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
사카구치 교헤 지음, 고주영 옮김 / 이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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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야 카린, 마쓰모토 하지메, 사카구치 교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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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론 한길그레이트북스 32
마르셀 모스 지음, 이상률 옮김 / 한길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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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렇게 주석이 많은 책은 처음이네요. 주석 읽다보니 오히려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참 그레이트 북스라 그런지 별로 안 그레이트한 저는 이 책이 소화가 잘 되질 않네요.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목구멍 한 쪽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은 어쩌면 책을 이진경씨가 <코뮤니즘>에서 말한 대목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진경씨는 <코뮤니즘>이란 책에서 마르셀 모스의 오류를 감히(^^) 지적합니다. 마르셀 모스는 원주민사회의 증여는 선물을 줄 의무-선물을 받을 의무-다시 답례를 할 의무로 설명합니다. 이에 이진경씨는 다시 답례를 할 의무-가 아니라 그것은 새로운 선물을 줄 의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답례가 애초의 급부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라 처음 시작되는 새로운 증여라는 것이죠. 이진경씨가 왜 이 부분을 굳이 지적했을 까요? ( <코뮤니즘>을 다시 봐야 겠어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아마 제 느낌엔 인간의 이타심이란 것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지 않나 싶네요. 물론 100% 편견이겠지만 원시상태의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타적이고 선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저에게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마르셀 모스가 원주민 사회의 증여를 흡사 우리들의 교환처럼 묘사한다고 느껴서, 목구멍에 걸린 건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증여를 현대의 화폐거래와는 다르겠지요. 원주민들에게 물건은 이미 영혼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소유권 개념으로 쉽사리 타인에게 양도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하며 점유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점유자는  그것을 타인에게 증여해야 합니다. 이게 재미있는 관념이죠. 원래 내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

 

하지만, 모스가 보는 증여는 우리가 흔히 증여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타적인사심없는 증여가 아닙니다. 수증자는 열등한 자가 되고, 증여자에게 그만큼, 혹은 이상으로 다시 증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증여자는 수증자 보다 우월한 자가 되고, 명예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나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거래를 한다면, 원주민은 타인보다 나은 명예를 얻기 위해 증여를 합니다. 그러면 화폐거래나 증여나 뭐가 틀리죠? 하고 묻고 싶습니다만, 곰곰 생각해 보니까 틀린게 있는 거 같기도 하네요.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증여 혹은 거래를 합니다. 나 자신의 쾌락, 행복을 위해서 말이죠. 여기서 타자는 증발되어 있습니다.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 향해 있습니다. 이득의 주체는 나이고, 그러한 이득이 가져다 주는 쾌락을 즐기는 것도 나입니다. 문자 그대로 나를 즐기는 것이죠. 반면 타인에게 증여를 함으로써 명예를 얻고, 서열을 얻는 포틀래치에서는 나의 쾌락은 이미 타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타자가 나를 존경하기 때문에 증여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가 이건희씨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많이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틀래치에서는 아건희씨가 존중을 받으려면 타인에게 많은 것을 주어야 합니다. 부는 주어지기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얻는 것이 좀 다르긴 하지만 포틀래치와 현재의 거래는 이런 차이점이 있는 것 같네요

 

모스는 증여를 이타심의 발로라기 보다는 결국 각자의 이기적인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서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창을 들고 싸우던 부족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게 되었고, 그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포틀래치같은 증여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눈여겨 볼 것은 고미숙씨의 <호모 코뮤니타스>나 마크보일의 <돈 한푼 없이 1년 살기> 같은 책에서 말하는 것이 원주민들의 노래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증여를 하면 그게 우주의 법칙(고미숙씨가 잘 쓰는 표현이죠) 처럼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나를 받으세요 나를 주세요 나를 주면 당신은 나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주면 정령은 무엇인가를 반드시 저 세상에서라도 돌려준다고 합니다. 사실이건 아니건 인간은 분명 무언가를 교류해야 하는 존재같아요. 이게 사실이면 당연히 정령때문이라도 증여를 해야하고, 사실이 아니면 이것이 전설로 전승될 정도로 증여가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의미일테니까요. 만약 증여란게 꽉 닫힌 방의 창문을 여는 것이라면 , 가끔씩 환기를 시켜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p.s 가장 재미있는 문장

정령이 한 추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는 너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포틀래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푸하. 이 정령 한국엔 좀 안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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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이슈 - 포르노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야기
몸문화연구소 엮음 / 그린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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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맨˝ 아니에요 ˝론머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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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아이 - 나에겐 정글이 곧 천국이었다
자비네 퀴글러 지음, 장혜경 옮김 / 이가서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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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네 퀴글러가 부럽다..아마도 그녀에겐 이곳이 또다른 정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건끝없는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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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에서 고병권씨 등과 공동체 애기를 줄기차게 해오셨던 이진경씨의 <코뮤니즘>을 보면 연대의 쾌감이 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우리는 왜 연대해야 하는가? 이진경씨의 말대로 라면 그것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한 쪽에서는 <나홀로 볼링> 친다고 난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고독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배두나가 출연했던 영화 공기인형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인간은 안에 무언가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바람으로 그것을 채워야 한다우리 모두는 애초부터 결핍된 존재이고, 그 결핍을 누군가는 사랑으로 채우고, 누군가는 일로, 누군가는 공부로 채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갖는 주된 개념 중 하나가 나는 독립된 존재이고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공동체는 하나의 억압이라고 느낀다는 것일 것입니다. (공동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슈 중 하나가 억압과 개인과의 대립이라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결국 공동체와 연대가 사라진 ,원자화되고, 개인적인 삶이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있기 때문에 나 홀로 볼링같은 책도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 책에는 시민의식의 고양이 가져다주는 장점을 무슨 카탈로그처럼 조목조목 열거하지만, 그런 이유들을 넘어 근본적으로 보이는 것은 오히려 이진경씨가 <코뮤니즘>에서 말한 연대의 쾌감이겠지요..

