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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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뿐, 끝임 없이 던지는 질문.
마흔의 문턱에서 질문은 더 자주 일상 속에 등장한다.

 

여성만화 전문이라는 마스다 미리의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를 집어든 이유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는 여성 삶에 관한 이야기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 만족하기보다는 가지 못한 길을 서로 부러워하고 때론 자신이 가진 것을 은근 자랑해 서로를 생채기 내는 두 여성을 7살 소녀 리나의 눈으로 그렸다.

 

두 여성은 다름 아닌 싱글녀 리나의 고모와 전업주부로 사는 리나의 엄마다.

 

담백하다 못해 빈약해 보이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공감이 일어나는 건 순전히 사실적인 내용 때문이다.

불안감, 끝없이 나를 좀먹는 질문.

 

“이대로 나이만 먹고,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 끝나는 것일까.”

 

몰입을 이끄는 건 매 장마다 등장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질문을 던져 본질을 보게 하는 리나의 역할 또한 무척 중요하다.

 

"고모는 크리스마스때 받고 싶은 선물이 모야?"

"서른 다섯이 지나면 별로 원하는 게 없단다....."

 

‘자유’는 있지만, ‘보장’이 안 되고 애인은 원하지만 아무나 원하는 건 아니고, 해서 ‘돈’을 벌며 아무 때나 쉴 수 있는 하루의 월차를 낼 수 있는 게 자고고 인생이라 생각하는 아직은 독신인 다에코. 끊임없이 배우러 다닌다.

 

"엄마, 마흔 살인 게 싫어?"

"왜 젊은 게 유리해?"

 

가족, 집, 돈은 있지만, ‘존재감’은 없고 가슴 뛰는 데이트도 할 수가 없고 아이와 남편 때문에 어떤 범위 내에서만 활동 할 수 있는 주말 없는 전업주부 미나코. 언젠가부터 태양을 보면 놀러갈 생각보다 이불 말리기 좋은 전자제품쯤으로 생각한다.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었어?"

 

두 여성의 공통점은 있다. 지금. 정확히 원하는 게 없다는 것. 

원하거나 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고, 정말 그것이 되길 바라는 것과는 또 다른 마음이지만.

 

리나처럼 어렸을 적에는 그토록 궁금했던 질문과 세상, 그토록 되고팠던 어떤 꿈들이

이 더 이상 궁금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삶이 되어버린 것은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가진 것을 누리기 보다 불평불만만 늘어가는 내가 서글퍼 지는 날엔 그런 날엔 불평을 멈추고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린 시절 내가 꿈꿨던 것들은 무엇인지. 그래서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라고.

 

자유와 물질적 안정과 풍요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

부족한 걸 부러워하기보다, 가진 걸 누리는 쪽이 현명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 전에. 리나가 들려주는 의미심장한 말을 살피자.

 

"엄마는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라고 말하지만, 그럼 엄마는 지금 뭐지?"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가 모두 나무가 되는 게 아니라 새에게 먹히거나 밟혀서 으깨지고 새싹이나올 수 없는 곳에 굴러다니기도 해. 나무가 된다는 건 도토리에게 아주 힘든 일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그치만, 엄마는 이미 '있다' . 그것은 무척 대단한 일인 거야. 갈 곳을 찾지 못한 이 도토리에게는 말이야"

 

어린시절의 내가, 갈 곳 찾지 못했던 도토리가 이미 무언가가 되어있는 훌쩍 커버린 나를 보면 무슨 말을 건넬까.

분명, "정말 대단한 일이야"라고 환호할 듯 하다.

 

책 제목만으로도 불평불만을 끊기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

그칠 줄 모르는 리나의 질문에 나름을 답을 해보면서 정말 당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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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의 필살 아이디어
이제석 지음 / 학고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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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에이티브 디렉트 박웅현, 책<인문학으로 광고하다>와 <책은 도끼다>의 저자로 알려진 유명광고인. 그와는 좀 다른 광고인을 만났다.

 

대구촌놈, 인문학 지식 따위는 논하지 않는다. 글도 채팅에서나 볼법한 속어로 거침없이 던진다.

