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부부

세상의 끝에 머물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어째서 사람은 아름답고 숭고한 것, 손이 닿지 않는 것을 추구할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외부의 자극을 감각신경을 통해 받아들이는 기관은 갖추어져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왜일까?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고 숭고한 것을 감수하거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바라는 능력은, 이 세상에서의 찰나적인 만남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저 세상’에서 생겨난 은총 같은 것은 아닐까? - p272』

사랑하는 사람과 한평생 부부의 연으로 만나 결혼하고 그(녀)를 쏙 빼닮은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은 특히 여성에게 부여된 가장 축복이자 행복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오직 아이를 갖고자 하는 희망 하나로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부부들이 많다. TV를 통해 불임부부들의 끝없는 시도와 노력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직 엄마가 되고 싶은 그녀들의 바람은 한 생명을 잉태하고자 하는 그 연계선상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죽음을 인식했을 때부터 사람이 자아와 함께 사는 것은 숙명적으로 고독을 동반한다. 철학자들의 말처럼 죽음의 공포가 인간의 정신현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이는 고독한 인간의 근원적인 성립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정신이 개입함에 따라 종(種)으로써의 사람이 배우자를 구하고 자손을 남기는 일은 고독과 같은 부가가치를 동반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사랑과 고독은 사람이 사람이라는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 p177』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정처 없이 벽 너머로 매일 밤 들려오는 서러운 여자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šœ이치. 그에게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마치 과거 자신이 받았던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발산하며 치유하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 부부의 만남은 처음부터 근원을 알 수 없는 고독과 함께 시작되고 그 이면에 대한 해석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드넓은 세상에서 오직 둘만이 서로에게 의지처이자 희망이었던 이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 이외에는 여느 부부와 크게 다른 점은 없어 보인다. 큰 기복 없이 무난한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조금씩 불안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여동생 이즈미의 부탁으로 대리모의 역할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다. 과거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죄의식에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šœ이치는 말없이 사에코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거침없이 큰 동요도 이해도 보이지 않은 채 그녀 곁을 지키는 한 남자 šœ이치와 뱃속에서 커가는 아이에 대한 모성애가 점차 집착으로 변질되어 정신적인 망상까지 나타내는 사에코의 모습은 가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아이에 대한 욕구가 이들의 삶에 얼마나 크게 자리했는지를 보여준다. 동생부부의 대리모 역할을 받아들인 그 자체부터가 잘못되었을까. 단조롭지만 평화로웠던 소소한 일상이 한순간의 선택으로 조금씩 뒤틀리고 서로의 마음에 갈등의 요소만 던진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서로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묵묵히 이해하고 이해되기만을 바랐던 부부. 진정한 부부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독자들 스스로에게 묻는다.

『부부란 무엇일까? 부부에게 자식이란 무엇일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는다. 부모의 분신인 아이는 그들의 융합의 형태이자 단독으로 존재하는 실체로써 세상에 태어난다. 부부는 아이에게 쏟는 아낌없는 애정을 서로 나눔으로써 보다 견고한 관계를 구축한다. 운명이나 숙명이라는 말에도 사람의 행복과 불행으로 직결할 정도의 의미는 없다. 어떤 원인과 결과인지 정해진 경우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있을 곳에서 어떻게든지 헤쳐 나간다. 그런 반복 속에 조그만 행복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p260』

이야기의 흐름이 생각보다 단조롭고 결말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외롭고 슬프고 한편으로는 그의 과거와 아픔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부의 이름아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서로의 시선이 한 곳을 함께 바라볼 때 가능한 것이리라. 너와 내가 만나‘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에 마침표를 찍으며...

외로움의 표상

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권현숙 지음 / 세계사 / 2007년 4월

외롭다는 감정은 혼자 있거나 가까이에 의지할 데가 없어서 매우 쓸쓸하다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늘 마음 속 어딘가가 허전하고 이유 없이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나도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없는 감정.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의 한계는 어디에 있을까. 이 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날에는 더욱 심한 감저의 소용돌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이루고 소통하고 그런 과정 안에서도 무한한 행복을 느끼다가도 뒤돌아 걸어가는 길이면 늘 외롭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인지도..

