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극빙하가 녹아서 일본과 해안지방이 물에 잠긴다. 우리나라도 동해안 지방이 잠기지만 서쪽에 땅이 융기한다. 

2. 소규모 전쟁과 지진이 발생해서 자동적 핵폭발이 일어난다. 

3. 인류의 60~70%가 죽는다. 이 때 놀라지 마라.

4. 그나마 우리나라는 피해가 적을 것이다. 한반도는 지구의 중심축에 있다.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이 바로 설 것이다. 

5. 이 후 평화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지구의 4분의 3이 육지로 변할 것이다. 한반도는 통일을 이루고 세계문화를 선도할 것이다. 우리는 정역시대에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스님께서 헐리우드 디스토피아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신게 재밌긴하다. 김일부의 정역과 천부경을 기초로 하신 것 같은데, 천부경은 위서라고 어디서 들은 거 같고 김일부와 정역은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 완전 사이비라고 치부했던 것 같진 않은데. 책이 쓰여진 때가 80년대 같은데 스님은 20년 전후를 애기했으니 일단 빗나감. 물론 스님도 자신이 관측이 100% 맞을지는 알 수 없다고 퇴로를 만들어 놓으시긴 했다. k팝과 봉준호가 아카데미를 수상했으니 이건 맞은 건가?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으니. 지구 자전축도 변화한다니 이건 어찌 될지. 후쿠시마 원전, 빙하녹는 것도 맞기는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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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Z (Z세대) -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로버타 카츠 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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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 랭커스터대, 풋힐 커뮤니티 칼리지 세 곳의 청춘들을 인터뷰해서 그려낸 Z세대 자화상이다. 읽고 나면 어째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 태어나서 스마트폰 쓰면서 에스엔에스 하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지극히 자기지향적이면서도 공동체에 책임을 느끼고 , 위계보다 수평적 관계에 기초한 느슨한 결합을 원하지만 기후위기와 경제난, 무너지는 사회제도 등 산적한 문제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낀다. 이제 이 시대의 미친 불확실성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Z세대의 과제는 사회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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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구루에게서 도망쳐라, 너무 늦기 전에 - 우리를 미혹하는 유행, 가짜, 사기 격파하기
토마시 비트코프스키 지음, 남길영 옮김 / 바다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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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출판사의 포장술 영화본편보다 예고편이 재밌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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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 내 인생의 셀프 심리학
캐럴 피어슨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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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는 칼 융을 심리학계의 우파라고 마뜩찮아했지만, 융 심리학이 주는 위안이 있는 것 같다.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 더 의미있고 위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관점은 종교가 주는 위안과 비슷하다. 이 책은 융의 원형이론으로 나를 설명하는 또 다른 MBTI나 사주팔자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이 폐허가 되는 것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원형들 간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현대는 개인의 시대다. 이제 출생에 따른 신분이나 신으로 자기 일생을 규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개인은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삶에 불만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저자는 삶이 폐허가 된다면 영웅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고 전제한다. 조셉 캠벨의 영웅신화는 이 책의 백그라운드 뮤직처럼 깔려 있다. 이 때 융의 원형이론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길을 선택할 때 유용한 네비게이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훌륭한 자기계발서지만 품격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내용이 단단하다고 여겨지는 게 저자가 다른 많은 책을 인용하면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고 문장의 구성 자체가 응집력이 있기 때문이다.(저자는 정확히 할 말만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원형은 고아, 방랑자, 전사, 순수주의자, 이타주의자, 마법사인데 각 원형마다 고유한 반응패턴과 심리패턴이 있다. 인간의 성장은 각 단계를 거치며 내면의 깊이를 획득하면서 이루어진다. 현재 자신이 어떤 원형에 좌우되고 있는지 알아차림할 때 원형의 영향력을 통제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어떤 원형에 지배되고 있는지 파악하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과학적인설명인데 고아 원형을 설명할 때 저자는 우리가 겪는 불행은 단지 몰인정한 우연이라고 하면서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타주의자, 마법사 원형 쪽으로 갈수록 책의 분위기는 씨크릿비슷하게 간다. 물론 씨크릿보다 비약은 훨씬 덜하다. 아마 이 책의 전제는 우리안에는 진정하고 고유한 나가 있고 그러한 나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 불행한 삶의 원인이라는 것과 보통 우리는 삶의 무질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만 진짜 문제는 내부의 불균형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건 투사이론으로 과학적으로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셉 캠벨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푸짐한 밥상 같은 책이다. 반면 마이클 셔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몇 내용은 (마이클 셔머의 표현대로) woo-woo nonsense 라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공통된 단점은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한번에 독파하기엔 약간 지루하다는 것. 하지만, 책의 내용을 믿을지 여부를 떠나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사주는 없다고 비분강개하기전에 어쨌든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 아닌가. 적어도 MBTI 보다는 자신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PS. 원제는 THE HERO WITHIN이다, 역자한테는 미안하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유아틱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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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난 크룩스가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 그만두시오

