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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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라는 작품을 통해 알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 두터운 독자층을 팬으로 확보하고 있는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가 만들어내는 어둡고 방황하는 인물들이 나의 괴리와 그다지 멀지 않다는 데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한편으론 인물들의 내면에 드리운 아픈 상처와 일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로 선택한 그의 작품『어둠의 저편』은 너무나도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자매에게 일어나는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를 시간대별로 보여주며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심야의 어느 날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마리는 언니의 고등학교 동창인 다카하시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러브호텔에 매춘부로 온 같은 또래의 중국인 소녀를 만나게 된다. 저항할 틈도 없이 손님에게 구타당한 소녀는 불법체류자의 입장인터라 경찰이나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희생당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제 또래의 소녀에게 다가가 통역을 해주며 도움을 주는 마리, 그 일로 인해 러브호텔에서 일하는 주변인들의 실상을 보게 된다.


보호받아 마땅한 어린 소녀를 짓밟고 깊은 상처를 준 무리들과 윤락업체들. 더군다나 평범한 프로그래머인 한 남자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부렸다는 것이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을 상기시킨다.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의 이중적인 인격과 실태에 놀라울 뿐이다. 낮과 상반되는 밤이라는 시간적인 설정 자체가 주는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마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의 의미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온 세계와의 창을 닫아버린 채 두 달여 동안 수면상태에 빠져있는 에리, 자신과 달리 예쁜외모에 인기까지 많았던 언니와의 이질감으로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마리는 온전히 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상반된 두 소녀가 겪게 되는 하룻밤의 이야기는 온전치 못한 인간 세상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긴 밤의 세계에서 줄곧 감추어져 있었던 인간들의 행태만상들은 버젓히 우리가 잠든 시간에도 낮과 연속선상에서 계속되어 온 것이 아니던가.


낮과 밤은 음의 세계와 양의 세계로 표현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방식을 취하는지 눈을 통해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낮과 반대로 밤의 세계는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히 그렇지만 더 치밀하게 아프게 우리의 삶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음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인 걸까? 아프고 안타깝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구성 속에 주인공 마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세계와 마주하게 되고 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 어둡고 음산한 기운이 스며드는 밤이 찾아올지라도 훗날 모두가 행복의 꿈을 꿀 수 있는 영화로운 밤을 맞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작품세계가 주는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독자인 나의 몫일 테지만 솔직히 절대적으로 가볍지 않았던 작품이다. 약간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하루키의 작품. 그렇지만 이 또한 그의 표현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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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1 - 그대가 하늘이오
허수정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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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였으며 무엇보다 그 시대 정황을 미루어 기술한 작가의 상상력이 눈에 띄는 역사 소설이다. 역사 소설하면 가장 먼저 어렵다?! 그 시대의 배경 지식이 많아야만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설, 그 자체가 주는 흥미와 더불어 그 시대 사회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해월 최시형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는 지금 이 시점 우리에게 필요한 의미들을 재생시키며 살아있는 인물들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제지소에서 일하는 청년 경상은 어느 날 밀린 종이 값을 받고자 흥해 서원을 찾아간다. 어디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 젊은 청년 경상의 기백에 서원 주인인 김하원은 물론 이 상황을 지켜보던 양반 이하응을 깜짝 놀라게 한다. 마땅히 지불해야 할 값을 지불하지 않는 양반의 처세에 이하응(흥선대원군)은 경상의 편에 서서 쓴 소리를 내뱉는다. 이유 없이 문전박대 당하던 경상을 바라보는 이하응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 이는 양반에게 착취당하는 평민의 신분임에도 옳은 기백과 똑 떨어지는 경상의 행동은 범상치 않은 훗날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게 한다.


『황망한 말씀이라 드리기가 계면쩍지만 저는 한울님께서 우리 두 사람의 연을 이렇게 맺어준 게 아닌가 싶어 그저 하늘을 향해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 최제선의 말 中』


제지소에서 일하던 경상은 열여덟의 나이에 손봉구의 조카 분순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고 어느 날 길가에 쓰러져있는 선비를 집에 모셔와 간호를 하게 되는데 그 선비가 훗날 경상에게 동학을 전수해주는 스승 최제우인 것이다. 김하원과의 악연으로 경상은 동료들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게 되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에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경상에게 아내 분순은 흥해 아제 손봉조를 찾아가보라고 권하게 되고 동학을 천주학과 별다를 게 없다고 여기던 그는 동학에 입도한지 2년 만에 북접대조주의 길에 이르게 된다.