 

처음엔 제 잘난 맛에 쓴 자서전인가 싶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달랐다.

오기를 넘어 독기 품은 성공기와 아이디어로 승부한 광고, 성공 후의 행보가 이목을 끈다.

 

더불어 홍보를 하면서, 홍보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하며, 돈 들이는 광고를 하면서 이 돈으로 공익활동을 하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회의에 빠지곤 했는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루저, 판을 엎고 룰을 바꿔라
지방대 디자인과 출신, 과 수석 졸업자. 그러나 취업도 공모도 된 적 없다. 동네간판집을 차렸다. 그런데 동네 찌라시 아저씨가 자존심을 건드렸다. 30만원짜리 10만원짜리랑 뭔 차이냐고. 오기가 났다. 스펙 한번 만들어보자. 진짜 실력으로 한번 부딪혀 보자. 미군부대서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하고 미국편도행 비행기표와 5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떠난다. School of Visual Arts에 들어갔다.
1년 동안 국제 광고 공모전 29개의 메달을 땄다. 한국에서 상 한번 못 받던 루저가 미국광고계 상 휩쓴 위너가 됐다.
1947년 SVA(School of Visual Arts) 개교이례 처음, 전례 없던 일이었다.

 

 

단돈 몇달러로 만든 엘리베이터에 시트지 붙여만든 '우유에 찍어먹는 오레오' 광고다.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한국, 그제서야 러브콜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돌아간 곳은 기업이 아니었다. 자신의 광고 연구소를 만들어 사회문제 개선하겠다고 나선다. 4대 악질을 개혁하겠단다. 집값, 찻값, 대학등록금, 결혼비용.


다르게 보라 거꾸로 보라 아이디어로 승부하라
캠퍼스보다 교수를 봤다. 실력 있는 현직 광고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교수에게 포샵질에 목숨 거는 동양, 특히 한국 학생들이라고 엄청 깨졌단다. 빈약한 아이디어여서 포장을 한다고. 광고계에서도 한국계 고퀄이 있구나 싶었다. 7일이 광고제작 기간이면 6일을 아이디어 내는데 썼다. 악마같은 스승에게 칭찬받기 위해 갖은 수모를 감내했다.


그에겐 궁극의 말발은 없었다. 광고계 기본인 아이디어에 목숨을 걸었고 광고쟁이가 사는 길인 대표작을 내려고 공모전에 힘썼다. 수상식에서는 구직광고를 하는 등 생쑈를 다했다. 특이하거나 새로운 이미지를 쓰지 않았다. 그저 정직하고 단순한 게 안 질리고 모든 연령증, 어느 시대에도 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투털대는 영혼, 불만이 크리에이티비티를 낳는다
이제석은 ‘좀’이 아니라, ‘많이’ 투덜된다. 부조리에 대한 그의 불평불만이 그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뉴욕 지하철 계단에 에베레스트 산을 그려놓고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라는 광고를 만든다.

 

이제석은 말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고. 자신만의 취향에 묻혀선 곤란한다는 말이다. 이 생각은 애완동물 다이어트 사료의 광고 결과물을 낳는다. 반려동물을 비만으로 혐오스럽게 그려선 안된다는 걸 기본으로 잡았다.


그의 광고는 숏패스 링크를 구사한다. 아이디어의 링크를 짧게짧게 가져 의미를 명확히 전달한다. 뚱뚱한 고양이->자루->바다표범 이런 식이다.  

 

홍인인간 광고인의 레지스탕스 운동

그는 돈 안되는 전쟁, 기아, 환경. 반전포스터를 제작하고 포퍼먼스도 했다. 돈이 모든 걸 지배하는, 돈만 보고 달려가는 광고판을 바꾸기 위해 레지스탕스 운동이 필요한다는 그의 스승 안셀모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돈지랄 덩어리 물량공세 광고를 비판한다. 그러면, 소비자가 봉이 되는 광고라고. 그게 소외와 차별을 만드는 광고라고.

