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지우개같은 설정인데, "당신은 예뻐".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 같은 대사를 정우성이 손예진에게 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정우성이 잘 생겼다는 생각은 들어도 가슴에 와닿지는 않을 것 같다. 최악의 경우에는 닭살이 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곰삭은 대사를 이 영화에서 두 노부부가 할 때 정우성과 손예진은 만들어 낼 수 없는 유대감과 애틋함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졸다가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 인터넷 서핑을 해 보니 시사인에서 극찬하는 리뷰를 쓴 김세윤 평론가 외에는 의외로 조용한 것 같다. 씨네 21에는 반대로 "당사자도 안 원할, 헛된 영원을 꿈꾸는 어리석음이여" 하고 악평이 있다. 약간 오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당사자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지 않은가. 굳이 냉소적으로 비꼬지 않아도 동화속 로맨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적어도 이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은 전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조차 부인할 필요가 있을까. 등장인물인 아우구스토 공고라가 2023년에 사망한 것 같은데, 그가 조금 더 심한 알츠하이머 증세를 오랫동안 보였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 둘의 사랑도 다른 빛깔을 띄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둘은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낀 적이 있었고 그걸 그냥 바라보며 경탄해 주면 안되는 걸까? 재밌는 것은 이 둘의 관계가 우리가 흔히 아는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거다.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우구스토 공고라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가 있었고, 20년동안 동거한 파울리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우구스토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고 난 다음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오랫동안 동거한 커플이 결혼하는 이유는 상속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한 비유일까? 홍상수, 김민희 커플이 수십년 후 이런 영화를 찍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그 영화를 바라볼까? 애초의 불륜에 꽂힌 사람이라면 거부감을 느낄까? 아니면 그래도 사랑을 축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