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해 본다. 정유미는 아마도 재학시절 과에서 관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선균이 정진영에게 말하는 장면 여전히 예쁘더라구요”) 정유미가 영화에서 오랫동안 잠적한 이유는 아마 실연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남자 안만날 거라는 정유미의 대사) 그리고, 그 대상은 아마 제일 초반에 등장하는 이민우일 것 이다. 거짓말한 이민우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치는 정유미의 태도는 좀 오버다. 꼭 배신당한 여자가 애인에게 한풀이할 때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헤어진 연인사이의 대화같은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비스듬하게 겹치는 분위기는 극장전에서 김상경이 병원에서 사과하는 장면이 있다) 두 번째로 이상한 장면은 정유미가 이민우를 만난 다음에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웬 미친 놈을 만나서 열받아서 술 마셨어) 이 반응도 좀 오버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속으로 한 번 욕하고 말지 대낮에 그것도 혼자서 술 마시진 않는다. 정리하면 이민우가 한번 정유미를 물먹였고, 정유미는 그 때 그 상황이 생각나서 홧김에 술을 마신 것이다.

그리고,이어지는 이선균과의 만남. 사실 이영화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교수 추천서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조낸 성의없이 교수가 추천서를 써 준다. 밥사주면서 살살 구슬려서 추천서를 받았다. 스토리는 이게 전분데 그걸 둘러싸고, 이야기를 부풀리는 건 정신 안차린” (우리 제발 정신차리자는 정유미의 말) “제멋대로인수컷들이다.

 

아마 이 영화는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방식, 여자가 남자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영화가 아닐까?( 아마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아마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세 명의 남자가 함께 만나는 장면에서는 정유미를 두고 세명의 남자가 경쟁을 벌이는 각축장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제일 권력을 가진 건 일단 김상중,.추천서를 받기 위해 정유미는 그에게 호의를 보여야 했다. 그 호의가 진심이었을까? 내 생각엔 그게 진심인지는 정유미 본인도 관심없을 것이다.하지만 정유미와 사귄적은 없고 (나이로 보나, 사회적인 조건으로 보나 약간 무리임) 어린 여자와 사귀고 싶은 중년의 판타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알랭 드 보통도 비슷한 애기를 한 거 같은데,, 젊은 여자는 나이든 남자들에게 오히려 접근하지 말라는 금기를 일깨워 준다는... 그게 일의 기쁨과 슬픔이었나?)

정유미를 실제로 사귄 건 이선균이고 정재영은 그 일 때문인지 왠지 이선균에게 삐져 있다.(이게 일반적인 설정이다.) 그러고 보니 그 경연장은 서로간의 자원을 드러내는 장소같기도 하다. 정유미라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자원말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이선균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선균은 그럴 듯하게 차려입은 여자와 헤어지고 있다. 여자는 어떤 일로 이선균에게 도움을 받은 듯 연신 고맙다고 한다.이선균은 오히려 내가 고맙지하고 의례적인 말을 한다. 난 이 장면을 왜 세세히 모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이선균의 둥장이 필요했다면 이렇게 대사를 쓰며 스토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을까. 더군다나 시점은 2층 닭집에서 이선균을 내려다보는 정유미의 시선이다. 대사가 들리지 않는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설정일 수도 있고, 그렇게 여백을 주는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불친절한(?) 영화에 어울릴 수 있다. 하지만, 대사를 부여한 것은 이게 이선균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 혹은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방식이라는 뉘앙스가 아닐까. 즉 이선균이(남자라고 표현하지 않겠다) 여자를 대하는 방식, 그것은 여자에게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김상중은 추천서를 날림으로 써 주는 것으로 권력을 드러냈고, 정재영은 술자리에서 인생상담을 해 주는 것으로 가오를 드러냈다.