냉정한 어투였다.

당신은 흑인 방에 들어와선 안 됩니다. 당신에겐 여길 침해할 권리가 없어요. , 나가주시오. 빨리. 나가지 않으면 주인께 애기해서 다음부턴 당신이 헛간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할 거요."

여자는 경멸하는 태도로 얼굴을 그에게로 돌렸다.

"잘 들어요, 검둥이"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면 내가 어떤 복수를 할지는 알고 있겠지?"

크룩스는 절망적인 얼굴로 여자를 쏘아보다가 침대에 주저앉고 말았다. 여자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어떻게 할지 알겠어?"

몸을 더욱 작게 움츠리며 크룩스는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압니다.“

"그래야지.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해. 당신 같은 검둥이 하나쯤 나무에 매다는 건 너무 쉬워서 재미도 없을 거야. 농담이 아니야.”

크룩스에게는 자기 자신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인격도, 자아도 좋고 싫음을 표현할 능력조차도 없는.

", 알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양조차 없었다.

여자는 다시 한번 채찍질을 하려고 그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크룩스는 꼼짝않고 앉아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반항의 기미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다 결국 무력해지는 크룩스의 모습에서 그의 절망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야 했다. 학교에서 배운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말은 전부 번드르르한 헛소리라는 걸. 나에게 그걸 가르친 어른들은 본인들도 그걸 믿지 않는다는 걸. 아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미 선생들이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대우하는 거 질리도록 봤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상상을 초월하던 걸? 가진거 다 내놔하고 헤어지면서 잠깐 신발도 벗어, 하는 격이거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면 왜 옷이 젖었어 하고 따지는 식이었다. 차별과 억압, 계급은 인류역사 내내를 지배해왔고, 지금껏 자유로운 인간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아우슈비츠 여주인이 하녀에게 너 같은 건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릴수 있어, 라고 말하는 대목과 여자의 말은 겹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회사 사장들은 이런 생각패턴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나? 상사 앞에서 마음 속 울분을 숨기고 웃는 얼굴을 가장해 본 적은? 놀아 줘, 놀아 줘하는 회사 임원들을 상대해본 적은 없나? 이 정도면 나는 좋은 상사지, 그래도 내 기분은 맞춰하는 상사는? 그럼에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착각한다. 노예주제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돼지 같은 걸음걸이로 출근하고, 퇴근 후면 반은 멍한 상태로 하사하신 짜투리 시간을 황송해하며 그래도 노숙자보다는 낫잖아 하고 안심하는 나는. 아마도 나에게 야근거리를 던져주며 어쩔 수 없지?” 하고 빙글거리던 상사도 아래의 여자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소.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하질 않소? 당신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 우리가 부랑배가 아니라는 걸 당신같이 멍청한 여자가 알 리 없지. 당신이 우릴 내쫓으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요. 당신은 우리가 여길 떠나더라도 또 이런 지저분한 일자리를 구할 거라 생각하겠지. 당신은 우리가 농장과 집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몰라. 우린 여기 머물지 않을거요. 여기보다 백 배는 아름다운 땅과 집과 닭과 과일나무를 가지게 될 거니까. 그리고 친구들도 있지. 여기서 내쫓기는 걸 겁낸 적도 있었지만, 이젠 두렵지 않소. 우리 땅을 사서 그곳에 가서 살면 되니까."