 

해서 그는 착한 광고를 만든다. 아이디어로 승부하고 힘없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공익광고를 만든다. 

 

광고도 사전제작해 팔러 다닌다. 그가 특별한 이유다.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물론 이쁜 신발, 좀 더 넓은 아파트, 신상품 드레스 사 입게 하는 것도 행복한 광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집 없는 사람이 집을 얻고 얼어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게 훨씬 더 행복한 광고 아닐까. 잘 나가는 사람 더 잘나가게 하는 거보다 죽어가는 사람 살리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기사회생하게 하는 광고가 더 의미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내가 뻥쟁이가 되어가는 게 힘들었다. 집 없는 사람 쌔고 쌨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귀족 옷차람으로 톱스타를 치장시켜 궁전같은 아파트를 구입하라고? 자원 고갈이 코 앞인데 최첨단 대형차를 타라고? 얼굴과 몸매만 가꾸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자들 콧구멍에 바람이나 넣으라고? 청소년에게 돈이 최고라고 세뇌하라고? 돈 없는 사람들 살맛 안 나게 하라고?”

 

책은 "자신을 짓밟아준 분들에게 이 책을 바치며, 그들 때문에 자기 살길 찾았다"고 마친다. 그들이 이 책을 읽을리 만무하지만, 통쾌한 한마디다.

 

“창의력이든 상상력이든 삶의 방식이든 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만들어지는 거다.”

 

투철한 자신의 직업관 가치관 그 무엇보다 능력을 갖춘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차별의 눈으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대한민국을 극복한 청년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이자 일침이다.

루저라고 좌절한 청년, 돈지랄 광고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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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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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그를 처음 만난 건 김혜리 기자의 <진심의 탐닉> 인터뷰를 통해서다. 그땐 그닥 끌리지 않았는데... 아마도 소설가가 패딩을 입고 찍은 사진 때문이란 생각을 해 본다. 소설가라면, 겨울이라면, 따뜻한 스웨터를 입어야 한다는 이 근거없는 고정관념..

 

 

김천역 빵집 아들 김연수, 평생 빵을 먹고 살아선지 도넛과 같이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동그란 구멍의 슬픔을 간직한 소설가.

 

 

소설가 김연수를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에세이집으로 처음 만났다.

 


그에게도 여지없이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간 청춘의 한때가 있었다. 달랐던 건 그를 소설가를 키운 중국, 일본, 한국의 오래된 명문장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어느 해설집을 읽는 것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본다.

 

 

이석원의 에세이를 읽고 “보통의 존재(독자편)”으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생활글을 쓰고 있었다. 잊혀진 기억의 따뜻함을 김연수를 통해 깨달았고 그 착한 깨달음을 통해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이석원, 이병률과 마찬가지로 김연수 역시 참 많은 사연이 있었고 당시를 회상해 내는 세밀한 기억력이 있었다. 특히, 김연수가 더욱 특별한 것은 그와 함께한 수많은 문장들이다. 문장들은 김연수의 사색과 사연들이 어우러져 쉽게 독자화 되었다. 내가 언제라도 인용할 수 있는 문장들을 넘어, 나 자신의 상태를 글자로 표현해낼 수 없는 한계를 좀더 넓혀줬다고나 할까. 특히, 일본의 시조 하이쿠 등 시조를 깊게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타인의 감정과 사연을 유추해 보려는 사람이었고 그의 노력은 기억의 유품과도 같은 사물의 기억에서 출발하곤 한다.

 

 

애당초 채워지지 않을 그는 곧 사라질 많은 것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그리고 살면서,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의 경험을 문학을 통해 재현하고 그 일을 하면서 완전히 소진되고 더 소진될 수 있기에 글을 쓴다고 한다. 소설가 김연수의 아름다운, 때로는 웃음까지 주는 명문장들을 만나보자.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지새야할 숱한 밤과 피워야 할 많은 연탄불”

“공터에 선 내게 질문은 버린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쓰레기처럼 몰려들었다.”

"시간이란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


 

진중한 그의 삶의 태도는 남자들은 다한다는 군부대 이야기에서 자빠질만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예컨대 그 회로에 '학점을 잘 받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긍정적인 문장이 입력되면 곧바로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응답과 함께 먹통이 된다."

