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죄 죽이기
존 오웬 지음, 김창대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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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존재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 삶을 증거 할 수단을 찾습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교류를 하든지 마음에 맞는 동료 혹은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얻고 앞으로 나아갈 삶의 희망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태어난 우리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행동방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겠지요. 신앙을 갖게 되면서 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좀 더 먼 미래를 밝게 내다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 듯합니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살아가면서 항상 옳은 길로만 나아갈 순 없습니다. 관계 안에서 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순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죄’라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로 살펴보면 양심이나 도의에서 벗어난 짓 혹은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를 간단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의 양심에 해가 되는 모든 행위 자체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존재가 아닌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죄를 짓습니다.


죄를 통해 내 자신을 속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하느님께 죄를 사하고자 고백하고 기도로 속죄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가장 많이 하는 기도 중에 하나가 바로 ‘주의 기도’일 것입니다. 주의 기도의 한 구절을 살펴봐도 우리는 주님께 죄를 용서해주시길 간청합니다.「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이 책의 저자인 존 오웬은 많은 이들에게 ‘최후의 청교도 신학자’로 불리우고 신학자로써 뿐 아니라 목회자로써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뜻을 설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이 비록 온전한 사람으로 자리할 순 없지만 죄로 인해 스스로를 타락시키거나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은 신앙인으로써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죄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보다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일깨우고자 합니다. 죄라는 그 자체를 그저 부정적인 것으로만 인지했던 제 자신의 생각이 이 책을 통해 다르게 인식되곤 합니다. 죄를 그 자체로 부정할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요, 주님이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천주교 신자지만 기독교 서적을 종종 접하게 되면서 이전에 가졌던 제 자신의 생각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미약하지만 좀 더 온전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안의 죄를 양으로 따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인간의 선한 마음에 해가 된다면 내 안의 죄를 죽이는 방법을 깨우쳐야 되겠지요. 조금은 어렵기도 했지만 ‘죄’ 그 자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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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하멜른
케이스 매퀸.애덤 매퀸 지음, 이지오 옮김, 오석균 감수 / 가치창조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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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술처럼 신비롭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책 한권을 만났습니다. 깔끔한 외모의 닮은꼴 부자 케이스 매퀸과 애덤 매퀸. 이들은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을 토대로 시간과 장소를 부여하고 이에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하여 보다 절묘한 재미와 상상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1284년 6월 22일에서 26일, 중세 독일의 소도시 하멜른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따라가 보겠습니다.


영주에 의해 갖은 핍박을 당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요하네스 가족은 아버지의 병으로 농작물을 소출하지 못하고 빈곤에 시달리다가 고향을 떠나기로 합니다. 그 와중에 우연히 피리 연주자 길드 요세프 수장의 눈에 띄어 아들 요하네스는 도제로 들어가게 되고 6년간의 관문을 무사히 마친 후 개인 임무를 맡게 됩니다. 부여받은 임무는 하멜른의 쥐떼를 소탕하고 그 사례금으로 영지를 구입하여 어려움에 처한 농노들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요하네스의 꿈이기도 한 스승 도제가 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한 것이죠. 빨간색과 노란색, 이 두 가지 색깔의 의미처럼 수장님은 요하네스에게‘자비’와‘정의’의 지침을 일러줍니다.


요하네스는 하멜른으로 가는 도중 에르젠 마을에서 농노들이 영주들의 핍박과 갖은 모욕을 참아가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실상을 직접 눈으로 맞닥뜨리고 그 곳에서 병든 기색이 완연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이 꼭 아버지를 구해내겠다는 일념을 다시금 확인한 채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일을 꼭 수행하리라 다짐하는 요하네스. 쫓겨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오직 일생을 영주 밑에서 소작하며 힘들게 살아온 아버지의 무능함과 패배자로써의 모습에 어린 아들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요.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들의 살아온 삶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겠지요. 악사로써 성공을 다짐하는 요하네스.


임무를 완수하기에 앞서 요하네스는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도적떼로부터 공격을 받지만 우연히 그 곳을 지나던 클라라 아가씨의 도움을 받게 되어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입니다. 수장으로부터 받은 임무를 완수하기에 앞서 시청을 찾아가게 되지만 시의원들은 쥐떼로 인해 생명마저 위협당하고 있는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음주가무를 일삼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소임을 받고 찾아온 자신을 홀대하고 탐욕과 이기에 찌든 그들. 쥐떼를 소탕하기 받을 사례금의 행방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요하네스는 이로 말미암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부정부패를 일삼은 이들이 남긴 피해는 오로지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들 자신임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 값을 치르지 않고 이유 없이 타인을 무고하고 협박하는 이들은 항상 권력을 가지고 남을 휘두르는 책임자들입니다. 소설을 통해 맞닥뜨리는 그들의 실상이 우리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하네요. 가진 자일수록 헛된 야망과 욕망에 휩싸이나 봅니다.


