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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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로망 포르노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엄청 수위가 높은 건 아니지만(오히려 <불량공주 모모코>같은 느낌이 난다.) 일본 특유(?)의 엽기적인 느낌이 난다. 오승호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 흡인력과 속도는 엄청나다. 저자가 감독 지망생이었다는데 영화 연출하듯 소설을 쓰는 것 같다. 하루키가 펄프 픽션을 쓴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오승호 소설에서는 성이나 배설같은 자극적이거나 근친상간같은 반사회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느낌이 난다. <폭탄><스완>에서는 무차별 테러, 묻지마 살인을 자세히 묘사하고, <라이언 블루>는 기존의 느와르와는 다른 반칙느낌의 경찰관들의 범죄다. (경찰소설이라는 출판사의 광고에 속지 마라.) <로스트>는 초반의 고문 장면을 보고 흥미를 잃었다. 이 책도 표현의 수위를 넘어서 설정 자체가 엽기다. 소설에서 나오는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결정하느냐식의 주인공의 대사는 오승호 본인의 질문일 것이다. 아사이 료의 <정욕>의 테마와 비슷한 취지의 주장이다. 단 이런 대사를 SM소설에 심취한 4차원인 주인공이 하는 것은 무리데쓰요이지 않을까. 취향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겠지만 난 아니다. 취침시간을 어겨가며 이 책을 읽은 다음 빡쳐서 오승호 소설 내가 또 읽으면 개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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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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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철학 및 여러 가지 교양을 곁들여 사랑의 실천을 권유하는 책이다. 책의 전반부는 사랑의 필요성이다. 삶은 고통이고(일체개고) 모든 것은 무상하다.(제법무아). 저자는 무상을 제대로 관찰할 때 사랑과 자비가 나온다고 한다. 나의 내부를 들여다봐도 참나같은 것은 없고(무아) 행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져 그 고통을 줄이려는 의지가 사랑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필요한 딱 한 공기의 사랑만을 주는 부의 사랑법이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하는 걸까. 저자가 스피노자의 예를 들 듯 사랑을 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가 행복해서다. 저자는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이 우리 삶의 의지에 결정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느낌이다.(저자는 이것을 아낀다는 말로 표현한다.) 무작정 희생하는 것도 안 된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폐를 끼치는 폭력의 세계에서 최소한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한없이 예민해져야 한다. 상대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것은 끝없는 수행에 가깝다.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고통이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 강신주가 말하는 사랑의 마법이다.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 내게로 가져오는 일을 행복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랑이 가능하겠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삶의 의지와 의미를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상대를 아끼는 것-에서 찾는다는 점이 짚이는 대목이다. 책의 후반부는 사랑을 하는 방법론이다. 강신주의 평소 지론대로 주체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평소의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라는 호칭대로 사랑과 자유를 등치시킨다. 자유가 없다면 아낌도,기쁨도, 유쾌함도,당당함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유로운 두 존재가 서로를 온전히 마주보고 서로의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저자가 그리는 사랑의 초상이다. 드는 의문은 책에서 강신주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말라고, 행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주장은 우리가 인문서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독예찬과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스피노자식대로 표현하면 그 만남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쁨이 어떤 경로로 타인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의지로 변환되는 걸까. 생각할 수 있는 답은 상대방을 나에게 묶어두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인데 이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과 충돌하는 것 아닐까. 이런 사랑관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아직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것 아닐까.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랑은 결국 비현실적인 피안의 사랑같은 면이 있지 않을까. 완전히 불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랑을 이상화하는 순간 결국 불완전한 지상의 모든 관계를 폄하하게 되지 않을까. ‘아끼는 사람을 반려동물 보듯 하라는 충고는(반려동물에게서 댓가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덧붙이자면 맨날 주인을 물고 짖어대는 우리집 포메라니안을 나는 사랑하지는 않는다. 