 


"내가 배치받은 부대는 전쟁이 터지면 울진 지역으로 상륙해 지리산을 최종 목적지로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는 북한군 특수부대를 담배 한 대 피울 정도의 시간만큼만 저지시킨 뒤, 예비군들에게 인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방위병 주제에 북한군 특수부대를 막는다는 것도 웃겼던데다가...."

 

그가 소개한 문장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을 기록해 본다.


"주인이 집을 물가에 지은 뜻은 물고기도 나와서 거문고를 들으람이라 " - 정조때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네 분이 쓴 <사가시선>

 

“봄빛 짙어 이슬 많고, 땅 풀려 풀 돋다. 산깊고 해 긴데, 사람 자취 고요하니 향기만 쏜다. - 추사“

 

“아이는 구급자를/못 쫓아왔네” - 하이쿠

 

 

잊혀진 것들의 멈춘 기억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알려주는 소설가 김연수,

그를 만나며 순간의 감정과 지나치는 풍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한번도 관심 가져본적 없는 시조들이 전하는 자연과 삶의 깨달음은 그가 아니면 전해받지 못할 일이다.

 

어떤 사람이 소설가가 되는지 관심있는 사람이나,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 특히 아름다운 문장력을 구사하는 데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추천한다.

 

그의 책을 덮자마자 그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들었다. 나는 지금 김연수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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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 문화만담꾼 김재훈의 캐리커처 문화사
김재훈 글 그림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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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의 라이벌/세기의 아이콘으로 보는 컬쳐트랜드

 

 

VS를 통해 본 문화스펙트럼, 최적화된 문화정보 습득방법
비교는 경쟁사회서 당사자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정보를 얻는 자에게는 사전류와 같아서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많다. 가장 간단한 비교인 ‘라이벌’은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에서의 둘의 특징을 가장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라이벌'이 있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덕까지 갖추게 된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정보습득을 위한 인간사고체계에 최적화된 ‘라이벌과의 비교‘, 이것이 이 책을 작품으로 올려놓는 가치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구성한 걸까.

 

비교로 보는 컬쳐 트랜드, 목차만 읽어도 머릿속 지도 그려져 

1장 문화아이콘, 2장 그래픽디자인&비주얼 아트, 3장 패션&프로덕트 디자인, 4. 대중매체, 5.클래식 음악으로 이뤄져 있다.

방대한 정보와 지식의 단순 명료한 정리와 웃음. 간결함의 극치와 그림의 집약을 통해 문화 아이콘들을 쉬이, 재미있게 만날 수 있었다.


문화의 꽃을 피워낸 20~21세기 문화 영웅 67쌍을 담았으며, 순수예술, 대중문화, 매체, 클래식까지 종횡무진이다.

영웅은 인물, 작품, 브랜드, 심지어 영화 속 캐릭터까지 포함한다.

라이벌의 특징을 살린 목차만 읽어도 둘의 차이와 특징이 쏙쏙 드러난다.

 

디자이너 스티브 Vs. CEO 잡스
학문으로 한글을 디자인하다 한재준 Vs. 글꼴 디자인으로 사업을 벌이다 석금호
투혼을 부르는 삼선 아디다스 Vs. 승리의 한 획 나이키
파격적인 디자인의 잡지 테리 존스의 i-D Vs. 시대의 감성을 선도한 잡지 네빌 브로디의 페이스
선구자들의 발자취 하퍼스 바자 Vs. 지구촌 유행 통신 보그
오래된 명품의 향기 샘터 Vs. 소박한 멋의 발견 뿌리깊은 나무

언어학자가 일군 판타지 장르의 캐논 반지의 제왕 Vs. 우주로 무대를 옮긴 또 다른 전설 스타워즈

과학적 지성이 돋보이는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 Vs. 광기 가득한 SF 세계를 만든 미다스의 손 필립 K. 딕

 

말풍선 속의 촌철살인 글, 빼놓수 없는 이 책의 백미

책을 펴면 VS를 기준으로 좌우로 라이벌이 등장한다. 카피, 라이벌대상, 그리고 그들의 특징이 10줄 이내로 요약된다. 하단의 그림은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문화의 요체를 캐리커쳐와 브랜드이미지 등을 통해 극명히 드러내 보인다.

