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느린 호흡과 미니멀리즘적 연출이 특징인 슬로 시네마로 미국 독립영화의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인 켈리 라이카트는  서부 개척 시대 유랑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새로운 서부극을 연출한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시작한 영화는 강변에서 산책하던 사람이 파묻혀 있는 두 구의 유골을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나란히 누운 자세로 발굴된 유골을 바라보는 사람의 의아한 표정에서 갑자기 영화는 1820년대의 서부 개척 시대로 소급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연 이 두 구의 유골은 왜 강변에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일까?

지옥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우정이다.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따라지 인생쿠키틸리컴 요새로 일거리를 찾으러 가는 도중 킹 루라는 중국인을 도와주게 된다. ‘지옥의 격언처럼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부족한 식량 때문에 쿠키는 시종 동료들에게 시달리고 킹 루는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인을 죽이고 그 패거리들에게 쫓기고 있다. 쿠키는 동료들 몰래 킹 루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블레이크의 경구와 더불어 이 시점부터 영화의 콘셉트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틸리컴 요새에서 재회한 둘은 의기투합하여 요새를 지휘하는 장군이 소유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쿠키를 만들어 팔아 재미를 보다 주인인 장군에게까지 쿠키를 팔게 된다. 요새에는 젖소가 단 한 마리(퍼스트 카우)였기 때문에 우유를 훔쳤다는 사실이 들통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계속 절도 행각을 하다 장군에게 발각되고 추격을 피해 도망치게 된다. 영화는 이들이 도망 중 영화 초반 유골이 놓인 자세대로 쉬는 장면에서 갑자기 끝나며 이들의 꿈이 끝내 좌절됐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단편적인 것에게 시선을

이들 우정의 특징은 그렇게 극적이지도, 증명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우정은 흔히 우리가 칭송하는 우정일까? 엄밀히 말하면 쿠키는 우유를 훔쳤고 킹 루는 살인자 아닌가? 보통 엡스타인과 트럼프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과연 쿠키가 영화 초반 킹 루를 도와주는 장면을 들켰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영화 후반 둘이 같이 도망친 게 우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무에 숨겨둔 돈 때문이었을까? 아니, 이 영화 전체에서 우리가 영화관에서 기대하는 특별한 것이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고 영화 속 킹 루의 남루한 오두막처럼 사소한 행동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시선을 받는 순간 이들의 동작과 대화는 의미 있어 보인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정향, 1998)에서 결혼식장 촬영기사인 춘희(심은하 분)가 손홍민의 찰칵포즈를 하면서 이렇게 해서 바라보면 전부 의미가 있어 보여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지겨운 일상의 공간도 프레임 안에 넣고 보면 영화적 공간처럼 의미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단편적인 것’, 글자 그대로 이름 없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아마도 평생 고된 삶을 보내다 오리건주 강변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 두 명에게 목소리를 입혀 주었다는 것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킹 루는 곧 떠날 거야라고 말하며 쿠키의 옆에 눕지만, 그가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은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없이 사소하지만 그렇기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영화는 보여준다,

 

유치원에 다닐 때 기묘한 버릇이 있었다. 길 위에 굴러다니는 무수한 돌멩이 가운데 아무것이나 적당히 주워 몇십 분 안 지그시 바라보는 버릇이었다. 이 드넓은 지구에서 순간에 장소에서 나에게 주어 올려진 .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과 무의미함에 난 전율할 만큼 감동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은 돌멩이는 그 하나하나가 둘도 없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온 천지 길바닥에 무수히 굴러다니고 있다.”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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