강신주가 말하는 대로 아껴주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실전연애의 답은 없지만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있다. 기존의 강신주 책처럼 여러 가지 소화하기 쉬운 철학, 종교 관련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착수처라고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실천안이 각 장 마지막마다 실려 있다. 기억나는 것은 무상을 느끼기 위해 어제와 달라진 것을 억지로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라’,‘주인이 되기 위해 하루 세 가지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 내자등이다. 애지중지하는 대상은 그 존재만으로 우리 삶을 기쁨으로 물들이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삶을 활기차게 한다고 한다. 어쩌면 사랑은 자신을 잃는 해탈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단어로 말하면 헌신이다. 내가 찾은 사랑의 대가들이 말하는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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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어느 마지못한 메시아의 모험 - 《갈매기의 꿈》 이후
리처드 바크 지음, 신인수 옮김 / 온마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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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바크가 쓴 뉴에이지풍 소설. 오래전 조지 번즈가 주연한 <오 하느님> 이라는 영화가 히트한 적이 있는데 그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다. <오 하느님>의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라 세계를 영화에 비교하는 우파니샤드 세계관에 가깝다. 얇은 분량에 쉬운 문장, 위트가 곁들여져 머리를 식히는데 딱이다. 답답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지쳤다면 짧은 휴식이 될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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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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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사랑을 구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초반에 나오는 이 문장을 독자에게 설득시키는 게 책 전체의 내용이다. 떼를 쓰듯 애정을 갈구하고 어린 시절의 낙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를 보는 것은 유치한 짓이고, 사랑은 본능적이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단 저자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영성을 이야기하고 신이 사랑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 저자의 사랑관은 스캇 펙에서 빌린 것인데,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의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 몇 가지 버전으로 번역해보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것”, “자신의 삶의 의지와 다른 사람의 삶의 의지를 증가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원을 투자하는 것정도 될까. 현실적인 면도 있다. 저자가 페미니스트인 만큼 사랑을 대하는 남녀의 성차나 이러한 성차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저자가 가장 꺼려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허무주의와 사랑이 권력관계로 변질되는 것이다. 가장 짚이는 점은 에리히 프롬을 인용하며 사랑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 선택, 의지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사랑이란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할 때 생기는 정서적인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운명의 상대를 만나 폴링 인 러브하는 신비한 것이 아니라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 가는 구체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말하는 취지 같고 어느 정도 공감은 가지만 한가지 드는 의문은 그럼 나는 왜 굳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걸까? 감정을 과연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감정을 나 자신이라고(뭐 명상에서는 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생각하지 않나. 과연 행동이-어떤 면에서는 사랑하는 척하기- 어디까지 본질적인 감정을 만들 어 낼 수 있을까. 저자의 사랑관을 읽다 보면 어려운 고전 클래식을 듣거나 예술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뭔가 고매하다는 느낌은 나는데 그걸 이해하고 즐기는 안목을 얻으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가 일반적인 만남과 영혼의 만남을 구분하는 대목은 특히 그렇다. 일반적인 만남은 우리가 흔히 아는 연애관계다. 반면 영혼의 만남은 상대방의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통찰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사랑이 의지라는 저자의 앞의 주장과는 모순되는 느낌이다.) 