이 책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국내 작가의 소설로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내세우며 진행되지만 그 이면에 깔린 분위기는 어둡다. 조용하고 섬세하게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내 의식의 흐름과 거리가 좀 있어서였을까. 쉽게 읽힐 줄 알았던 문구들이 조금은 무겁고 담대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선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현실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며 언젠가는 내가 겪어야 할 일부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일까.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매일 부딪치는 점쟁이가 공짜 사주를 봐주고 싶을 만큼 얼굴이 어두웠나보다. 그랬구나. 백 번 죽고 백한 번째 환생해야 비로소 풀려난다는 천고, 마음의 지옥. 그래서 늘 눈물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 있는 것 같았구나. 가슴에 텅 빈 항아리가 들어앉은 것 같았구나. 인생이고 연애고 너무 진지한 데 문제가 있었다. 사람을 알려면 총을 주어볼 일이다. - p120 』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의 감정은 연인관계를 떠나서도 존재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선후배간의 관계에서 내 자아를 정립하지 못한 지금 이 순간에도 불쑥 고개를 들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 만큼 애매모호하고 불연속적인 성격을 띄는 감정, 외로움이란 그런 것이다. 절대적인 인간의 표상이요. 삶의 순간마다 고요히 잠들어 있다가 나의 엔돌핀이 수그러들 때 찾아오는 일깨움이 아닐까.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외로움은 그들의 내면에 영원히 상주하게 될 것이다.

『그대로 떠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신변 문제도 그렇지만, 당신이 살아 돌아간 뒤가 더 염려가 되는 거지요. 죽음은, 냉혹해요. 깨끗하지요.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 숨을 쉬는 내내, 계속해서 당신을 물고 놓지 않을 테니까..p137』

외로움이라는 코드 하나로 결코 가볍지 않은 색채를 가진 여섯 편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하나의 스토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를 이루는 게 아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들이 단편 소설의 맛이 아닐까 한다. 작가가 말하는 바가 무엇이었을지 이에 대한 무한한 상상과 해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시선이 아직은 많이 부족할지라도.

안타까운 이들의 사랑, 그 끝은..

폭풍의 언덕 ㅣ 대교북스캔 클래식 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명신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월

이전에 읽었던‘명작으로 길을 걷다’라는 책을 통해서 오랜 시간 많은 가슴에 남아있는 고전이야기를 간결하게나마 접하였고 이는 내게 새로운 관심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특히 고전을 통해 그 시대의 삶의 배경과 인물들의 갖가지 면모를 엿볼 수 있기에 현실의 우리들과 반추해보며 읽으면 더 큰 재미와 감동이 있지 않을까한다. 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 스토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격변적인 사랑에 대한 갈등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현실의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들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 요크셔 지방을 배경으로 고아인 히스클리프가 언쇼씨 가문에 들어오게 되면서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시작된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캐서린의 오빠인 힌들러의 방해와 주변의 힘든 여건으로 이들의 사랑은 갈피를 알 수 없는 길로 빠져든다. 집안의 몰락으로 어쩔 수 없이 지주아들과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 캐서린. 그녀는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모른 채 해야만  했을까.

현실에서의 사랑은 이처럼 헤아릴 수밖에 없는 난제들이 즐비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여자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발판삼아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마음에서만은 지울 수 없었던 캐서린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없다. 히스클리프의 마음이 얼마나 처참하였을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를 버리고 지주의 아들과 결혼한 캐서린의 마음도 같은 여자로써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다만 이들의 선택한 사랑의 선택이 훗날의 아픈 결말을 예고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이들의 사랑은 비록 슬픈 결말은 독자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되새김 될 것이다. 서로에 가슴에 비수를 꽂긴 했지만 마음만은 진실이었던 이들의 사랑은 현실에서 가장 불후한 사랑으로 해석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 생애 태어나 한 사람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축복이고 행복이 아닐까도 싶다.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도 현실의 덫에 걸려 비틀거리고 아파하는 사랑도 그 시작은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인간에게 허용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사랑이라고. 누군가를 위해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는 이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와 배신으로 복수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이는 상대의 존재감이 자신도 모르는 새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사랑은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이들의 사랑은 풋풋한 사과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아련한 기억과 추억으로 남아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석처럼 빛나고 찬란한 삶의 등불이기도 한 사랑이라는 명제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이 두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삶에의 통찰

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수상작이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어떤 이유로 인정을 받았을까 싶은 묘한 호기심이랄까. 카지노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으니, 이런 소재 자체마저도 참 새롭다. 한번 빠지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도박, 그로 인해 폐가망신한 사람도 참 많다고 뉴스를 통해 많이 접해서인지 부정적인 인식이 앞서게 된다.