『우리 동학이 추구하는 게 무엇인가? 그건 행복일세. 지상신선이란 게 무엇이던가? 이 세상의 억조창생 모두가 시천주하여 행복을 누리겠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든지 동학에 입도하여 시천주, 곧 한울님을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일 자세만 된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고 득도인 게지. 이 점이 십 년 공부를 요하는 유학과는 구별될뿐더러 야소의 종을 자처하는 천주학과도 다른 점이라네.- 1권 p181』


스승 최제우의 가르침아래 일정한 거처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학의 뜻을 전수하던 해월 최시형의 뜻과 같이 점차 그 조직은 확대되어가고 당대 사회 전반에 걸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선보이게 된다. 권력과 횡포, 이기와 사심을 뒤로하고 오로지 나와 네 마음이 합일된다는 오심즉여심 [吾心卽汝心]의 가르침을 전수하는 동학은 현재 우리의 시대상황에도 꼭 필요한 바가 아닐까싶다. 신분과 계급 사이의 그 어떤 차별과 인간의 존엄성에 해를 끼치는 그 어떠한 부정적인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은 과거나 현세에서나 인간 삶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으로 우리 자신 모두가 마땅히 귀감삼아야 할 명분이다.


온갖 세상사의 모든 허물과 부패는 오로지 인간 스스로의 내면을 깨우친 후에야 청렴결백해질 수 있으며 그 후에야 우리는 새 시대, 새로운 희망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동학  교도들의 삶과 해월 최시형, 그 주변인들의 고된 삶을 통해 우리는 눈앞에 놓인 현실의 모순점을 즉시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인지를 스스로에게 물게 될 것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내 머리와 마음이 하나 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중요성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그 날, 세상을 보다 평화롭고 살갑게 바라볼 수 있을까? 꼭 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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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랭크 밀러 글.그림, 린 발리 채색,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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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책상 밑에 넣어두고 쉬는 시간마다 읽는 만화책, 그 즐거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만화책을 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소녀의 감수성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던 순정만화들.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여리고 가냘픈 여주인공들을 통해 얼마나 대리만족을 느꼈던가. 순정만화의 스타일과는 대비되는 『프랭크 밀러의 300』은 강렬하고 거칠고 강한 이미지와 블랙과 레드계열의 표지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책의 주요 스토리는 고대 페르시아 전쟁을 주축으로 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 창조되어 발을 내딛기 전에도 과연 전쟁이 가능했을까. 나와 반대의 입장에 선 이들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간주하고 일방적인 공격을 일삼는 전쟁, 그것은 생의 끊이지 않는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주요 배경은 고대 그리스이며 스파르타 군과 페르시아 군의 충돌, 바로‘테르모필라이 전투’를 그리고 있다.


스파르타 군과 페르시아 군, 이들 전투에 동원된 병력만을 객관적으로 비교하자면 한쪽에게는 너무나 열세한 상황이 아닌가 싶지만 소수정예 인원을 이끌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스파르타 군은 지칠 줄 모르는 기상과 용기로 싸워나간다. 전쟁은 한쪽에게는 승리의 기쁨을 선사하지만 다른 한쪽에게는 피할 수 없는 희생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찾아온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열악한 조건을 넘어 정정 당당히 맞선 이들. 한편으로는 정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그들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하고 맹렬한 스파르타 군들의 면모는 높이 칭송할 만하다.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전투 상황은 일단락되고 테르모필라이 입구에 있는“뜨거운 문”을 사수하려했던 스파르타 군들의 희생과 노력에 이후 세대에까지 전설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선택, 비록 전쟁이라는 모티브를 삼고 있지만 양과 극을 이루는 이들에게도 존경과 신뢰를 주는 지도자가 있었다. 스파르타 군들에게는 용기와 대범함의 표상인 레오니다스 왕이 있었고 페르시아 군들에게는 당당하고 어디서도 굽힐 줄 모르는 크세르크세스 왕이 있었다. 한 무리를 이끌고 지도한다는 공통점 아래에 그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랭크 밀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이전에 선보인 작품들을 통해서 많은 이들은 색다른 기대를 품게 될 것이다. 단순한 만화의 구성을 뛰어넘는 스토리와 일러스트를 토대로 특히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줄 수 있을 것이다. 생동감 있는 극의 전개와 화려한 볼거리를 원한다면 영화를 통해 그 감동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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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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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치 앨봄이 그려나가는 이야기는 참 따뜻하다. 어떤 일에서든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던지고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잔잔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곤 하니까. 그래서일까. 그의 책을 읽을 때면 주인공의 삶에 쉽게 동화되곤 한다. 그리고 현실의 나와 그들의 삶을 견주게 된다. 이생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우리는 각자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고 양방향을 유지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치 앞도 모르는 삶이기에 더더욱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신중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 에디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팔십 평생을 놀이공원의 정비공으로 살아온 에디는 어느 날 문제가 있는 놀이기구에서 승객들을 구해내는 가운데 한 여자아이를 구하려다가 그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죽게 된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매일의 삶은 그 어떤 확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있는 것일까.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나는 물론 인간의 죽음이 그 자체가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비록 현생에서의 삶은 끝났을지라도 이전의 삶을 되돌아보고 뉘우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평온한 안식처가 있지 않을까.


