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 일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품위에 대하여
후안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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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노동일지. 일독의 가치가 있지만 책 표지의 상찬만큼은 아니다. ~플레이션은 결국 신뢰성만 떨어뜨린다. 노동자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어드밴티지가 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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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처럼 허망하고 서글픈 질문이라니. 한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의 모습을 하나의 영상 안에 담아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을 관찰한 느낌이다. 저 영상 안의 인물은 한 때 숨을 쉬고 실존했다가 이제는 영원히 사라졌다. 이 영화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으며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비열하게 생각하면 어이없이 끝나버린 영화속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인간의 삶이란 저렇게 허망한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겸허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점을 우주로 올려서 삶을 관조하게 하거나 불교의 백골관비슷한 효과인 것 같다. 부모가 누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이 단 한 가지 이유에서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발병했을 때는 의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당시의 조현병 치료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80년대 누나가 발병했을 때는 아마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추측대로 자식이 조현병 환자라는 것이 창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적응하기 시작한 것 아닐까. 나는 그 가족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대해 섣부른 추측을 하는 것은 그 가족에게 실례가 될 것이지만, 감독이 영화를 공개한 이상 이런 상황도 감수하리라고 본다. 감독이 촬영을 위해 본가를 방문했을 때 부모가 누나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였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의외로 누나의 행동이 폭력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누나가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입원을 시켰을 텐데, 아마 두 노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발병만 했던 것일까. 차라리 누나의 입장에서는 폭력이라도 썼어야 했던 것일까. 사랑으로 뭉친 가족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가족 역시 서로를 도구적으로 대한다는 게 진실일 수 있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를 떠올려 보자. 자식은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해야 쓸모가 있고, 부모는 얼마 이상을 벌어서 무엇을 해줘야 자격이 된다. 서로를 도구적으로 대할 때 가족 구성원이 정말로 어떤 상태인지-진부한 말로 행복한지는- 논외의 대상이다. 가부장 가정에서 자주 있는 일인 것 같은데 가족구성원에게 문제가 있어도 가장은 우리 집에는 아무 문제 없어, 하는 식으로 문제를 덮어버린다. 가장의 그런 침묵은 그 구성원에게 "말하지 마"라는 은연중의 압박이 된다. 가족 구성원의 속은 썩어들어가든 말든 마치 그런 일은 없다는 듯 평화로운 침묵이 가정을 덮는다.예전 마약방지 캠페인에서 나온 대사처럼 너만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편안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네가 가장 중요하고,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가족구성원은 이중명령같은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다.(즉 시키는 대로 한다.) 그렇게 이 가족은 누나의 인생과는 상관없이 상황에 적응을 한 것은 아닐까.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 않고 누나와 장기간 집 안에서 칩거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머니가 누나를 돌본 것이 아니라 누나가 오히려 어머니의 공백을 메우는 상황은 아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딸을 그렇게 방치한 것은 어머니의 판단이었고 나는 따랐을 뿐이라는 아버지의 답변은 진실일 수도 있고 면피일 수도 있다. 조현병이 발병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국가고시와 의사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사망했을 때 딸과 함께 쓴 논문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의학 연구자라는 모델에 이 가족이 병적으로 집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그러고 보니 집 안에 고가의 실험기기가 있을 정도다.) 의대를 가기 위해 4번이나 도전해야 했던 딸은 발병하자 점술이라는 정반대의 벡터에 빠져들었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우리 인생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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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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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로망 포르노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엄청 수위가 높은 건 아니지만(오히려 <불량공주 모모코>같은 느낌이 난다.) 일본 특유(?)의 엽기적인 느낌이 난다. 오승호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 흡인력과 속도는 엄청나다. 저자가 감독 지망생이었다는데 영화 연출하듯 소설을 쓰는 것 같다. 하루키가 펄프 픽션을 쓴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오승호 소설에서는 성이나 배설같은 자극적이거나 근친상간같은 반사회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느낌이 난다. <폭탄><스완>에서는 무차별 테러, 묻지마 살인을 자세히 묘사하고, <라이언 블루>는 기존의 느와르와는 다른 반칙느낌의 경찰관들의 범죄다. (경찰소설이라는 출판사의 광고에 속지 마라.) <로스트>는 초반의 고문 장면을 보고 흥미를 잃었다. 이 책도 표현의 수위를 넘어서 설정 자체가 엽기다. 소설에서 나오는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결정하느냐식의 주인공의 대사는 오승호 본인의 질문일 것이다. 