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탄생 - 불교 성립 이전부터 붓다 입멸까지
미야모토 케이이치 지음, 한상희 옮김 / 불광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불교학에 문외한이라 일본에서 저자의 학문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의 불교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일본 불교학계의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불교 그 자체만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은 불교 지상주의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이 이미 승려이거나 불교신자라고 하는데 두 번째 관점은 일종의 비교 연구의 관점으로 불교와 당시 인도의 외도사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두 번째 관점이 합리적일 듯 한데 90년대 중반에 쓰여진 이 책에는 저자가 지지하는 두 번째 관점이 래디컬하다는 암시가 있는 것 같다. 불교를 윤회나 업 같은 종교적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철학이나 사상사적인 면으로만 조망할 수 있는데 이 책은 후자 쪽이다. 저자의 태도는 시종 환상과 신비주의를 버리라는 식이다. 대승불교가 지나친 선정(禪定)주의로 사마디를 신비화 신격화 했다는 것이다. 빤야 즉 지혜는 사마디와 원리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선정에 드는 것은 재능이 있는 소수만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꼭 모든 축구선수가 메시처럼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다수는 선정을 신비화하고 열반을 신격화했다는 것이다. 육사외도와 우파니샤드를 설명하는 책의 전반부만 내용이 거칠고 붓다의 생애와 불교의 성립과정을 서술하는 나머지 부분은 아무런 부담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붓다의 생애이지만 저자만의 해석이 가미되면서 새로운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라훌라는 늦게 낳은 것이 석존이 성관계에 혐오감을 가졌기 때문이라든지, 박정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출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문장에는 왠지 돌직구 같은 느낌이 있다. 이후 불교의 발전은 방편의 비대화라고 저자는 대승불교에 날을 세운다. 방편이 목표를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리는 석존의 초상은 실용적 허무주의자다. 실용적이라는 의미는 어차피 의미없는 세상, 계율에 엄격하지 않고 도움이 되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게 석존의 태도였다는 주장이고, 허무주의라는 주장은 석존이 죽음과 허무주의를 지향했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생존욕구의 범위안에 있는 질문을 석존에게 묻는 것은 연목구어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허무주의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으로 들리는데 고엔카10일코스에서 늘상 듣는 말이 평정심과 아니짜(무상)이다. 한번은 모든 것이 아니짜고 평정심을 지켜야 한다면 희노애락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 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답변인 즉슨 희노애락이 사라지는 대신 자비희사가 듭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책은 허무주의의 설명에서 끝나고 내가 들었던 자비희사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읽고 나면 글자 그대로 허무해진다. 삶은 살 가치가 없고 죽음을 기다리는게 최고라는 것이 석존의 원시불교의 가르침이라는데 힘이 빠지지 않겠는가. 저자 입장에서는 이것이 환상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할테지만 말이다.

 

ps. 고엔카 코스에서는 정화라는 말을 쓴다.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갈애라는 것은 마치 콜라를 마시고 싶은 욕구같은 것 아닐까. 내 눈 앞에 마개를 막 딴 차가운 콜라병이 김을 풍기면서 있는 것이다. 이 때 내 마음에 드는 욕구는 단순히 물을 마실 때의 욕구와 다른 느낌일 것이다. 이런 욕구에서 벗어날 때, 긴장에서 벗어날 때 오는 청정한 마음 같이 있지 않을까. 저자가 그린 붓다의 초상이 사람을 힘빠지게 하는 것이라 아쉬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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