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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ㅣ 팬데믹 시리즈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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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지 않을까. 팬데믹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철학자 지젝은 여기서 살짝 비튼다. 그럼, 팬데믹 이전에는 우리가 제대로 살아왔던 것일까? 오히려 팬데믹은 우리가 기근, 생태위기, 정치적폭력 등 진짜 트라우마를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 아닐까? 집단면역으로 코로나 조기종식의 가능성은 사라졌고, 이제는 정신건강의 위기가 다가올 때라고 지젝은 예상한다. 그 와중에서 생긴 현상은 거리두기를 두고 좌파와 우파가 기묘하게 연합하거나, 팬데믹으로 더욱 첨예해진 계급격차이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같은 "포스트휴먼"적인 비전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는 팬데믹의 여러 풍경들을 스케치하면서 앞으로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거리두기는 억압이라는 아감벤류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그럼 이전에는 우리에게제대로 된 사회적 관계가 존재했었느냐고 되묻는다.저자가 바라보는 팬데믹은 단순히 과학적,의학적 현상이 아니다. 팬데믹은 바이러스와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의 결합물로서 -적어도 지젝이 보기에는- 인간의 실존과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질문을 외면한 일상회복은 후쿠시마 원전을 외면한 일본처럼 "희극적 일상"(강상중이 쓴 말이다)이 될 것이다. 저자는 팬데믹의 원인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전지구적 자본주의 동역학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진단한다. 팬데믹은 대량기근과 정치적폭력, 생태위기 같은 위기상황을 알리는 알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지젝이 제시하는 지향점은 "경제의 재정치화" 혹은 "공산주의"다. 만약 "시장경제자유주의자"라면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아, 이 친구 징하네. 아직 포기 못했구먼). 저자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면적 봉쇄라거나 전시공산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선에서 끝난다. 저자의 요지는 현재의 체제는 기후위기나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그레타 툰베리를 인용하는 대목에서 압축된다. 인간적 좌표를 손상시키는 포스트휴먼 대신 육체에 근거를 둔,고통스럽겠지만 새로운 일상의 질서를 건설하고 새로운 사회적 삶을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가 헤겔,마르크스, 하이데거부터 라깡이나 프로이드까지 인용하며 글을 전개시키기 때문에 읽기가 용이하지는 않다. 그걸 꼭 어렵게 말해야 하나 하는 불퉁한 마음도 든다. 가장 근본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서문에 나온다. 삶은 살아가야 하는 적극적 의무이고, 때문에 포기될 수도 있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의미를 상실한 채 수축된 삶을 사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가 요구하는 태도는 팬데믹을 사유하고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목에 걸리는 사람은 이 태도만 챙겨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