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사랑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에게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마음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추억의 시간들을 꺼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내 회로는 고장이 났나보다. 나의 이런 안타까움을 이 책의 두 주인공인 헨리와 베리를 통해 채우려 한다. 이들이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함께 하는 과정, 그 안에서 이뤄가는 우정과 사랑을 바라보며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그 때를 떠올려 본다.

가장 민감하고 감정에의 변화가 큰 열여섯의 나이의 헨리는 어느 날 보트를 타러 나갔다가 바다에 빠지게 된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베리라는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이들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둘도 없이 가까워진 이들은 서로에게 점차 친구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베리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 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만큼, 가장 슬프고 허망한 일이 있을까.

누군가로 인해 온전한 행복함과 즐거움 그리고 삶에의 희망을 느꼈던 헨리는 자신에게 큰 의지처가 되었던 존재감을 잃게 되면서 심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생전 베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헨리는 매일 밤 무덤가에서 춤을 추지만 이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가장 힘들었던 방황의 시기를 함께 보내며 많은 것을 나눴던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큰 상실감만을 남긴 것이다. 그와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헨리.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의 마음에는 함께 교류했던 감성이 잠금 장치화 되어있는 듯하다.

헨리의 내면의 깊은 통찰과 시각을 주로 따라가면서 아프지만 행복했던 이와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자리해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영혼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함께 나누었던 헨리와 베리, 우정을 넘어 사랑이라 칭할 수 있었던 이들만의 내밀한 소통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이전에 읽었던 소설의 형식과는 차이를 보이며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슬프지 않다. 비록 현실에서는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단절된 만남이지만 기억 안에서는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항로를 따라 거닐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과 만나게 되고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가. 이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큰 변화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당신에게도 존재한다면 그간 걸어온 삶의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나에게도 그런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훗날 추억할 수 있는 사람,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는 사람, 바로 이런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죽은 친구의 무덤에서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힘든 설정일 수도 있는데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친구의 자리를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 하는 헨리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아 아련하기만 하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감정적 변화가 큰 청소년들에게 우정과 사랑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느끼게 해줄 작품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분위기 자체가 색다르게 느껴졌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