아사이 료의 <정욕>의 테마와 비슷한 취지의 주장이다. 단 이런 대사를 SM소설에 심취한 4차원인 주인공이 하는 것은 무리데쓰요이지 않을까. 취향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겠지만 난 아니다. 취침시간을 어겨가며 이 책을 읽은 다음 빡쳐서 오승호 소설 내가 또 읽으면 개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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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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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철학 및 여러 가지 교양을 곁들여 사랑의 실천을 권유하는 책이다. 책의 전반부는 사랑의 필요성이다. 삶은 고통이고(일체개고) 모든 것은 무상하다.(제법무아). 저자는 무상을 제대로 관찰할 때 사랑과 자비가 나온다고 한다. 나의 내부를 들여다봐도 참나같은 것은 없고(무아) 행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져 그 고통을 줄이려는 의지가 사랑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필요한 딱 한 공기의 사랑만을 주는 부의 사랑법이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하는 걸까. 저자가 스피노자의 예를 들 듯 사랑을 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가 행복해서다. 저자는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이 우리 삶의 의지에 결정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느낌이다.(저자는 이것을 아낀다는 말로 표현한다.) 무작정 희생하는 것도 안 된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폐를 끼치는 폭력의 세계에서 최소한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한없이 예민해져야 한다. 상대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것은 끝없는 수행에 가깝다.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고통이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 강신주가 말하는 사랑의 마법이다.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 내게로 가져오는 일을 행복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랑이 가능하겠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삶의 의지와 의미를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상대를 아끼는 것-에서 찾는다는 점이 짚이는 대목이다. 책의 후반부는 사랑을 하는 방법론이다. 강신주의 평소 지론대로 주체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평소의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라는 호칭대로 사랑과 자유를 등치시킨다. 자유가 없다면 아낌도,기쁨도, 유쾌함도,당당함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유로운 두 존재가 서로를 온전히 마주보고 서로의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저자가 그리는 사랑의 초상이다. 드는 의문은 책에서 강신주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말라고, 행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주장은 우리가 인문서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독예찬과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스피노자식대로 표현하면 그 만남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쁨이 어떤 경로로 타인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의지로 변환되는 걸까. 생각할 수 있는 답은 상대방을 나에게 묶어두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인데 이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과 충돌하는 것 아닐까. 이런 사랑관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아직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것 아닐까.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랑은 결국 비현실적인 피안의 사랑같은 면이 있지 않을까. 완전히 불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랑을 이상화하는 순간 결국 불완전한 지상의 모든 관계를 폄하하게 되지 않을까. ‘아끼는 사람을 반려동물 보듯 하라는 충고는(반려동물에게서 댓가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덧붙이자면 맨날 주인을 물고 짖어대는 우리집 포메라니안을 나는 사랑하지는 않는다. 강신주가 말하는 대로 아껴주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실전연애의 답은 없지만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있다. 기존의 강신주 책처럼 여러 가지 소화하기 쉬운 철학, 종교 관련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착수처라고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실천안이 각 장 마지막마다 실려 있다. 기억나는 것은 무상을 느끼기 위해 어제와 달라진 것을 억지로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라’,‘주인이 되기 위해 하루 세 가지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 내자등이다. 애지중지하는 대상은 그 존재만으로 우리 삶을 기쁨으로 물들이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삶을 활기차게 한다고 한다. 어쩌면 사랑은 자신을 잃는 해탈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단어로 말하면 헌신이다. 내가 찾은 사랑의 대가들이 말하는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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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어느 마지못한 메시아의 모험 - 《갈매기의 꿈》 이후
리처드 바크 지음, 신인수 옮김 / 온마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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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바크가 쓴 뉴에이지풍 소설. 오래전 조지 번즈가 주연한 <오 하느님> 이라는 영화가 히트한 적이 있는데 그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다. <오 하느님>의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라 세계를 영화에 비교하는 우파니샤드 세계관에 가깝다. 얇은 분량에 쉬운 문장, 위트가 곁들여져 머리를 식히는데 딱이다. 답답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지쳤다면 짧은 휴식이 될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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