어느 날 헤어진 여자 친구 수진의 전화를 받게 된 주인공은 황당한 제안을 받게 된다. 자신은 전 남편과 헤어졌고 위자료로 받은 10억을 가지고 카지노로 가자는 것이다. 정말 엉뚱한 제안이 아니던가. 이런 제안에 우리의 주인공의 대답은 오케이다! 이렇게 단순한가 싶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은 함께 떠난다. 조금은 낯설기도 할 만한 그 곳에서 낯선 이들과 도박을 하며 그들은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낸다. 요즘 같은 시대에 10억이라는 돈의 효용가치는 얼마나 큰가. 이 악물고 아껴 쓰며 모아도 만져보기도 쉽지 않은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겠다니! 처음 이들이 카지노에 입성하며 마음속으로 가진 의도가 뭐였을지 자뭇 궁금하다.

일상을 뒤로하고 무작정 떠나 도착한 카지노, 그 곳에서 그들이 만나게 되고 두 눈으로 보게 되는 이들은 사회의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만큼 피폐해있고 타락해있는 모습뿐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려 돈을 쓰기 위한 게임에 참가하고 매일을 보내지만 이들의 마음은 이전보다 편치 않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불편하기만 하고 답답하다. 특별한 목적 없이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카지노라는 공간에 있는 이들은 몇 천만분의 일의 확률을 위해 내 자신마저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대가를 안고서 매일의 도전을 하고 있다.

삶에의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채 도박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도 한 때는 한 가정의 멋진 가장이요,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와 명분을 가지며 살았던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불확실한 사회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되는 갖가지 단면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어떤 명확한 답이 주어지지 않는 우리들의 메마른 일상에서 이 책의 주인공 또한 마치 초침 잃은 시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박과 여자 그리고 인생이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싶어 초반 읽는 내내 약간의 지루함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도박은 우리가 한순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미끼와 같다. 우리 자신은 변함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인생이라는 축에서 단 한순간도 쉴 새 없이 긴장과 염려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끊임없이 내 자신의 내면과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뭔가 자극적인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허공을 향해 팔을 내딛으면 뭐라도 손에 잡히지 않을까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이런 심리게임에 쉽게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나에게는 약간의 모호함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도박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내세워 우리 인간의 표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해보려 한다. 

우정과 사랑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에게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마음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추억의 시간들을 꺼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내 회로는 고장이 났나보다. 나의 이런 안타까움을 이 책의 두 주인공인 헨리와 베리를 통해 채우려 한다. 이들이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함께 하는 과정, 그 안에서 이뤄가는 우정과 사랑을 바라보며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그 때를 떠올려 본다.

가장 민감하고 감정에의 변화가 큰 열여섯의 나이의 헨리는 어느 날 보트를 타러 나갔다가 바다에 빠지게 된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베리라는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이들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둘도 없이 가까워진 이들은 서로에게 점차 친구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베리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 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만큼, 가장 슬프고 허망한 일이 있을까.

누군가로 인해 온전한 행복함과 즐거움 그리고 삶에의 희망을 느꼈던 헨리는 자신에게 큰 의지처가 되었던 존재감을 잃게 되면서 심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생전 베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헨리는 매일 밤 무덤가에서 춤을 추지만 이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가장 힘들었던 방황의 시기를 함께 보내며 많은 것을 나눴던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큰 상실감만을 남긴 것이다. 그와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헨리.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의 마음에는 함께 교류했던 감성이 잠금 장치화 되어있는 듯하다.

헨리의 내면의 깊은 통찰과 시각을 주로 따라가면서 아프지만 행복했던 이와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자리해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영혼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함께 나누었던 헨리와 베리, 우정을 넘어 사랑이라 칭할 수 있었던 이들만의 내밀한 소통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이전에 읽었던 소설의 형식과는 차이를 보이며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슬프지 않다. 비록 현실에서는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단절된 만남이지만 기억 안에서는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항로를 따라 거닐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과 만나게 되고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가. 이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큰 변화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당신에게도 존재한다면 그간 걸어온 삶의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나에게도 그런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훗날 추억할 수 있는 사람,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는 사람, 바로 이런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죽은 친구의 무덤에서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힘든 설정일 수도 있는데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친구의 자리를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 하는 헨리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아 아련하기만 하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감정적 변화가 큰 청소년들에게 우정과 사랑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느끼게 해줄 작품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분위기 자체가 색다르게 느껴졌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