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 민감한 영혼 ‘엠패스’를 위한 풍요와 건강, 사랑에 관한 안내서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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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 YOUR BLISS”라는 경구를 조셉 캠벨이 자신의 인생사와 신화학으로 풀어냈다면 저자는 같은 경구를 힌두교의 세계관과 유사한 자신의 임사체험(<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샨티)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우주의 근원은 일자,만유, 순수한 사랑, 순수의식이고( 힌두교의 브라흐만과 유사하다.) 우리는 그런 브라흐만이 물질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태어난 신의 현현이라는 것이 저자가 임사체험 중에 얻은 깨달음이다. 저자 세계관에서 우리는 모두 내면에 신의 본질을 가지고 있고( 이건 아트만느낌이다.) 무작위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영혼의 의도, 목적, 소명같은 영혼의 설계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만 해도 알레르기가 돋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의 전개 중에 근거로 드는 대부분은 ‘~그랬다더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사례연구이고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같은 검증이 불가능한 자신의 임사체험이다. 에모토 마사루의 육각수 실험을 근거로 들기도 하는데 이거 이미 스켑틱한 사람들에게서 호되게 까인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홍콩에서 태어난 인도인이고 성장과정에서 베단타 철학을 공부했다는 저자의 이력은 본인의 임사체험이 자신의 문화적 토양에서 나온 환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 책은 소심한 사람들을 위한 힐링서적으로 괜찮고 결론도 꽤 래디컬하다. 결국 제일 중요한건 너니까 너부터 챙기고 눈치보지 말고 보헤미안으로 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타겟팅하는 독자는 엠패스이다. 지나치게 민감하면서도 자기 주장은 약한, 회사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짜장 대신 짬뽕을 외치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렇게 자신의 진실보다 주변의 가치관이나 관습을 택하는 모습은 굳이 엠패스가 아니더라도 흔할 텐데 MBTI 마냥 엠패스라는 단어를 쓰는게 아마 마케팅에는 적절할 것이다.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진부한 표현을 쓰자면 자아실현이겠지만 저자의 버전으로는 영혼의 목적,의도를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온 후 우리는 환경의 여러 영향으로 이러한 의도를 망각하거나 의지를 꺾는다. 직관과 영감이 풍부한 엠패스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소명과 더 높은 자아에 연결되어 있으나 지나친 공감능력 때문에 자신보다 남을 더 챙기고 주변의 영향에 쉽게 휘둘리므로 그런 엠패스들이 자신을 지키면서 소명을 찾는 방법론을 제시하는게 이 책의 골자다. 저자가 전작에서 말한 자기를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자신으로 살아라등의 (<나로 살아가는 기쁨>,샨티) 내용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변주된다. 쉽게 흔들리는 엠패스의 특성상 자신을 방어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소개하는데 결국 자기암시나 시각화 같은 기법들이다. (비법을 원하는 독자들은 맥이 빠질 수 있다.)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내면의 신비가육감이다. 오감 이외에도 육감, 직감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자는 못을 박는다. “내면의 신비가는 흡사 고대 그리스 철학의 다이몬 같은 느낌인데 우주의 본질과 우리를 이어주는 존재로서 역시 실존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육감을 믿고 내면의 신비가에게 답을 구하라고 말한다. “느낌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는데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따르라는 진부하고 추상적인 표현이 저자에게는 진리이다. 저자의 모든 논리에 깔린 대전제는 자기사랑이다. 이 대목이 저자 콘텐츠의 강점이다. 왠만해서 자기혐오가 없는 사람은 없고 일반적인 인도의 영적 전통은 자기 포기를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기사랑을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강조하는데 그 근거는 임사체험 중에 겪은 일자가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었고 자신의 본질이 바로 그 일자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다면 굳이 엠패스가 아니더라도 홀가분한 기분에 마치 종교에 빠진 듯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죄책감 없이 매 순간 자신을 고양 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마치 다이어트 때문에 금식하던 사람이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초콜렛을 즐기는 느낌? 영적 전통에서 부정적인 의미인 에고라는 단어도 자기사랑 앞에서는 물리적인 세계를 살아가게 하는, 무한한 자아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이미지로 바뀐다. 오히려 두려움없이라는 표현이 저자에게는 에고 포기에 가깝다. 스스로를 표현하고 창조하려는 아트만을 방해하는 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에고라는 게 저자의 조감도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포기하고, 자신이 조건없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마이클 싱어가 <될일은 된다>에서 항복실험을 했던 것처럼) 허용하기를 할 때 우주가 자기에게 진정으로 속한 것을 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약간 비약하면 저자의 자기사랑 방법론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연상시킨다. 비록 부드러운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내가 죽어보니 나는 완벽한 존재더라,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건 전부 *까라 마이신이고 내가 매순간 최고의 기분을 맛보는 일을-그게 초콜렛을 먹는 일이라도- 할테야 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영성적인 포장을 벗기고 저자의 주장을 정리하면 대학 전공 선택할 때 부화뇌동하지 말고 네 적성대로 해라, 정도의 얘기일 것이다. 부모님이 아무리 국문과 가는 거 반대해도 듣지 마라, 너는 사랑받는 존재다, 정도일 텐데 저자는 라는 영혼의 지도를 집어넣는다, 개성과 적성도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이 고3은 어느정도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며 타협할 것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영혼의 지도를 상정하는 순간 타협의 여지는 없어진다. 아마 이 고3은 많은 풍파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죄책감조차 무화시키는 자기사랑은 분명히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본질이 조건없는 사랑무판단이라는 전제는 에고의 폭주를 가지고 오지 않을까. 외려 나태함의 변명거리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같은 뉘앙스로 무한한 자아를 언급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 무한한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브레이크를 건다. 영성서적 특유의 추상적이고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애매모호함과 단순한 논리전개, 샥티나 푸르나같은 단어를 감당할 수 있다면 분명히 재미있고 힐링 효과가 있는 책이다. 다시 캠벨을 언급하자면 캠벨의 영웅신화에서 영웅이 삶으로 귀환하는 부분이 있다. 모험을 떠난 영웅은 보석을 가지고 세속으로 귀환하는데 그가 받는 반응은 오히려 멸시와 천대다. 이 때 영웅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는데 은둔생활을 하거나 어떻게든 세속과 보석을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마 저자도 임사체험 후 귀환한 영웅 같은 대접을 받은 모양이다. (악플 얘기를 하는거 보니 상황이 충분히 연상된다.) 저자는 다시 임사체험 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고, 자신의 삶속에 어떻게든 자신의 깨달음을 통합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굳이 엠패스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걷다 풍파에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뭐 밑지는 셈치고 저자의 자기사랑 암시를 반복해도 손해보는 것은 없을 것이다. (뽕맞은 것 같은 효과는 미리 경고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건진 가장 시의적절한 충고는 디지털 단식하라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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