부시장이라는 권력을 남용해 없는 이들을 갈취하고 협박하고 모욕한 바우어. 나중에 자신의 죄를 어떻게 구원받으려고 하는지 속물이 되어버린 그의 모습이 처량하기만 합니다. 이 세상에도 분명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타인을 묵살하고 상처를 입히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겠지요. 정의와 자비로의 소임을 완수해야 하는 요하네스는 부패한 도시의 하멜른의 실상을 보고 많은 갈등상황에 놓이게 되고 혼란을 겪게 됩니다. 무엇을 선두에 두고 일을 지휘해 나가야 할 것인지. 누구를 벌해야 하며 누구를 욕해야 하는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발뺌하려고만 하는 이들, 그리고 연이어 발생하는 사건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길드에서 성공한다면, 그럼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저는 이제 악사가 된다는 게 무언지 알았다는 겁니다. 그건 공격을 받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건 나약함을 느끼고, 왜소해 보이고,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죠. 저는 그걸 직시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늘 패배자인게 진절머리가 났어요. 제가 그의 아들이라는 게 싫었어요. 저 역시 패배자로 남을까 봐서요. 길드는 제가 승자가 될 수 있을 곳으로 보였어요. 하지만 악사로서의 삶마저 이렇게 된다면, 그건.. 마지막 섬마저 가라앉아 버리는 셈이에요.- p 242


어려운 국면을 수없이 맞닥뜨리며 도제로써 자신의 임무에 대한 내면적인 갈등도 겪게 되는 요하네스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잘 이겨내며 결과적으로 스승 도제로써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런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 자신을 믿고 끝까지 힘이 되준 클라라와 구드룬이 있었겠지요. 올바른 정의와 법이 실현되는 사회는 지배자들만이 아닌 그들을 믿고 따라줄 현명한 시민들의 힘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한 소설로의 흥미를 이끌기보다 사건의 전말을 통해 결과를 예상하게 하는 작가의 탁월한 글 솜씨에 놀라게 됩니다. 또한 거듭되는 반전으로 인해 독자들은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빠져들게 됩니다. 전설과 설화를 토대로 한 이 소설로 인해 독일의 도시 하멜른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언제 기회가 닿는다면 꼭 가보고 싶어집니다. “중세적인 마법의 세계와 모험과 사랑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6월 26일, 하멜른”이 한 줄의 수식어가 절대 아깝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굳이 한 분야로 정의하고 싶지 않을 만큼 추리와 역사 그리고 즐거운 모험이 함께 하는 이야기, 한번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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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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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 그대로 있다는 기분이 든다. 생활과 방편이 바뀌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나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알 수 없다. 빠른 건 언제나 같다. 내가 바뀐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바뀌는 게 당연한가. 그럴지도 모른다.』- 성석제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상상 속에 재탄생한 인물들과 현재의 내 삶을 견주어 볼 수 있고 가슴깊이 드리워진 추억과 그리움의 책갈피를 펼치듯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견도 해볼 수 있습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세월, 그 끝없는 행로에서 우리는 모두가 손꼽아 인정하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존재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 성석제가 들려주는 7가지의 스토리를 통해 과연 내 모습은 누군가를 통해서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각자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그가 써온 중단편 7편이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있는데 “참말로 좋은 날”이라는 제목과 상반되는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를 추억하고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찾아간 장소는 세월의 흐름 앞에 많이 변모하여 종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오직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낯선 정경일 뿐일 때 이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인가요. (고욤과 환한 하루의 어느 한 때)


일상생활에서 숨쉬기, 걷기, 심호흡, 복식호흡을 생활화하며 본인 스스로 무병장수의 비법을 배우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며 채식을 통한 조화로운 삶의 전도사가 되고자 노력하는 인물 박희제의 어이없는 사고를 그린 이야기(고귀한 신세)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삶의 기로에서 무엇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좀 더 색다르게 다가온 이야기(집필자는 나오라)는 조선시대 궁중을 배경으로 인현왕후 폐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 박태보가 임금의 잔인한 고문 속에서도 진실만은 왜곡하지 않겠다는 자기희생의 절개를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타인을 이용하고 이득을 챙기려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그 시대의 충직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곧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본성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닐런지요.