"거짓말!"

여자는 비웃듯 대꾸했다.

"난 당신 같은 작자들을 숱하게 봤어요. 당신들은 25센트만 손에 쥐어도 싸구려 위스키 두 잔에 코를 박고 술잔 밑바닥까지 할아대는 족속들이죠. 난 당신 같은 인간들을 잘 알아요.“


조지와 레니, 캔디가 꿈꾸는 것은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삶이다.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했을 삶이다.


"밭에다가는 온갖 채소를 다 심는 거야. 위스키를 마시고 싶으면 달걀이나 우유 따위를 내다 팔면 되지. 우린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거야. 아주 그곳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지.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일본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어. 그래, 우린 우리가 사는 땅의 주인이 되는 거야. 더 이상 노무자 합숙소 신세를 질 필요가 없게 된다구."

 

"그래. 우리는 우리들 자신만을 위한 작은 집과 방을 가지게 될거야. 겨울이면 작고 통통한 놋쇠 난로에다 불을 지피지. 그다지 넓은 땅은 아니니까 우리는 부지런히 일해야 해. 하루에 6시간이나 7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어쨌든 하루 11시간씩 보리 일을 할필요는 없어. 농사를 지어놓으면 당연히 추수를 하게 되겠지. 우리는 수확량이 얼마나 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을 거야."

 

"그 모든 게 우리 것이니 아무도 우리를 내쫓을 수 없어. 우리들 비위에 거슬리는 녀석이 있으면 빌어먹을 자식, 나가버려', 그 한마디로 족하지. 그럼 그 녀석은 나갈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친구가 찾아오면 우리에겐 남는 방이 있으니까 하룻밤 자고가길 권할 수도 있지. 그럼 그는 자고 가는 거야. 그밖에 세터사냥개 한 마리와 줄무늬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게 될 거니까, 고양이가 토끼들에게 달려들지 못하도록 망을 잘 봐야 해."

 

조지는 감탄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든지, 서커스가 오든지, 야구 시합이 있든지, 그밖에 무슨 일이 있으면…………."

 

캔디 노인이 찬양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냥 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조지가 말을 이었다.

"누구한테도 물어볼 필요가 없어. '구경이나 가지' 라는 한마디로 우린 거리에 나갈 수 있다구. 우유를 짜고 닭 모이를 던져주고 나서 우린 구경을 하러 나가는 거야.“


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고 길은 없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어떤 날이 될지가 너무도 명백하게 보이고 달리 행동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야망계급론>(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오월의봄) 에서 저자는 계급간의 소비행태에 주목한다. 상류층이 계급을 고착시키는 교육이라는 가치재에 자신들의 자원을 투자한다면, 다른 계층은 돈이 생기면 신형 아이폰같은 소확행에 집중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교육이라는 가치재는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싸서 글자 그대로 다른 우주에서나 꿈꿀 수 있는 소비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그들이 속한 계층을 벗어나지 못한다. 조지와 레니, 캔디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품삯으로 받은 50달러로 할 수 있는 일은 색시집에서 뒹글거나 노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분노는 있는 걸까? 소설의 마지막 대사는 화가 나 있는 건가?“ 라는 물음으로 끝난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는 걸까?

 















ps <생쥐와 인간>을 읽게 된 것은 필립 k 딕의 추천 덕이다. <생쥐와 인간> 같은 소설이야 말로 진짜 소설이라고,,, (아마도 <필립 k.딕의 말>(필립 K.딕,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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