얼마전에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짝짓기가 시장경제화 되면서 섹시함을 자본으로 한 서열이 정해졌고, 남녀가 그 서열을 놓고 경쟁한다고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실은 빈익빈 부익부를 만들어내는 불평등인것처럼 짝짓기 의 시장도 불평등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남자사이에서의 불평등으로도 전개되지만, 남녀를 비교할 때 불리한 쪽은 여자라고 한다. 때문에 남자들은 더 나은 여성들을 차지하기 위해(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므로) 여자와의 장기적 관계를 꺼리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불리한 위치를 만회하기 위해 더 짝짓기에 골몰함으로써 남녀관계에서 불리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유미는 진화했다. 정말 영화 속 대사처럼 똑똑하고 영리한 것이다. 세 남자가 벌이는 경연장은 왠지 흥이 빠져 있고 허탈한 분위기다. 왜냐하면 정작 각축의 대상인 정유미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앞으로 잠수를 탈 것이다.) 이제 정유미는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는다. 추천서를 날림으로 써 준 교수를 구슬려서 다시 추천서를 받아오고, 선배를 찾아가서 술을 얻어먹을 줄 안다. 그나마 진심으로 대한 상대는 아마 정재영일 것이다. 그러니까 정재영이 괜히 오버하며 가오를 잡자 이쁘다며 뺨을 만져준 것일게다. 아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랄까.이제 정신차린정유미는 여자라는 불리한 위치에서 남자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다.김상중이나 정재영은 워낙 기본 가다가 있는 배우라지만 이선균과 정유미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던가?. 특히 정재영과 이선균이 술마시는 장면은 압권이다. 미친놈이라는 욕은  정유미의 입에 짝짝 달라 붙는다. 미끈한 선남선녀들이 연기까지 잘 한다면 그리 불공평한게 있을까 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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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아픈가 - 사랑의 사회학
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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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자유란 인간 주위의 기압을 점점 가볍게 하나 봅니다. 그래서, 마치 풍선이 부풀어오르다 터지는 것처럼 인간은 점점 부풀어오르다 마침내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밌게도 전반부에 저자는 아주 냉철하게 보였습니다. 사랑을 권력관계와 수요공굽우로 설명하는 방식이 꽤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데 후반부에서는 거의 운명에 가까운 초월적 사랑에 대해 애기합니다. (김어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사랑은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거다”)

 

사회관계나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 사랑이란 어떤 감정일까요? 어딘가에선 사랑은 스팬드럴이다라고 읽은 적도 있습니다만(자식을 돌보던 감정이 변질된 거란 설명입니다.) 강신주씨 같은 경우는 결혼은 공적생활이고 결혼하지 말고 사랑을 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도 이 책처럼 제도의 결과로 변하는 것이라면 사랑이란 감정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강신주씨의 사랑 강의나 들어야 겠어요 아니면 울리히 벡의 사랑은 지독한 혼란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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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자서전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유곤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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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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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된 가족 -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은 어떻게 중산층을 기획하는가?
조주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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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론, 합리성, 효율성... 아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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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홀로 죽는다 - 무연사회를 살아가기 위하여
시마다 히로미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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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에서 나온 무연사회란 책을 읽은 후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무연을 찾아서 도시로 이동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원한 건 무연이 아니라 다른 유연이 아니었을까요.. 글을 읽다가 선생님은 인간관계를 기본적으로 억압이라는 측면으로 받아들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관계라는 게 억압이라는 관점에도 나 자신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타인이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지 않을 까요.. 어쩌면 자유나 독립이라는 것도 일종의 개념인 건지도 모릅니다. 어떤 시대, 어떤 맥락에서나 존재하는 일종의 관념이요. 우리가 쓰는 아이폰은 자살 직전의 폭스콘 노동자가 만든 것이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중국의 폭스콘 노동자와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죠. 선생님은 죽음 자체는 어차피 개인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선 전부 홀로 죽는다고 하시지만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무연사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연사하기 직전까지 홀로 살아야 했던 삶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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