선배와 후배, 동료인 이들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격식을 잃은 채 무례한 행동을 버릇처럼 일삼는 광경을 빗대어 보여주는 이야기(악어는 말했다)를 통해 현재 우리의 헐벗은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조차 흐려지게 하는 세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읽는 내내 가장 마음을 아린 두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악감정으로 왕래가 뜸한 형제. 그들이 좀 더 가깝게 왕래하며 지내길 바라는 여동생 계숙. 그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하고 사는 큰 오빠에 대한 측은한 마음에 이민 간 여동생은 큰 오빠에게 집을 투자하려고 하고 이를 질투한 둘째 오빠는 이 기회마저 이용해 투자 수익을 챙기려합니다. 한편, 한 집의 가장이기도 한 원호는 택시에서 두고 내린 여동생의 휴대폰 때문에 어느 날 자신의 아들과 불꽃 튀는 접전을 벌입니다. 가벼운 언행으로 시작된 싸움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하는 이야기(아무것도 아니었다). 재산 앞에 형제의 존재 가치도 사라지고 자식들에게 가장의 권위마저 잃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을 빗댄 자화상같이 느껴져 안타깝고 또 씁쓸하기만 합니다.


자신은 영세민이 아닌 중산층이라 말하는 무능한 가장은 어느 날 집 전세금을 주인에게 떼일 상황에 놓이자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 하지만 아내마저 청력을 잃을 위기에 놓이고 점차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자 자존심도 내놓은 채 자신의 후배에게 손을 뻗어야 할 처지인 신세에 놓입니다.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끝까지 지켜야 하는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까지.


삶의 어두운 고비마다 우리는 본연의 모습을 잃고 삶의 수레바퀴를 제어하지 못한 채“참말로 슬픈 날”의 전형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생을 함께 할 가족과 친구, 동료 더 나아가 내가 지켜야 할 본분이 있기에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숭고한 가치와 존재 의미, 계속되는 관계들의 연관성을 토대로 진정 원하는 자아상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 여건으로 인해 환경이 변하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 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의 선한 본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언저리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지라도 내일의 태양은 뜹니다. 그 날이 진정 “참말로 좋은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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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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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남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가 있기 마련입니다. 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우리들은 각자의 삶의 주인공으로 완벽을 요하는 삶의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지만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131회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의 캐릭터들은 엉뚱하고 유쾌해 줄곧 독자들의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들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삶의 모습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재치 있는 이야기꾼,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다섯 편의 시트콤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따라가 보면 그들은 저마다의 넘지 못하는 산이 하나씩 있음을 알게 됩니다. 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 펴는 야쿠자 중간보스, 어느 날부턴가 공중그네에서 번번이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장인이자 병원 원장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젊은 의사, 뛰어난 외모와 실력으로 촉망받는 후배에 대한 질투와 시기로 고뇌에 찬 야구 3루수, 오랜 기간 공들여 쓴 작품이 독자들로 하여금 외면당한 후 점차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여류작가까지.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는 현 사회의 모순이 남긴 하나의 병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 아닌 타인은 모두가 경쟁자로,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들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착오가 만들어낸 병입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조직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그들은 결국 정신과 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라기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덩치에 생각의 사고 자체는 다섯 살 아이 수준인 이라부. 몇 마디도 나누지 않고 비타민 주사를 무심결에 놓는 어처구니없는 행동까지 일삼지만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요, 자로 재는 듯한 격식이 없어 환자들은 그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게 됩니다. 삶의 관계마다 형식과 예의를 찾고 타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의라부 의사의 자유롭고 거리낌 없는 행동 방식은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소통 방식이 아닐까요.


이라부 의사는 삶에 대한 긍정적 모습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세상에 넘지 못할 산은 없으며 부정적인 인식, 그 자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그들이 일상에 직접 부딪쳐 자연스럽게 병을 치유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내일에 대한 앞선 걱정과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 그 자체가 우리 자신을 더욱 외로운 존재로 만드는 건 아닌지 내 자신부터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일본에서 재치 있는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작가‘오쿠다 히데오’의 발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위적인 웃음을 강요하는 책이 많은 가운데 현대인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유쾌하게 다가옵니다.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진정 원하는 이상세계를 만나고 싶을 때, 나를 일깨울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이라부 의사의 신선한 처방전, 당신도 필요하신가요?



[기억에 남는 구절 소개]


「분명 괜찮을 것이다.그런 기분이 든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그런 행동을 1년동안 계속해봐.그럼 주의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심각한 일들에 비하면 작가의 고민 따위는

  모래알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사라진대도 상관없다. 바람에 날려가도 괜찮다.

