리소설들의 거장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헌데 추리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낯선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껏 읽어본 추리소설은 고작해야 일본의 작가‘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몇 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추리소설의 매력이 무엇이라고는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건 사건과 결부된 주된 범인의 행방을 주시하며 독자들과 함께 추리해 내는 과정, 이야기의 말미까지 손에 땀이 나도록 함께 호흡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빠른 이야기 전개와 끝을 알 수 없는 결말이 바로 재미의 주된 요소라 할 것이다.

󰡐일본 초리소설 사상 최대 히트작!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라고 적힌 띠지를 보면서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일본에서 추리소설 사상 최대 히트작이라 불리 운다는데도 내게는 왜 이렇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내심 부끄러우면서도 기존의 추리소설과 다른 뭔가가 많은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이 긴다이치 코스케다. 다른 시리즈에서도 탐정으로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할 만큼, 탐정이라고 할 만큼의 노련해 보이는 눈빛과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놀라운 추리력과 특유의 발 빠른 행동거지로 제법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인물이다.  

이누가미 재벌의 창시자인 최고 우두머리인 이누가미 사헤옹이 타계하면서 남긴 유언장, 그 유언장으로 인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아 출신인 그는 자신의 이름도 부모도 태어난 곳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알지 못한 채 살아오면서도 홀로 우뚝 선 한마디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세 딸과 세 손자 그리고 한명의 손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유산에 대한 어떠한 언급조차 없이 한순간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떠난 사람을 뒤로하고 남겨진 유언장,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이들이 얽혀 있는 듯 보였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헤의 은인 노노미야 다이니의 손녀 다마요와 세 손자 중 한명이 결혼하면 그들이 모든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것이었고 유언장의 공개 시점은 바로 첫째 손자 스키케요가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미 떠난 자는 말이 없는 법, 남은 자들만이 남겨진 재산으로 인해 서로를 증오하고 그로 인해 큰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종종 믿기 힘든 사건을 대하다보니 그저 놀랍지만도 않은 일이 되었지만 그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쉽게 귀에 익지 않아 누가 누구였던 고, 하고는 다시금 재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비단 이것이 나만의 불편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야기 속에서는 표지에서처럼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첫째 손자 스키케요를 비롯해 이누가미 일족의 세 손자들과 사헤의 은인으로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된 다마요가 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만큼 사건과 사건의 연속, 이 모든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알면 알수록 그 끝을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과연 이들 가문의 살인 사건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저자가 이미 만들어놓은 복잡한 가족사와 피를 부르는 유언장, 그 한가운데에는 분명 독자들 스스로가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는 비밀스런 뭔가가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의 인간애 등 우리가 찾아야 할 진짜 해결책들이 말이다. 이 책과 더불어 그간의 시리즈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다시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플라워

월플라워 -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는 비밀스런 이야기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9월

누구나 살아가면서‘성장통’이라는 것을 겪는다. 인생의 긴 터널로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삶에 대해 모든 게 불확실하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자아가 미처 확립되기도 전에 크나큰 감정적인 동요와 혼란의 시기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소위 말해, 10대 청소년기를‘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스스로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감이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스스로 껴안고 있음으로 인해 쉽게 격한 감정 상태에 빠지거나 이유 없는 반항을 하게 됨을 말한다. 성인이 된 후에야 느끼는 것이지만, 청소년기는 완전한 한 사람의 모습을 성장 시키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친다.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되는 비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미국에서 꽤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성장 소설이라고 한다.‘무도회에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여성’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월플라워. 우리가 쉽게 하는 말로 어느 그룹에도 쉽게 속하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이를 가리키는 말‘왕따’와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잔인하고 뼈아픈 말이다. 솔직히, 청소년 시기에는 부모보다 친구들과의 관계 정립이 더 중요하다. 함께 어울리며 그 안에서 사회성을 배우고 누구에게도 쉽게 내비치지 못하는 속마음을 나누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는 자신의 이름을 찰리라고 밝힌 주인공이 그 무엇도 확실히 않은 익명의 인물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게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기에 담담히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전한다. 

왜 찰리는 1년여라는 긴 시간동안 미지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던 것일까. 자신의 친구와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어떠한 소통할 공간을 찾으려 한 것은 아닐까.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겪는 일례의 상황들과 사뭇 달라 보이기도 하지만 그 거리감은 그리 크지 않다. 그들 나름의 어려움과 사회적인 문제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개방적인 나라, 미국에서 섹스와 약물 복용, 동성애, 자살 등 거칠 것 없는 상황에 놓여진 그들은 때로는 상처를 받고 가슴앓이를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다만, 모두에게 자신들의 그러한 고민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어 하듯 객관적인 입장에서 찰리라는 주인공이 그들의 시선을 전하는 것이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행로에서 더 깊은 수렁에도 빠질 수 있지만 성장해가는 그 시간의 흐름만큼 미성숙한 자아가 독립된 한 인간으로써 올곧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 돌에 치이고, 저 돌에 밟히면서 다치고 아파한 만큼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 하나로 우리 모두는 그 시기를 꿋꿋이 인내하며 지나왔으리라. 지금 우리 주변의 청소년들에게 더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격려하고 끌어안아야 함은 물론이다. 무조건적인 언성이나 가르침은 그저 누군가를 엇나가게 할 뿐, 그들의 시선에 눈을 맞추고 함께 손을 잡아주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어두운 자리에는 빛이 필요하고 그 빛을 밝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성장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진정한 자아를 깨닫는 과정에는 혹독한 시련에 대한 주인공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어제의 나 또한 그들이 겪은 모습의 일부를 경험했기에 더 큰 동질감을 느끼며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리의 미래, 꿈나무들이 어두운 골짜기로 발을 헛딛지 않도록 묵묵히 구원의 손길을 보내야 할 것이다. 

