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에 맞서는 리얼월드를 찾는 진리에의 의지. 하지만, 니체는 이 의지가 “한 수레의 아름다운 가능성보다 한 줌의 확실성만 추구하는 “ 지친 영혼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니체가 진리를 포기한 걸까? “가상에 맞서는 관점주의자” 라는 표현에서 그가 진리 그 자체를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관점주의자는 당대 유행하는 실증주의 ,감각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의 “낡은 신”과 “불멸의 영혼” 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넘어가는(beyond) 것이다! ( 이 대목에서 니체는 오히려 플라톤적이다. 실증주의니 그 때 시대상황에 대한 배경이 없어 필이 안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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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려는 가장 폭군적인 충동이다. 스토아 철학을 보라. 그들은 심지어 자연에게조차 자신들의 도덕을 강요하려 한다
“자연이란 한없이 낭비하고 한없이 냉담하며 의도와 배려가 없으며 자비와 공정함도 없고 풍요로운가 하면 동시에 황량하고 불확실하다.” 반면 “ 삶이란 평가하는 것 선택하는 것 부당한 것 제한되어 있는 것, 다르게 존재하고자 함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자연에 “따라” 산단 말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말은 진리인가 아닌가 수준이지만 위의 니체의 자연에 관한 관점도 니체의 “자기고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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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독일 시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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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에 대한 비아냥-“마음의 평화”를 말한 에피쿠로스 는 실은 그 시대 스타였던 플라톤을 “꼽게” 보았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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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인식충동은 없다. 철학을 추동한 것은 인식 충동이 아니라 다른 “basic instinct” 이다. 철학은 이런 “basic instinct” 가 다른 충동을 제압하고 지배하는 체계이다. “객관적인 진리”를 말하는 철학은 실은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자기 고백이다. 여기서 니체는 “도덕” 이라는 개념과 “철학”이라는 개념을 묶어 쓰는 것 같다. 둘 다 충동,욕망의 hierachy 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과 도덕은 “가치평가체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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