 

이 책이 더욱 재미있는 건 그 라이벌 인물이나 주변인물들을 등장시켜 풍자한다는 점이다.

 

"엄친아 영웅의 산실 DS코믹스 vs. 사연많은 영웅들의 요람"에서는 DS코믹스 영웅들(슈퍼맨, 원더우먼)의 우람하고 탄력입은 몸매를 강조하고 쫄쫄이 내복, 수영복 스타일이라는 특징을 잡아내고  슈퍼 히어로 복장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평한다.

여기에 반하는 캐릭터를 창출하는 곳이 마블코믹스(스파이더맨, 헐크) 이에 대해 헐크의 입을 빌려 "슈퍼 영웅은 반반하게 생겨야 한다는 편견을 갖지마"라든가 "대리만족이 다는 아니죠. 감정이입도 중요하지 않나요? 그렬러면 주인공이 우리네 현실처럼 뭔가 애환과 사연이 있어야죠"라고 당찬 한마디를 날린다.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이유다.

 

"무서운 외계인 에일리언 vs 친구같은 외계인 E.T"에서 에일리언을 그린 화가 H.R기거를 등장시키며, 저자는 덧붙인다

"기거의 작품들에서는 인간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를 자주 보게 되는데 에일리언의 대가리 형상도 그렇죠"

E.T에서는 시티브 스필버그의 말풍선에 "어른이 저렇게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과 야밤에 마주쳤다면 총으로 쏴 버렸겠지?"라든가

"친구들 사이에 '이티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생겨났죠. 왜일까요?"라며 능청을 떤다.

 

장이 끝날 때마다 해당 분야에 대한 문화적 현상과 문제를 꼬집는다.

스타워즈에서의 "내가 니 애비다"의 막장을 이야기 하며 막장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사건들과의 개연성과 인과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쓴 소리도 서슴치 않는다.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유명인사의 특징을 잡아낸 캐리커쳐 작업가인 김재훈이란 사람이 광대한 문화 스펙트럼의 지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담아낸 셈이다.

 

 

 

인상깊은 저자의 서문, “소박한 문화 정원 소망”
저자는 문화를 정원에 피는 꽃이라 비유한다.  그런데 생계를 위해 고단한 몸을 굴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문화’는 누릴 여유조차 없는 시대가 됐다. 이제 문화로 구분되는 계급사회가 도래했고 꽃은 상품화가 되었다. 이에 모든 이들이 문화를 즐기던 순수한 희망, 기쁨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네가 소박하게 기르던 아름답던 꽃은 빛의 속도와 상거래에 길드여져 진선미가 아닌 이윤과 부가가치를 위한 이미지 기능이 되었다. 이에 저자는 소망한다. 문화가 모든 이들에게 마을 어귀의 소박한 정원의 꽃들로 다시 가꿔지기들.

 

"인간의 삶과 역사가 지루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환상적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펼쳐져야 하기에 천재들은 언제나 시대의 대중을 위해 삶을 산화한 이들이기도 하다. 결국 천재는 사회와 대중이 이루어낸 희망과 유희의 성과들인 셈이며, 천재의 전기는 하늘에서 사명을 받은 자가 전하는 감동 앞에 대중이 속절없이 무릎 꿇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중과 사회가 선택하고 마지막까지 정성스레 다듬은 보석이자,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의 소중한 작업들로 작은 문화적 감성이 어떻게 생겨나고 밀려나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또한, 그가 희화화하고 풍자한 덕에 문화와 브랜드의'돈'과 '계급'의 이미지를 벗겨내 본다.

 

무엇보다 책 덕분에 몰랐던 분야의 문화 스펙트럼을 넓혔다.

 

방대한 지식을 재미있게 한권에 담아내기 위해 저자가 쏟은 열정은 얼마일까.

