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왜 가족을 만들까?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한 철학자가 “출산율을 높이려는 것은 축사에서 개체수 조절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개돼지가 맞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심리학자는 “자식을 낳는 것은 자신의 불멸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그 바닥엔 이기적인 욕망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숭고하고 당연하게 이야기되고 있지만 말이다.

 

  저자가 묘사하는 한국사회의 가족은 각자도생이 이루어지는 단위이다. 이처럼 각박한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은 대외적으로 남을 배척해야 하고, 대내적으로는 가부장적인 위계질서를 지켜야 한다. 이건 국가의 직무유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회가 갖춰야할 안전망을 가족에게 떠넘긴 것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가족은 살아남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게 되고, 이를 위해 내부적으로 구성원들의 개별성이 사라진 위계관계가 지배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증상의 하나로 아동의 체벌문제를 든다. 단적으로 말해 체벌이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본질적으로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잠시 다른 애기를 하자면, “학교는 왜 불행한가?” 라는 명제가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학교의 목적이 애초부터 학생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의 목적은 사회를 위한 노동력의 생산, 삐딱하게 말하면 시스템을 지배하는 기득권을 위한 노동력의 생산이다. 같은 관점으로 사람들은 왜 부모가 되려고 할까라는 질문에서 그 답은 노후보장이거나 자신의 연장(延長)같은 도구적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훈육이나 체벌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저자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본다면 가정을 이루어야 할 다른 이유를 찾는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 저자는 곧이어 한국에서 “비정상가족”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서술한다. 미혼모가 겪어야하는 사회적 차별, 해외입양, 인종차별 등 저출산을 걱정하지만, 정작 가족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요구되는 한국의 현실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이것이다. “자울적이고 평등한 개개인 사이에서만 사랑과 우정같은 인간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국가가 할 일은 “서로 의존적이고 굴욕을 강요하는 권력관계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자, 이 대목에서 허탈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관점의 차이겠지만 “지금까지 차별이 없는 사회는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사쿠라이 마코토 일본 재특회 회장의 말이 와 닿는 사람이라면(사쿠라이 마코토가 딱히 대단한 사람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저자의 기획이 오아시스의 신기루처럼 보일 것이다. 저자는 이 기획을 설득하기 위해 스웨덴의 예를 든다. 스웨덴의 가족정책과 체벌금지 법안 등을 예를 들며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가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의 연대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 그런 사회분위기에서는 아동은 하나의 인격으로 대우받을 것이며 체벌은 사라질 것이다. 생존경쟁에서 해방된 가족 구성원들은 조금 더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것처럼 “한 사회가 아이를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직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을 ”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이나 가족의 문제에 한국사회의 현실과 모순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기획은 단순히 가족정책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을 뒤엎는 기획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갑질”이라는 용어에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가. 그런 우리에게 저자가 내세우는 사회상은 사이다처럼 시원하다. 동시에 그런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은 울타리 앞의 양떼처럼 머뭇거린다. 조그만 목소리로 “그게 정말로 가능해?” 하고 수군거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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