죽음 이후, 에디는 현생과는 또 다른 천국이라는 공간에 안착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과 현생에서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었던 이를 만나기도 하고 그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와의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런 만남 뒤에는 어린 시절 그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가 자리하고 있다. 강하고 거친 아버지의 겉모습 뒤에는 그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전쟁참전으로 인한 부상과 아버지에 대한 아픈 상처,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온 삶에 대해 그는 이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나를 중심으로 맺어진 인연, 그들의 가치를 되새겨보게 한다. 나의 죽음은 어쩌면 타인의 새로운 생의 시작일 수 있다는 사실, 생은 끝나지 않는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상처와 눈물과 통회로 얼룩진 삶일지라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생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고 나와 타인의 관계를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100%만족하는 삶이란 과연 가능할까.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도 분명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로이 정립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매일의 삶이 지루하다고 불평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단 한 시간뿐이라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 이로써 독자들은 각자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평소 좋아하는 문구 중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감사하지 않은 일이 없다.

   생존하고 있는 자체가 감사할 일이요,

   사람들의 혜택을 받고 사는 것도 감사한 일이요,

   내가 남을 위하여 마음을 쓰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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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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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책을 읽으며 이토록 마음이 저리고 아팠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한 채 살아가는 것이 이 어린 소년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삶이었기에 목숨을 내걸고 그 위험천만한 죽음의 여정 길을 떠나야만 했을까. 온두라스의 소년 엔리케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엄마를 한없이 그리워하다가 더 이상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엄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할 시기에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매일을 살아가는 엔리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 험준한 산과 같았으리라.


가난으로 인한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라우데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누가 자식과의 이별을 쉽게 생각할 수 있으랴. 오직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발 벗고 나가야 한다는 것. 미국으로 가면 어떤 일이든 지금보다는 보다 나은 보수를 보장받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얼마간 고생하면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도 보낼 수 있고 좀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것이 엄마 라우데스가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 곧 돌아갈게.”하지만 현실은 쉬운 지름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아이들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어두운 그림자만 찾아올 뿐, 그녀에게 미국의 삶은 호락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엄마와의 만남을 기대했던 엔리케는 점차 실망과 분노를 갖게 되고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12년 만에 스스로 엄마를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로지 엄마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온갖 무리와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되는 엔리케. 엔리케가 걸어가는 그 길에는 사람의 탈을 쓴 극악무도한 짐승들이 산재해있는 것이다. 이주민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며 협박을 일삼는 부패한 경찰들, 육체적 폭행과 잔인한 범죄어린 소녀들을 강간하고 노리개로 일삼는 갱들과 무장 강도들까지. 이 어린 소년 혼자 그 길을 가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었으리라. 죽음의 기차를 타고 베고픔과 추위를 이겨내며 말 그대로‘엄마 찾아 삼만리’사선을 넘나드는 삶의 질주를 하는 엔리케.


이것은 비단 엔리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매년 미국에 있는 엄마들을 찾아 나서는 4만 8천 명의 아이들이 실제로 겪는 일부분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기에 한치의 마음 저림 없이 이 책을 읽어나가기엔 한 소년의 여정길이 너무나 구구절절 안타까웠다. 한 사람의 인격을 무자비하게 발로 뭉개버리는 그 혐오스러운 이들 가운데서도 허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열차위로 물과 빵을 던져주던 사람들, 폭력과 폭행으로 생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병원까지 안내해준 이들. 자신들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보살핌을 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모든 일이 훗날 엔리케에게는 먼 훗날 길이 기억에 남을 일이요, 감사할 일인 것이다.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유 없이 짓밝히고 인격 자체를 모독당하며 폭행과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사례들이 참 많다. 그 죄가 아무리 중한 것이라 한들, 누가 감히 타인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엔리케 한 소년의 삶을 바라봐도 이토록 가슴이 아픈데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저 먼 미지의 세계에 있는 이들은 누가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을까. 한 인간의 끝없는 소망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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