그가 쓴 다른 디자인 책자를 찾아봐야겠다.

그의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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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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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나무」읽고, 사과나무 심은 노모 생각에 울다

<나무의 성장, 그들의 존재 의미>

 

소설가 이순원이 자꾸만 나를 울린다.

 

강릉 바우길에서 받은 이순원의 책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 아빠도 아들도 없는 나를 그렇게 울리더니, 이번 「나무」는 엄마를 떠올리게 하며 아침 댓바람부터 나를 울린다.

 

추석 때마다 칠순의 노모가 채 익지도 않은 작은 사과를 따와 집떠난 손녀와 막내를 먹인 사과. 가족을 기다리며 노모가 심은 사과나무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였구나.

 

나무들의 이야기였지만, 결국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며 심은 나무의 마음이 가슴깊이 전해졌다.

 

나무의 성장, 그들의 존재 의미
봄을 알리는 여리고도 생생한 연초록잎, 꽃을 피워 화려한 여름, 단단한 열매로 풍성한 가족맞이를 준비하는 가을, 온통 눈 덮힌 겨울 속, 그 자리에 묵묵히 서 또 다른 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겨울.

 

세상에 나무가 없었다면, 사계절을 지금처럼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 세상에 나무가 없었다면, 우리 인간이 존재할 수는 있었을까.

 

늘 곁에 있었지만, 그저 잠깐 지나쳤던 우리의 나무들의 일상과 한평생이 눈앞에 동화처럼 펼쳐진다. 나무의 성장, 그리고 그들 존재 생명의 의미.

 

장 지오노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이야기 했다면, 이순원의 「나무」는 사람이 심은 나무를 통해 나무와 자연의 세상과 그들의 성장,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다보면 그게「나무」의 성장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생명의 가치와 나무의 치열한 삶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힘있는 삶의 지혜와도 같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수상한 이순원(강릉바우길이사장)의 가족. 성장소설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 범벅을 만든 이순원 「아들과 함께 걷는 길」에 이은 두 번째 리뷰다. http://blog.daum.net/bada0101/13720255

 

사계절 치열한 나무의 삶, 여덟살 어린 밤나무의 호기심과 성장과정으로 풀어내
한 곳에 뿌리내린 채 쉴 새 없이 뿌리로 양분을 빨아들이고 한 여름 고개가 빠지도록 잎을 햇살에 내밀고 빛을 모으고서야 꽃을 피운다. 한여름 폭풍우에 약한 꽃은 스스로 떠나보낸 뒤 그제야 겨우 몇 개의 열매를 맺는다. 그마저 짐승과 인간에게 내어주는..이게 수십 년, 수백 년째 반복되는 ‘나무의 삶’이다.


소설은 자신을 심어준 사람과 그 후손들의 가족과 백 년의 시간을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 나무(밤나무)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어린 손자나무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그 할아버지 나무는 보릿고개 굶주림을 참아내며 다섯 말의 밤을 산에 심은 어린 신랑이 신부에게 준 굵고 커다란 밤송이였다.

 

소설은 첫해부터 굵고 알찬 밤송이를 열리게 하고픈 욕심쟁이 여덟살 난 어린 밤나무(손자나무)가 품은 호기심을 풀어내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할아버지 나무가 부엌 밖에 심겨진 사연부터, 마을을 살피며 흉년일수록 더 많은 열매는 맺는 참나무, 꽃샘 추위에 맨 처음 봄을 여는 매화나무, 자신의 몸을 째서 남을 받아들여 열매 맺는 감나무, 제일 늦게 잎을 피우지만 여러번 열매를 맺는 대추, 잘려도 계속 올라오는 닥나무, 그리고 손자나무가 볼품없다 핀박을 주는 냉이, 환한 얼굴로 사랑스런 수선화까지 주변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나무와 꽃들.. 그들의 생장에 관한 궁금증을 대화로 풀어내며 다른 나무들의 특징적 생장에 관한 친절한 안내서다. ..