  그때그때 한순간만이라도 반짝일 수만 있다면.」


「아마도 자신은 닫혀 있을 것이다. 실은 사람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친구가 늘어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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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야화
아사쿠라 다쿠야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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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일상에서 꾸는 꿈처럼 아득하지만 그 장면마다 선명한 화질이 되어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일부러 기억해내려 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많은 영향을 주는 일들. 누구에게 단 몇 마디의 말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경험한 신비로운 이야기가 눈의 야화라는 책을 통해 펼쳐집니다. 야화라고 하는 것은 문학에서는 설화 형식을 표현하는 말이고 사전적인 의미로는 밤에 모여 앉아 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열일곱살의 평범한 고등학생인 가즈키의 이야기 궁금하지요?


고등학생인 가즈키는 눈 내리는 한밤중의 어느 날 공원에서 열다섯 살의 유키코를 만납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나에게만 보이는 소녀.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어린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그녀는 존재에 대한 어떤 규정도 내리지 않은 채로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죽음의 끝도 아닌 또 다른 의미로 탄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편,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소외됨으로 외로움을 줄곧 느껴왔던 그녀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가즈키를 반기며 속마음을 터놓을 존재 그 자체에 크게 기뻐합니다.


『줄곧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굉장히 무섭고 또 쓸쓸해지거든. 하지만 어린 아이들 밖에 내 상대가 되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단념하고 있었어. 누군가에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 마음이 놓여. 정말이야』- p31


그 소녀와의 만남을 뒤로 한 후 가즈키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학교를 졸업 한 후 디자이너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영업부장 미즈하라씨의 신임아래 성실하게 일을 해오지만 그가 회사 창립자의 서자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다른 이들의 견제를 받게 되고 사회 안의 또 다른 조직체 안에서 겪은 인간관계의 유기적인 틈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을 느끼던 그는 회사를 그만 두게 되고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무언가 탈 것을 제때 타지 못해 홀로 남겨진 나, 똑같은 장소에 있는 건 나뿐이다.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고, 모든 곳에서 잘려서 어디와도 통하지 않는 장소에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p127


내가 서 있어야 할 곳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괴리감을 느끼는지요? 갈 곳을 알고 적절한 때 떠나고 찾아올 줄 아는 철새들이 아닌 이상 우리는 오로 의지와 선택의 순간아래서 살아가게 되고 많은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 속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정답이지만 가끔은 과거에 얽매이기도 하고 주변의 홀대와 무관심에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합니다. 가즈키 또한 그런 경우지요.


가즈키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눈 내리는 날이면 공원을 찾아가 소녀와 조우를 합니다.서로 마음을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우리는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지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사라지면서 가족 간의 소통은 더없이 힘들었지만 그 곳에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일들을 통해 자신의 닫힌 마음의 문을 점차 열어가게 됩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 지금의 내가 과거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나의 죽음이 훗날 다른 이로 재탄생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오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국 타인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거야. 누구든지 결국은 어딘가에서 그 밸런스를 맞춰나가지 않으면 안돼. 지금의 너도 아마 발버둥치고 있겠지. 나는 내 방식으로 그 결산을 맞추려 하고 있고 너한테는 너만의 방식이 있을거야.』- p305


알고 보면 내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은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든 그 해결의 실마리도 결국은 내가 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삶의 주체는 타인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나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나로써 존재할 때 가장 빛이 난다는 말이 줄곧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무리이다. 예를 들면 무엇이 자기를 지금 있는 장소로 내몰았는지조차 제대로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서 파악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모양이 그다지 다른 것도 아닌데도 멈출 수가 없다. 그건 마치 주술과 같다. 』- p 325


저자는 민간전승으로 전해져 오는 설녀와 눈 오는 날이면 나타난다는 유킨코라 불리 우는 아이들의 전설을 새롭게 해석하여 생명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줍니다. 조금은 난해하게도 들리지만 삶과 죽음, 그 경계를 지나 불교에서 말하는 “몸은 죽어 없어져도 넋은 남아 다른 이들의 몸을 통해 다시 태어나기를 끊임없이 거듭한다”라는 윤회사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언젠가 내 자신도 기억에서 떨어져 공중으로 흩어져 먼 하늘 저편에서 빛이 된 후 다시 이 세상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번은 확실히 나였던 그 존재는 그랬는지 모른 채로 예전 유키코였던 누군가와 만날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때 우리는 서로 누구였는지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에게 틀림없이 특별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p392


유키코와의 만남을 가즈키는 하나의 환영일까. 꿈일까. 아니면 내 자신의 누군가가 말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진 채 확신하지 못하지만 짧은 시간 그녀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 세계의 관계, 그 소중함을 새롭게 그려 나갑니다. 우리는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로 저마다의 이름을 부여 받아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 과거와 현재 미래는 서로 순환되어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존재 이유와 인간의 삶 그 면면을 생각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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