영혼의 만남도 오래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파트너가 떠나가더라도 사랑의 힘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계속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육체적인 쾌락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남자들은 성적으로 끌리는 여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나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섹스만을 파트너와 공유하고 나머지는 일이나 우정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쾌락은 사랑하는 관계를 이어주는 접착제 구실은 하지만 쾌락만으로 사랑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사랑은 육체적인 쾌락이 없어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또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주는 말이겠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랑의 묘사는 사랑을 피안의 순수한위치로 격상시키는 플라톤주의 같은 느낌이 든다. 피안의 완벽한 사랑은 불완전한 지상의 삶을 폄하할 것이다. 오래전 영화 <파이란> 영화평에서 사랑은 살덩어리로 하는 것같은(부정적인 비평이었다.) 문장을 본 게 기억난다. <광수생각>을 인용하자면 서플없는 DVD도 영화에 굶주린 사람에게는 구원일 것이다. 저자는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영혼의 성장을 열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째 저자에게 사랑은 자아를 벗어나는 해탈의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 바가와드 기타 강의>(김영,북튜브)에는 수행의 방법 중 하나인 신애의 요가가 나온다. 쉽게 말하면 신에 대한 사랑으로 해탈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이 책의 사랑관에서 오히려 이런 신애의 요가가 연상된다. 이 책을 두 번 읽은 나는 초반의 문장에 설득되었는가? 나는 과연 어디까지 자기를 헌신할 수 있을까? 나중에 감정이 돌아선 후 초반의 약속 때문에 민망해하는 내 모습이 상상된다. 나는 과연 남에게 줄 만큼의 자원과 에너지를 갖고 있을까? < Born in the U.S.A.> 가사 주인공같은 삶에서 에너지는 무슨. 따뜻하고 사려깊은 문장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책이지만 성미 급한 사람은 저자의 돌려말하기 화법이 답답할 수 있다. 당장 시린 옆구리와 답답한 연애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사람보다 사람을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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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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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미 절판되었고 이제는 인터넷에 재특회 근황도 검색되지 않지만, 여전히 시의성을 가지는 책이 아닐까 한다. 재특회의 메커니즘과 혐오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선인 혐오는 얼마 전 한국의 중국인 혐오로 리바이벌됐다. 이 책의 미덕은 재특회를 괴물같은 타자로 그리지 않고 저자 역시 재특회와 공유점이 있다는 것을 성찰하고 있다는 점, 재특회가 일본사회의 예외가 아니라 그 바탕에는 선량한전체 일본 사람들의 불만과 혐오가 깔려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재특회 대표 사쿠라이 마코토의 어린시절부터 시위에 참가하는 재특회 회원들과 맨투맨 취재를 하며 이들의 초상을 그려냈다. 이들은 일본의 정통우익으로부터 행동하는 SNS’. ‘인스턴트 운동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현실과 인터넷의 경계가 없이 인터넷 정체성을 그대로 현실로 가져온다. 인터넷을 통해 조직되었으며 참가자들도 인터넷으로만 모든 정보를 얻고 시위에 참가하기 때문에 사상이나 논리가 부족하다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따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의견이 편협하고 그래서 죽여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한다. 저자는 재특회의 주장을 하나하나 분석하는데 이들의 논리는 전부 일부 발췌. 맥락과 배경을 떼어내고 일부만을 가져와 과장한다. 참가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현실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위협받고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아이덴티티인 애국을 중심에 놓고 자신들을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피해자의 위치에 놓으며 도덕적 우월감을 누린다. 이 때 재일코리안은 일본 사회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일종의 오브제처럼 변해버린다. 불만의 해방구가 꼭 재일코리안이 아니라 뭐든지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수십년 전 보수언론이 눈,비가 와도 전부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사명감으로 끝까지 시위를 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게 아니라 키보드 워리어처럼 시위를 자신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을 쓴다. 저자가 시위를 보면서 재밌겠다고 느낄 정도다. 당연히 저자가 만난 한명 한명의 회원들은 풀뿌리 운동가이고 선량하다. 집회 현장에서 험악한 말을 쏟아내면서도 진심으로 자신이 깨어 있다고 느끼고 정의감에 불탄다. 재미있는 것은 책에 나오는 우익과 좌익, 혹은 보수와 진보의 역전현상이다. 예전에는 혁명과 반역이 진보의 특징이었다면 이제는 보수의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후 민주주의체제가 자리잡은 일본에서 좌익은 지키려고 하지만 보수는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불만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것은 지키는게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이다. 보수가 훨씬 자극적이고 재미있고 파괴력이 있다. 하급노동자들이 하시모토 도루 같은 우익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스벅 가야지라는 조롱은 분명 학생들에게 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메커니즘이 다른 혐오 현상에도 유효할 것이다.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필력 때문인지 여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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