 

“우리가 잎을 오래 가지고 있는 건 잎 밑에 나 있는 겨울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단풍은 비록 볼품없다 해도 우리 밤나무 잎은 내년에 나올 자기 동생들을 마지막까지 생각하는 거지.”(107p)

 

수선화의 꽃과 비교하며 너무 하다 심을 정도로 핀박주는 손자나무와 냉이의 한판 싸움은 세상을 겉보기로 판단하는 우리 일상의 단면을 아프게 찌른다.

생명을 외적인 하나의 잣대로 판단해 버리는 우리네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서. 늦게 잎을 틔우는 게을러 보이는 나무도 작고 소소한 꽃을 피우는 저 냉이도. 저마다의 이유와 태어난 사명이 있고 가치를 지니는데 하물며 우리의 아이들은.. 그런데 우린 어떤 눈으로 그들을 키우고 판단하고 있는가.

 

"(냉이) 십 년이 되어 마당이 사정이 아무리 고약스럽게 바뀌어도 우리는 우리가 뿌리를 내린 땅을 절대 내 놓지 않아. 우리 후손들을 위해 다른 풀이나 나무들과 맞서 싸우지... 사람들의 손길로 자라는 저 꽃밭의 화초들과는 처음부터 다르다는 거지.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고 해서 우리의 이름도 들꽃이고. 우리는 어떤 곷과 나무도 모양만 보고 판단하지도 않는단다."(94, 95p)

 
나무는 아이들보다 빨리 자란다
할아버지 밤나무를 심은 어린신랑인 그는 아랫마을에 삼년 동안 세 번이나 찾아 자두나무를 얻었다. 덕분에 그의 손자와 동네아이들은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물려받은 가난을 당장 벗어나기 어렵지만, 어느 하루만 수고를 하면 아이들은 누군가의 부러움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숲을 부러워하면서도 나무를 심는 사람은 없는 것, 그 현실에 저자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우리 집 밤나무 산에 가면 아주 잘생긴 것들 천지라네. 예전에 어떤 미련한 사람은 거기에 묘목도 아니고 밤알을 묻어 숲을 이뤘는데, 칠팔 년 된 묘목을 심어 밤을 따는 거야 금방이고말고 아니겠는가?”
 

폭풍우와 혹독한 겨울 눈을 맞으며 어린 손자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은 현실을 바라보는 공정한 눈과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얘야, 첫해의 꽃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한 해를 살다 가는 풀의 세상에서나 있는 일이란다.”(14p)

 

"지금 선 자리에 아들 나무가 서 있는 것이 낫다 생각될 때, 나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이 왔던 세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무의 치열한 삶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을 일깨우는 저자의 맑고 담백한 언어, 자신의 글에 몸을 바칠 푸른 나무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겠다는 저자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추석, 자신이 심은 나무과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노부모를 생각하며

추석,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을 이끌어 자신이 심은 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집이 있을까. 자신이 심은 나무의 열매를 먹이는 풍경.

나무들의 이야기는 책을 덮은 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마음, 누군가의 가족과 부모의 마음까지 느끼게 한다.

 

생각은 우리 엄마집 앞마당에 이르렀다. 이제 엄마보다 노모라 부를 만큼 나 자신도 엄마도 나이가 먹었다.

노모의 앞마당엔 발디딜 틈없이 먹을거리들이 빼곡하다. 그곳엔 한 그루의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도 있다.

몇년 채 되지 않아 볼품없는 사과나무. 약을 치지 않아 못생기고 벌레먹은. 그런 작은 사과 한알한알을 손녀손자들과 막내딸이 올 때마다 먹인다.

작은 알알의 사과가 풍기는 그 푸릇푸릇한 사과향이 배어오더니 마침내 눈물이 주루룩. 노모의 마음을 이순원의 「나무」가 일깨운 셈이다.

나무를 심는 마음이 노모의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겠구나. 

 

그런 노모의 마음도 모른 채, 이것저것 실어주면  짐 많다고 아직도 투털대는 40을 바라보는 막내딸.

아.. 이번 추석엔 엄마가 심은 사과와 포도나무를 보며, 노모의 나무심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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