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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다카다 아키노리는 <어려운 책을 읽는 기술>에서 차근차근 논리를 쌓아올리는 “등산형책”과 여러풍경을 보여주는 “하이킹형책”을 구분하는데 이 책은 “하이킹형”에 가깝다. “고통”이라는 키워드로 여러 가지 담론을 펴는 철학에세이? 정도의 책이다. “행복”이 우리나라에서 트렌드가 된 게 내 기억으론 한 카드사의 “부자되세요”라는 광고 이후였던 것 같다.세계적으로는 긍정심리학의 발흥 이후로 고통은 박멸해야 하는 바이러스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다. 하지만,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고통은 참아도 무의미함은 참지 못한다. 저자의 시각은 마치 대한뉴스에나 나올법한 부정성이 없는 무균질의 삶은 퇴화된 삶이고, 오로지 생존만이 목표가 된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이다. 고통은 인간의 삶에 서사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라 행복을 유지시키는 행복의 짝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고통과 권태를 반복하는 존재고 지금처럼 행복과 안락함만을 강조한다면 삶은 생동감을 잃고 폭력과 마약같은 더 강한 자극으로 기울어질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는 특히 현재의 맥락에서 고통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긍정심리학에서는 행복을 “사물화”(이 용어에 대한 설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고 개인의 내면에만 집중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키워드 중 하나는 “각자도생”일 텐데 이것은 결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존의 고통이 가지고 있던 혁명성을 무력화하여 체제를 지속시킨다. 인간이 성장하려면 고통은 필수적인데, 성장이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고통없는 삶, 인간에게 최고의 고통인 죽음이 없는 삶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때는 삶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글을 마무리짓는다. 작은 분량이지만 일정정도의 배경지식을 전제로 하고 쓰여진 책이다. 때문에 그런 배경지식이 없으면 전개가 아주 지루할 수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독서량이 있다면 읽는데 큰 지장은 없다. 단 하이데거의 철학을 인용하는 부분은 전공자가 아니면 난독난문일 것 같다. 고통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의 뭉치들을 굴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