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데이 인 뉴욕> 비스끄레한 제목으로 관객을 현혹시키는 건 아마 배급사의 마케팅. 원제를 구글에 돌렸더니 <행운의 일격>이라고 나온다. 우디 앨런이 성폭력 스캔들 여파 때문인지 전부 프랑스 자본을 들였다. 뭐 여주가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다운 매력이 있긴 하다만, 그런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매치포인트>의 변주에 가깝다. 이런 주제라면 오히려 <매치 포인트>가 훨씬 잘 만든 영화 같다. 보고 난 뒤 떠오른 영화는 <언페이스풀>이나 <사랑의 탐구>. 예전에 사랑이 사라지면 대중가요의 대부분이 사라질 거라는 진부한 말이 있었는데 불륜이 사라져도 비슷한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기억나는 <사랑의 탐구> 중 대사. “다들 바람 피더라구”. 그러고 보니 그 영화도 프랑스 영화였는데 이게 프랑스 사람들 이야긴지 전 세계적 현상인지 궁금해진다. 영화 속 불륜을 어머니나 딸이 상담해 주는 장면도 특이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도 이게 일반적인 모습인지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오래 전 본 <클라우드9>(한국제목: 우리도 사랑한다.) 라는 독일 영화에서는 딸이 어머니의 불륜을 알고 좋은 일이라며 절대 들키지 말라,고 격려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긴 그 딸의 아버지도 의붓아버지였다.) 그럼 불륜이라는 게 가끔 가다 생길 수 있는 우발적인 접촉사고 같은 것인가? <언페이스풀>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배신당한 남편은 극단적인 삐딱선을 탄다. 이들에게는 배우자의 외도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아니라 생의 방향을 바꿀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왜? 아마 한국이라면 “육체적인 더러움”이라는 코드가 들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언페이스풀>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남편이 분노하는 이유는 그런 “육체적인 배신”이라기 보다 파트너쉽을 배신했다는, 인정욕구를 배신당했다는 느낌에 가까운 거 같다. 그러니까 아내의 사랑의 화살만 다시 자기쪽으로 돌려놓으면 “과거”는 묻지 않고 만사형통이 되는 것이다. 운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라는 쪽과 우연이 삶을 지배한다라는 쪽이 맞붙으면 과연 누가 이길까? 당연히 후자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이상 전자처럼 콧대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일론 머스크나 브루스 웨인 정도? 이 영화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이유다. 오히려 나는 다른 생각이 드는데, 사실 우연 안에도 인과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연한 교통사고같은 같은 것도 사실은 우리가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닐까?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우자와 히로후미, 사월의책)), 자동차를 이용한 로테크 테러가 가능한 것도 실은 자동차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이고 교통사고는 자동차의 위험이라는 ‘가능태’가 현실화된 것 아닐까? 발생하는 사건은 잠재적인 ‘가능태’로 존재하다가 조건이 일치하는 순간 무대 앞으로 갑자기 돌출하는 것은 아닐까. 가능태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들뢰즈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별4개까진 아니고 세 개 정도는 되겠다. 우연과 불륜이라는 주제라면 수십년 전에 만든 <매치 포인트>가 훨씬 나았다.