 

저는 솔직히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아마 2002년의 월드컵같은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때 저는 광장을 구경했지만 정작 경기는 tv를 통해 집에서 보았습니다. 그게 더 편하고 경기를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때 광장으로 몰려갔던 사람들은 축구가 아니라 연대의 쾌감이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베카 솔닛이라면 환상의 공동체라고 했겠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단초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발적인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아비규환 속에서 폭도로 변해서 무법천지가 도래할까요? 아니면 연대의식을 발휘해서(약간 닭살돋지만) 재난의 유토피아를 이룩할까요? 이 책에서 솔닛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핼리팩스 폭발사고 등의 재난사례를 열거하며 사람들이 재난 앞에서 얼마나 이타적으로 변하고, 숭고해지는지 설명합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솔닛은 이렇게 말합니다.인간이 선하냐,악하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 악함에 대한 믿음이 현실의 행동을 결정한다고요. 자신을 버리고 상대방에게 투신할 수 있는 기회, 기존의 가치관과 제도, 계급과 소유를 무력화시키는 기회를 재난은 제공합니다. 지킬게 없어진 인간들은 벽을 허물고 서로서로 손을 맞잡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관습과 제도가 붕괴되고, 모든 것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연대하고 스스로를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패닉에 빠지는 건 지킬게 많은 엘리트들입니다. 경쟁에 길들여져 있고, 쌓아올라온 엘리트들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구호가 아닌 기존의 제도와 권위를 회복하는데 주력합니다. 이 책에는 아나키즘의 냄새가 물씬 납니다. <아이 엠 히어로>같은 만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죠. 숨죽여살던 루저들은 좀비들의 시대가 도래하자 비로소 가슴을 펴고 세상을 응시합니다.

 

고백하자면 책을 읽다가 뭉클한 가정을 몇 번 느꼈습니다. 이런게 연대의 쾌감일까요? 자기를 버리고, 더 크고, 더 숭고하다고 생각되는 대상에 자신을 투사하는 감정. < 코인로커 베이비스>에서 도쿄를 테러하는 기쿠가 생각하는 재로 뒤덮여진 아름다운 거리.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를 보면 저는 또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뉴기니, 이누이트,북아메리카의 원주민 등의 생활을 소개하고, 현대와 대비하며 고찰한 이 책의 주요 메타포 중 하나는 나와 너의 혹은 우리와 타자의 구별입니다. 심지어는 종교, 언어의 존재이유도 우리와 타자를 구별해 주기 때문입니다. 수렵채집사회가 되었던, 농경사회가 되었던 사람들은 연대합니다. 하지만, 그 연대는 경계를 짓고 경계안의 사람들끼리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학연과 지연에서 느껴지는 감정, 혹은 8,90년대에 조폭영화에서 보았던 의리와 우정에 대해 떠올랐습니다. 원주민들이 경계를 짓고, 타부족을 배제하고, 혹은 인척관계를 따지며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장면은 제가 어렸을 때 동네꼬마들과 놀던 감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지금보면 어떤 면에선 세련되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런 것들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만약 원주민들의 사회가 인간사회에 대한 원형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그 원형에서 진보한거라면 우리는 그닥 숭고하지도 않고, 결국 생존에 목맨 여타의 동물과 좀 다를 뿐인 지구상의 개체처럼 느껴집니다. 재밌게도 다이아몬드는 아나키스트의 꿈은 (레베카 솔닛?) 실현 불가능이라고 말합니다. 부족간( 영어로는 밴드네요. 네이버의 밴드? 하하 우리는 털없는 원숭이인가요? ) 의 전쟁과 보복의 악순환 등을 너무나 쉽게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진경씨가 말한 연대의 쾌감은 동전의 양면처럼 차별과 배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부족내에서는 음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한 명만 굶어죽는 경우는 없습니다.하지만, 타 부족에 대한 증오나 살인은 현재의 인종차별과 어찌 그리 닮았을까요. 이책에서 보여지는 원주민들의 행태가 이진경씨가 말한 연대의 쾌감의 원형일까요.

영아살해, 노인 유기, 전쟁, 장애인,병자 유기 등 이책에는 서늘한 대목이 많아요. 한 가지 위로는 이런 경계짓기가 주로 지킬게 많은환경에서 사는 부족들에게서 관찰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사막같은 곳에서는 이런 구별짓기가 덜하다고 하네요. 역시 인간은 무소유가 답인 걸까요.

 

어쩌면 삶이라는 것도, 나라는 존재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네요. 평균수명이 45세인 피디한 사람들이라면 항상 죽음을 피부로 느끼며 어제의 삶이 오늘의 삶과 달랐을 테니까요.마치 수억개의 정자 중 하나만 수정에 성공하듯 나는 자연이 내놓은 수억개의 정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피다한의 원주민들은 지금의 저보다 그걸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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