책읽기에 대한 단상

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나는 읽기를 하면서 귀만이 아니라 오감의 신경이 모두 마음과 함께 글에 또는 책에 잠기는 경험을 했다. 빠져들고 녹아들었던 것이다. 그런 신비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었을 때는 어머니가 아래층에서 부르는 소리, 친구가 내 방 창문을 향해 고함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p54』

놀랍지 아니한가. 얼마나 책읽기에 몰두했으면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단 말인가. 책과 내가 하나가 되어본 경험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체의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활자 하나하나를 읽으며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것. 그 집중력에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며‘아! 나도 그때 그러했지!’하고 공감을 했어야 하는데 실로 부끄러워진다. 솔직히 어린 시절부터‘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저자에 비해 나의 독서력은 실로 짧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것은‘아는 것’도‘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 읽기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인격이나 인성의 탄생을 위한 모태일지도 모른다. -p85』

저자가 성장해온 시대만 해도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우리나라 말을 익히고 배우는 것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았고 오랜 시간 그들의 감시 하에 원하는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도 없었다. 그런 서글프고 힘겨운 과정에도 스스로 서적을 수집하고 서양의 유명 문호들을 만나게 되는 계기까지 만들었으니 책에 대한 그의 집념과 관심은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을 만큼 컸던 것 같다. 실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면서 그는 실로 많은 세계를 경험하고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받았으리라.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읽을거리가 넘쳐나도 시간이 없다고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읽는 행위를 귀찮아하는 것이다. 책을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고 오픈되어 있음에도 그 행복을 스스로 차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의 세계는 하나씩 늘어갔다. 나는 이미 점이 아니었다. 나의 존재성은 점으로 찍히고 말 것은 아니었다. 나는 좀 더 넓은 무엇인가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내가 읽는 작품 속의 세계는 모두 나의 영지고 영토가 되어갔다. 나의 존재는 드넓은 공간, 확대된 공간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그건 나의 순수 공간이고 나만의‘세계 내 공간’이었다. 어느새 읽는 일이 사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p98』

책을 읽는 것에 대한 그의 즐거움이 글의 곳곳에 묻어나 있다. 뭐든 즐거우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법. 그는 책읽기를 통해 다양한 문학 작품을 만났으며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법을 알았으리라.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눈으로 술술~ 대강의 주제만 파악하며 읽으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저자는 문학의 범주에 드는 시, 소설, 수필 등 그 밖의 많은 글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꼬집어 설명해준다. 결과적으로 책 읽는 요령과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 역시 제목에서처럼 열정적인 독서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따로 독서의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책을 읽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얻고 지식을 터득하고 더불어 삶의 지혜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인 것이다. 옳고 그르다는 말을 전하려는 것이 아닌, 우리 세대보다 더 오래 살아온 인생의 선배 내지는 스승이라고 칭하면 될까. 자신의 인생에서 특별했던 책과의 만남과 일련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책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동안 독서라는 행위는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또 옳은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등등..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친구,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책. 책과의 만남에 있어서 불협화음이 나지 않도록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가보리라 다짐해본다. 이것이 내게 남은 숙제인 것만 같다.

영화처럼

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한 권의 책만큼이나 우리의 삶의 한자리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영화다. 실로 많은 이들의 취미 란을 채우는 영화감상,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을 반영하여 만들어지고 그들의 삶이 곧 나와 우리 이웃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보여 지고 살아 있는 그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우리들의 잠든 감정을 새롭게 일깨우는 듯하다. 이것이 소설과 영화의 공통된 모습이리라. 그리하여 한 권의 소설이 종종 영화화되기도 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플라이, 대디, 플라이’또한 그러했다. 그의 작품들 대다수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왜 아직까지 나와는 인연이 없었던 걸까. 이와 같은 아쉬움과 그보다 더 큰 반가움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 속에는‘영화’라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담고 있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그 시절 함께 했던 친구를 그리워하고 오래도록 그 시간, 그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각각의 소설 속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주된 재미를 놓치게 하는 실수를 하는 것만 같아 구구절절 전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인생이라는 긴 터널 중 아주 짧았던 한 시절 누군가와 함께 꿈꾸었던 약속, 우정, 추억이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어떠한 계기로 다시금 소통하게 되었는지 이 점에 주목하며 읽으면 될 듯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마지막 장인‘사랑의 샘’이었다. 개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들의 일치와 화합 그리고 사랑으로 단결된 모습이 너무나 아련하고도 따뜻하게 다가와 읽는 내내 이런 가족의 원형을 꿈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영화관을 찾아가 돈을 주고 표를 구입해 관람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영화 상영을 계획하고 서로가 역할을 분담해 의견을 나누고 각자의 몫을 해내는 손자, 손녀들의 노력이 가상하고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이더라. 무엇보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 정말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특별했던 영화는 무엇일까. 호호-;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중간한 관심과 공감과 이해로 사람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는 것은 흙 묻은 신발로 타인의 집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굳이 들어가려 한다면, 할머니의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울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을 지니고 가야 한다. -p350』

매 순간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특별했던 누군가와의 기억이 있고 추억이 있고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다. 영화의 영사기가 두 시간 여 동안 필름을 통해 보여주는 인생의 한 부분처럼, 아주 짧지만 영원히 기억하게 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또 다른 내일을 꿈꾸듯이 오늘의 삶에서 나에게 주어진 삶은 내가 만드는 또 하나의 영화인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 중 극히 일부만 접해본 나에게 남은 또 하나의 숙제는 그들에게 특별했던 영화를 조금 더 특별한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일 게다. 아, 정말이지‘로마의 휴일’이 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