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 내 인생의 셀프 심리학
캐럴 피어슨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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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는 칼 융을 심리학계의 우파라고 마뜩찮아했지만, 융 심리학이 주는 위안이 있는 것 같다.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 더 의미있고 위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관점은 종교가 주는 위안과 비슷하다. 이 책은 융의 원형이론으로 나를 설명하는 또 다른 MBTI나 사주팔자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이 폐허가 되는 것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원형들 간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현대는 개인의 시대다. 이제 출생에 따른 신분이나 신으로 자기 일생을 규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개인은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삶에 불만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저자는 삶이 폐허가 된다면 영웅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고 전제한다. 조셉 캠벨의 영웅신화는 이 책의 백그라운드 뮤직처럼 깔려 있다. 이 때 융의 원형이론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길을 선택할 때 유용한 네비게이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훌륭한 자기계발서지만 품격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내용이 단단하다고 여겨지는 게 저자가 다른 많은 책을 인용하면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고 문장의 구성 자체가 응집력이 있기 때문이다.(저자는 정확히 할 말만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원형은 고아, 방랑자, 전사, 순수주의자, 이타주의자, 마법사인데 각 원형마다 고유한 반응패턴과 심리패턴이 있다. 인간의 성장은 각 단계를 거치며 내면의 깊이를 획득하면서 이루어진다. 현재 자신이 어떤 원형에 좌우되고 있는지 알아차림할 때 원형의 영향력을 통제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어떤 원형에 지배되고 있는지 파악하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과학적인설명인데 고아 원형을 설명할 때 저자는 우리가 겪는 불행은 단지 몰인정한 우연이라고 하면서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타주의자, 마법사 원형 쪽으로 갈수록 책의 분위기는 씨크릿비슷하게 간다. 물론 씨크릿보다 비약은 훨씬 덜하다. 아마 이 책의 전제는 우리안에는 진정하고 고유한 나가 있고 그러한 나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 불행한 삶의 원인이라는 것과 보통 우리는 삶의 무질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만 진짜 문제는 내부의 불균형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건 투사이론으로 과학적으로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셉 캠벨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푸짐한 밥상 같은 책이다. 반면 마이클 셔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몇 내용은 (마이클 셔머의 표현대로) woo-woo nonsense 라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공통된 단점은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한번에 독파하기엔 약간 지루하다는 것. 하지만, 책의 내용을 믿을지 여부를 떠나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사주는 없다고 비분강개하기전에 어쨌든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 아닌가. 적어도 MBTI 보다는 자신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PS. 원제는 THE HERO WITHIN이다, 역자한테는 미안하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유아틱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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